사랑은 양이 아니다. 꾸준함이다.
부모님은 중국집을 운영하신다. 내가 코흘리개 때부터 하셨으니 벌써 30년이 넘었다. 긴 세월을 유지한 만큼 맛도 훌륭한 편인데 특히나 탕수육이 일품이다. 어릴 때부터 종종 지인을 데려갔는데 모두가 탕수육에 감탄하곤 했다. 난 30년 동안 중국요리를 먹다 보니 짜장면, 짬뽕은 질려했지만 탕수육은 항상 맛있게 먹었다.
초등 시절 종종 학교를 마치고, 중국집으로 갔다. 탕수육이 너무나 땡겼기 때문이다. 가게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뭐 먹고 싶냐고 물었다. ‘탕수육’이라는 말에 어머니는 주방으로 가셨다. 주방에서 고기 튀겨지는 소리에 침을 꼴깍 삼키며 기다렸다. 잠시 후 어머니가 들고 나오신 탕수육에 깜짝 놀랐다. 일반적인 탕수육 대(大) 자 보다 더 많은 양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나는 친구랑 같이 온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식탐이 엄청 많은 것도 아니었다. 난 그냥 보통 꼬맹이었다. 아무리 좋아하고, 주변에 평이 좋았던 탕수육이었지만 난 배가 불러 다 먹지 못했다.
다음에 어머니에게 너무 탕수육이 많다고 조금만 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알겠다고 하며 탕수육을 가져오셨다. 탕수육 한 개 정도만 뺀 건가? 지난번과 별 차이 없는 양과 마주했다.
명절이면 할머니 집에 갔다. 식사 때가 되어 자리에 앉으면 항상 밥공기보다 훨씬 높이 쌓인 밥이 내 앞에 놓였다. 누누이 말하지만 난 식탐이 엄청 많지 않다. 난 그냥 보통 꼬맹이었다. 조금만 먹고 싶었지만 ‘많이 먹어.’라는 할머니 말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맛도 있었으니까. 간신히 다 먹고 ‘잘 먹었습니다.’라고 하려는 순간 ‘더 먹어’라며 다시 밥공기가 채워진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식탐이 많지 않다. 이때부터는 곤역이었다. 다음 식사 자리 때 ‘한공기만 먹을게요!’라고 미리 말씀드리지만 항상 두 공기를 먹게 되었다. 할머니 음식은 정말 맛났지만 한 공기까지였다.
강신주가 EBS에서 ‘밥 한 공기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여기서 나온 내용 중 공감 가는 내용이 있었다. 우린 밥 한 공기의 사랑이면 충분하다.
종종 나를 굉장히 좋아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나를 좋아해 주는 건 좋았지만 뭔가 부담스러웠다. 나도 처음엔 그 친구가 좋았는데 점점 그를 피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서운해했고, 나는 마땅히 대응할 말이 없어 침묵했다. 그는 나를 좋아했을 뿐인데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미안했다. 그래서 잘 지내려고 노력했지만 부담은 커져만 갈 뿐이었다.
여자인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사람마다 다르긴 했지만 대체로 자신이 필요한 부분을 챙겨주는 사람을 좋아했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끼는 것 같았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챙겨주기 시작하면 부담을 느낀다는 것.
사랑을 넘치게 주는 이들은 결국 이렇게 말한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린 밥 한 공기만큼의 사랑이면 충분하다. 밥 한 공기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사실 사랑이 아니다. 이때부터는 폭력이다. 게다가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더해지게 하니 이보다 괴로운 폭력도 없다.
아내와 장모님 댁에 가면 항상 비슷한 레퍼토리로 끝난다. 처음엔 화기애애하다가 갈 때면 마찰이 생긴다. 어머니가 바리바리 음식을 싸주기 때문이다. 아내는 차가 없어 가져 가기도 부담스럽고, 다 먹지도 못한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널 위해서 만든 건데 다 가져가야 한다고 대응한다. 아내가 이길 때도 있고, 어머니가 이길 때도 있다. 어머니가 이긴 날은 아내는 잔뜩 짜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내가 이긴 날에는 잔뜩 죄책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암튼 싸주신 음식은 냉장고에 한참을 있게 된다. 싸주신 거라 버리기도 뭐하고. 설에 싸주신 음식이 다 처리도 되기 전에 추석에 싸주신 음식으로 다시 채워진다. 장모님 마음도 이해는 된다. 오랜만에 만난 자식이니 뭐라도 챙겨주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밥 한 공기면 충분했다.
사랑은 밥 한 공기와 닮았다. 사랑이 배고플 때 밥 한 공기를 먹으면 행복하다. 밥 두 공기부터는 부담이다. 시간이 흐르면 우린 다시 배고파진다. 이때 다시 밥 한 공기가 필요하다. 사랑은 양이 아니라 꾸준함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