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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ader
Dec 22. 2021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게 용기를 주는
어리석은 짓이다.」
60여 년 전, 프랑스 작가 카뮈는
나치 부역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선 안 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다.
친일파도, 부정부패 권력도
그리 쉽게 용서해선 안될 일이었다.
용서해야 하는 순간과 벌해야 하는 순간을
우린 어떻게 판단하는가.
그 기준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일 수밖에 없는 구조.
정의를 위해 하루아침에 개과천선한다는 이야기는
전래동화에나 나오는 판타지다.
정치도 검경도 쉽게 정의로와질 수 없는 구조다.
자신의 미래가 걸린 유혹 앞에
정의 따윈, 역사 따윈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
내가 그렇고 당신이 그러해서
숱한 비리 속 그들이 지금껏 기생했고,
모든 것이 까발려진 지금도
우린 쉽게 그들을 끌어내리지 못한다.
정의를 위해 인생을 걸 수 있는
단 몇몇의 영웅이 필요할 뿐이지만,
그 누구도 스스로 영웅이 되려 하진 않는다.
뿌리 깊은 비리일수록 견고함을 다시 확인한다.
씨실과 날실이 촘촘하게 얽혀있는 비리의 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올 하나만 나가도
거짓처럼 풀어질 것이지만
너를 덮어야 나도 살기에 성곽 안의 1%는
뭐든 할 것이다.
하여, 세상은 쉽게 뒤집어지지 않는다
친일파 청산도,
거짓 공약에 속아온 과거도,
거짓 정의의 칼로 횡포해온 정치검찰도
너무 쉽게 잊어온 우리다.
하여,
권력자도 간신들도
점점 더 뻔뻔하게
자릴 지킬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 역겨운 믿음은
결국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다.
[사진출처 ㅡ 포털 대선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