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수라>를 보고
*이 글은 영화 <아수라>의 일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수라>는 인물들의 욕망이 서로 충돌하며 분출하는 영화다. 형사 한도경(정우성)은 그 욕망의 소용돌이 중심에 위치한다. 악덕시장 박성배(황정민)와 그를 잡기 위한 검사 김차인(곽도원)의 맞대결에서 양쪽을 오가며 '이기는 편이 되기 위한' 자신의 욕망을 분출한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는 '아수라'라는 이름에 걸맞게 욕망의 분출 방식은 매우 자극적이다. 스크린에선 시종일관 피 튀김과 욕설이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 난 뒤 '불편했다'는 글을 여러 군데서 보았다. 그러나 불편한 이유가 단지 유혈이 낭자하고 욕설이 난무했기 때문일까.
<아수라>의 인물들은 제각각 욕망의 방향은 다를지라도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고 해친다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제각각이어야 할 이들 욕망의 근거는 영화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주인공인 한도경의 경우에만 아픈 아내의 존재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 욕망의 근거가 드러날 뿐이다. 관객들은 박성배 시장이 도대체 왜 온갖 범죄를 저지르면서까지 정치적 성공을 바라는지, 김차인 검사는 무얼 위해서 저렇게까지 박성배를 잡고자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욕망의 분출을 나열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포르노그라피와 비슷하다. 이 영화가 불편한 진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피와 욕설이 불편함의 진짜 이유가 아니다. 영화 <신세계> 역시 비슷한 정도의 피와 욕설이 나오지만, '불편하다'는 평가를 받지는 않았다. 포르노그라피에서 인물들이 욕망을 내보이고 실현하는 이유는 없다. 그저 '성욕'이라는 본능을 따를 뿐이다. <아수라>가 '욕망'이라는 본능을 파고 들어 깊이 다루었다면 얘기가 달라졌겠지만, 영화는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았고, 설사 했더라도 실패했다.
불편하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몰랐던 것을 알려주는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아수라>는 '욕망'을 단순하게만 다루진 않았다. 형사였다가 박성배의 밑으로 들어간 문선모(주지훈)는 영화의 중심 화두인 '욕망'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아무도 속죄하거나 갈등하지 않는 이 영화의 인물들 중에서 문선모는 유일하게 자신의 행위에 대해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문선모의 욕망 역시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근거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극 중 한도경의 아내는 남편에게 '당신이 저지른 잘못의 벌을 아픈 자신이 받는다'라고 말한다. 영화를 만든 건 관객이 아닌데 벌(불편함)은 보는 관객이 받는다.
(2016.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