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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더위와 치른 4차전

해도 해도 너무한 너; 더위

by 이종범

요즘 가장 큰 일과는 밤낮으로 맹렬하게 기세를 떨치는 폭염과 씨름하는 것이다. 에어컨을 켜면 오히려 잠을 잘 수 없다. 벽에 반사시킨 선풍기 바람만이 유일한 수면 동반자가 되어준다. 하지만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찝찝함이 묻어나는 아침을 피할 순 없다


아침 7시

자갈이 굴러다니는 듯 뻑뻑한 눈을 비비며 세면장으로 향하지만, 하루의 시작은 이제 세면이 아닌 시원한 샤워로 몸의 온도를 낮추는 행위로 대체되었다. 그렇게 더위와의 1차전은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와 함께 잠시 휴전을 맞이한다.


9시 30분

의정부에 위치한 교육장 가는 날. 주차장이 협소해 대중교통 이용을 요청받았기에, 익숙한 지하철을 벗 삼아 이동하기로 했다. 다행히 오후 1시 강의라 여유롭게 집을 나섰다. 평소 같으면 자동차로 움직이기 때문에 부담이 덜했겠지만 지하철을 수차례 갈아타는 이동이라 쉽지 않은 여정이다. 집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더위와의 2차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집 안에서 느꼈던 눅진한 더위와는 타른 차원의 열감이다


​​​​​​9시 41분

8호선 지하철역까지는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조차 마른 장작처럼 타들어 가는 인내심을 요구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 그늘막 아래로 피신해 있지만 이미 만원이다. 어쩔 수 없이 나무 그늘밑에 서보지만 태양을 피하기엔 역부족이다.


​​​​​9시 48분

51번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약 100m를 걸어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갔다.


9시 54분

천호역 방향 1-3 구역 승강장. 줄을 서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올라온다. 하지만 지하철 빈자리를 발견하는 순간, 메마른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한 안도감이 밀려온다. 아침저녁으로 변덕스러운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만큼, 이 더위는 마치 나의 나약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끊임없는 시험의 연속이다


10시 19분

드디어 천호역이다. 5호선 군자역 방향으로 환승이 필요해 지하 통로를 걷는다. 하지만 어쩌랴, 가야 할 곳과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묵묵히 직진할 수밖에. 군자역까지 7호선을 타고, 다시 의정부행 1호선으로 갈아탔다. 벌써 세 번째 환승이다. 의정부역에 도착했다. 2번 출구에 가까워질수록 몸으로 느껴진 열감은 불쾌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11시 28분

밖으로 나왔다. 이제 강의장까지 약 1.2km를 더 걸어야 한다. 여유를 가지고 걷고 싶지만, 그저 이상일뿐이다. 쏟아지는 땀방울을 연신 닦아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드디어 사막의 신기루처럼 교육장이 있는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11시 45분

건물로 들어서자마자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허겁지겁 세수를 하고 물기를 닦았다. 잠시 가빠진 숨을 고르며 몸을 진정시켰다. 강의 시작까지 약 1시간 전이다. 배가 고팠다. 건물 지하에 있는 식당들을 기웃거리다가 설렁탕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이른 점심이라 그럴까. 홀엔 빈자리가 많았다. 덕분에 공간적 넉넉함속에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설렁탕 한 그릇을 비웠다


12시 15분

건물 1층 별다방 커피 전문점으로 향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놓고 노트북을 켰다. 강의 전 마지막 점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PT 장표 2~3장을 수정하고 내용을 다시 한번 숙지했다.


12시 45분

강의장으로 올라갔다. 교육담당자의 안내를 받으며 노트북 세팅을 마쳤다. 이제부터 오후 4시까지는 더위와의 전쟁은 휴전이다.


오후 4시

강의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좋은 피드백 덕분에 무거웠던 마음이 솜털처럼 가벼워졌다. 관계자들과 인사를 마치고 건물을 나섰다.

하지만 현관을 나서는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 훅 하고 덮쳐오는 것이 있다. 열기다. 잠깐 잊고 있었던 더위 전쟁 3라운드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부터는 오전에 왔던 길을 거꾸로 가야 한다. 의정부역까지 1.2km 도보, 의정부역에서 군자역으로, 다시 천호역으로, 그리고 마지막 남한산성입구역으로. 이 모든 환승을 거쳐 다시 버스로 두 정거장을 더 가야 한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버스 정거장에서 집까지 약 800m를 또 걸어야 한다.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고, 등줄기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오후 6시 5분

마침내 집에 도착했다. 파김치가 따로 없다. 가방을 필두로 몸에 걸친 옷, 시계, 안경, 속옷과 양말까지 팬티 한 장만 남기고 훌훌 벗어던진다. 찬물 샤워는 마치 시원한 수박화채를 먹는 기분이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폭염 속 강의 여정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더위와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숙면을 방해할 4차 전쟁이 남았기 때문이다.


#폭염 속일 상 #더위 #땀과 에어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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