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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Dec 24. 2023

그냥 알아서 가겠습니다.

강의가 늦게 끝났다. 강의 자체는 밤 10시에 끝났으나 뒷정리를 하다보니 어느덧 11시가 되었다. 함께 강의 준비를 도왔던 분이 넌지시 손을 내민다. 

"제 차로 데려다 드릴까요?" 


5시간 동안 수고했던 몸뚱아리에게 더없이 반가운 제안이다. 하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저 태워주시려면 빙 돌아가야 되잖아요."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별로 힘들지 않아요."

"아닙니다. 그냥 알아서 갈게요. 마음만 받을게요."


이렇게 말하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말한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표면적인 이유는 상대방의 수고로움이지만, 기실 다른 이유가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있다. 괜히 나를 태우고 평소와 다른 길을 갔다가 사고라도 난다면? 하다못해 누구와 실랑이라도 벌어진다면? 내 책임은 아니겠지만, 왠지 나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그 느낌이 나를 괴롭게 할 터이다. 대가를 치르고 차를 타는 게 아니니 처음부터 빚을 지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면 부채의식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커지는 셈이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못 다 한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마음의 짐이 싫어 호의를 거절하고 내 갈 길을 간다. 이 글을 빌어 양해를 구한다.(202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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