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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설 Jan 02. 2021

벚꽃놀이가 항상 아쉬웠던 이유

매년 기대를 했던 벚꽃놀이. 하지만 항상 아쉬웠던 진짜 이유.

친구들과 벚꽃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벚꽃은 만발했다. 하지만 아쉬웠다. 함께할 애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 해 벚꽃을 보러 갔다. 애인과 함께 였다. 하지만 아쉬웠다. 때를 놓쳐 벚꽃이 지고 있었다.
또 그다음 해 벚꽃을 보러 갔다. 역시 애인과 함께 였다. 벚꽃은 만발했다. 하지만 아쉬웠다.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어느 해 오목교를 지나다 벚꽃이 만발한 걸 발견했다. 밤이기도 하고, 벚꽃 명소가 아니어서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한참을 벚꽃을 보며 걷다가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애인과 얼마 전 헤어졌다. 그 애인 생각이 났다.

사람이 별로 없는 곳. 그곳에 벚꽃이 만발하고, 사랑하는 애인과 함께 있다면 난 정말 행복했을까?

 


최근 몇 년간 여행을 많이 다녔다. 일출을 보러 가면 날씨가 흐려 해가 뜨는 걸 보지 못했다. 여름엔 바다로 나가고 싶은데 갑자기 들이닥친 태풍에 숙소가 꼼짝없이 있어야 했다. 내가 원하지 않은 것들이 거듭되자 마침내 받아들였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거의 없다. 완벽한 환경은 있을 수 없다.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으로 팔라우를 갔다. 팔라우는 스노클링의 세계적인 성지로 바다가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바다를 빼면 할 것이 거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첫날을 제외하고 비가 내렸다. 예약했던 스노클링은 취소되었다. 저녁쯤 비가 좀 잠잠해지자 저녁 식사를 하러 거리를 나섰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 어느 집 처마 밑으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멍하니 있다가 문득 이 비를 즐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내가 손을 잡자 그 손을 이끌고, 비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함께 춤을 췄다. 스포츠 댄스 비슷하게 흉내를 내며. 스포츠 댄스를 배운 적은 없어 춤은 엉망이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귀로 전해져 오는 빗소리와 아내의 웃음소리, 피부로 느껴진 손의 온기와 비의 촉감.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다. 팔라우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은 날씨가 좋았던 첫날 꿈꿔온 스노클링을 했던 순간이 아니라 원하지 않았던 비 속에서 춤추던 날이었다.


그래야 했다.
친구들과 벚꽃을 보러 간다. 벚꽃이 만발한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만발한 벚꽃을 보며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애인과 벚꽃을 보러 간다. 벚꽃은 때를 놓여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애인과 벤치에 앉아 지는 벚꽃을 함께 바라본다.
혼자 벚꽃을 본다. 벚꽃이 주는 풍경에 감탄하며 그 경치를 감상한다.

그간의 벚꽃놀이가 아쉬웠던 건 어떠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아쉬운 것만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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