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은 새로운 세계로의 이주다

2화

by 이종범

"퇴직 후 삶은 익숙한 도시를 떠나 낯선 나라에 정착하는 것이다"


출근도, 회의도, 시간에 쫓길 일도 없다. 외곽 어느 한적한 카페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도 가능하다. 하지만 막연한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뭐지? 어제도, 오늘도 별반 다를 게 없네?"

퇴직은 단순한 ‘일의 끝’이 아니다. 직장이라는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야 하는 시작점이다. 그곳엔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도 없다.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퇴직 전에는 누군가 늘 나를 찾았는데 말이다

"이 부장님, 이거 확인 부탁드립니다."

"김 과장님, 이번 프로젝트 의견 좀 주세요."

이젠 휴대폰이 울려도 온통 스팸 문자들뿐이다. 하루이틀은 몰라도 자주 접하는 스팸은 괜한 생각을 자극한다

"나는 이제 쓸모없는 사람인가?"


그러고 보면 퇴직 후 가장 큰 변화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나를 찾는 사람이 줄어든 것’이다.

하루가 길어진다.

직장에 있을 때 하루는 짧았다. 회의, 업무, 점심, 다시 업무. 정신없이 보내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었다.
퇴직 후에는 아침에 눈을 떠도 서두를 이유가 없다. 신문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TV에서는 새로울 것도 없는 그 나물의 그 밥 같은 뉴스 일색이다.

집 밖을 나서도 갈 곳은 없다. 그저 목적 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뿐이다.‘해야 할 일’이 사라지면 하루는 길어진다.

직장에서는 누군가 시키든, 스스로 하든 무언가를 해야 했다. 그러나 퇴직 후에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 돌이켜보면 퇴직 전에는 ‘해야 하는 일’에 치인 듯 살아왔다

"공부해야지."
"취업해야지."
"일해야지."

퇴직하면 "하고 싶은 걸 해도 된다."는 기대를 품고 나오지만 정작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른다. 그러니 하루가 지루할 밖에...


나를 찾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퇴직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를 찾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직장 동료가 아니어도 된다. 가까운 친구나 이웃이면 충분하다. 소소한 만남이라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인간관계를 넓히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것도 방법이다. 글쓰기, 지역 봉사활동, 그도 아니면 동사무소 문화센터에 등록하고 배우면서 교류하는 것도 좋다

"퇴직했으니 이제 쉬어야지."가 아니라, "퇴직했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삶의 리듬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직장 생활은 자연스럽게 하루의 리듬을 만들어줬다. 하지만 퇴직 후엔 스스로 하루를 설계해야 한다. 오늘은 어디서, 몇 시에, 무엇을 할지 계획해야 한다. 운동도 좋고, 독서도 좋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도 좋다. 중요한 것은 ‘일정한 생활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다.

퇴직했지만 출근한다고 생각하고 카페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고,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일상의 규칙이 사라지면 노년의 삶이 무너진다.

방향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는다
퇴직 후 중요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방향이다. 직장에서는 성과, 승진, 돈 같은 목표 중심으로 살았다. 그러나 퇴직 후에는 방향이 더 중요하다.


"건강을 유지하면서 오래 살고 싶다."
"관계를 유지하며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
"새로운 것을 배우며 성장하고 싶다."

방향이 정해지면 자연스럽게 운동하고, 독서 모임에 나가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방향이 분명한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목표는 바뀔 수 있지만, 방향이 확실하면 변화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퇴직 후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시간이 우리를 집어삼킨다.
"퇴직했으니 이제 아무것도 안 해도 돼."가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 수 있는 때다."라고 인식해야 한다.

퇴직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의 이주다.
인생 2막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는 결국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