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cy Lee Jun 17. 2020

레이디 가가 "크로마티카"(Chromatica) 리뷰

치유로의 하나의 길

    정신질환의 보편성은 우리 일상의 인식에서는 이미 하나의 클리셰로서 구전되고 있다. 비록 정신이 신체의 특정한 작용에 속한다는 점은 상식으로서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라도, 누군가의 정신적 곤란을 일종의 저주나 최소한으로는 매우 특수하고 희귀한 어떤 것으로 여기는 일은 적어도 공개적인 담론에서는 무지 혹은 무례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는 사회 구성원들의 개인적 우울감을 감소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회피는 치유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배드 로맨스〉(Bad Romance) 뮤직비디오에서의 레이디 가가의 전위적 변장을 '회피주의적 차원으로의 길을 여는 것'[1]으로 보는 의견은―그것이 원작자의 의도를 관통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시사하는 바가 크다.

《크로마티카》 앨범 커버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레이디 가가의 음악 활동은 그가 자신의 정신적 상태를 다루거나―왜냐하면 결과적으로 어떠한 것들은 실제 치유의 역할을 하지는 못하였으므로―규정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이어왔다고 하겠다. 이러한 역할에 있어서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는 이론적이었던 반면, 《아트팝》(ARTPOP)은 실천적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양자를 어떤 대립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겠으나, 사실 전자의 이론은 후자의 실천을 정당화하였고, 후자는 전자가 이론의 무의미함에 머무르지 않도록 그것을 이끌었다. 그러나 《아트팝》 이후로도 이어진 극심한 정신적 고통의 호소와 《조앤》(Joanne)에서의 자전적이고 직설적인 화법으로의 전향은 《본 디스 웨이》에서 《아트팝》으로 이어지는 치유의 활동이 그 의도한 바를 완전히 실현하지는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때 《크로마티카》(Chromatica)의 '자기성찰적 측면'[2]이 바로 이러한 실패 내지 부족함에 기인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전자의 흐름을 완전한 실패로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는 세 개의 장으로 나누어지는 《크로마티카》의 개별적 요소들에서 《본 디스 웨이》 내지 《아트팝》에서 창조된 이념 혹은 개념들이 보다 직설적이거나 정교하게 활용되었다는 데에서 드러난다. 즉 그것들은 〈크로마티카 1〉에서는 앞으로의 치유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이론적이거나 경험적인 동기들을 제공하며, 〈크로마티카 2〉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정신적 문제들을―《더 페임》(The Fame)에서처럼―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태 자체를 '용기 있게'―그가 호소하는 바와 같이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것은 용감해지는 것과 같기 때문에[3]―마주하고 그러한 문제들과 사실상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토대를 형성한다. 이러한 스스로의 객관적 문제상황에 대한 '극단적 수용'(radical acceptance)[4]은 〈크로마티카 3〉에서의 완전한―혹은 최소한 그렇게 보이는―승화에 단초를 제공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같은 극단적 수용과 그에 따른 승화로의 전 과정은 앨리스가 아닌 자들, 특별하지 않은 자들―정신질환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선언은 《크로마티카》에서의 주요 주장 중 하나이므로―이 각자의 '원더랜드'를 찾아가는 '하나의 여정'(a journey)[5]이라고 하겠다(My name isn't Alice, / but I'll keep looking for Wonderland.).


    앞서 밝혔듯 〈크로마티카 1〉에서는 《크로마티카》 전 과정의 동력, 동기들이 제공되고 있는데, 그것은 상상 가능한 모든 것들의 분열적 상태라는 진단으로 집약되며, 가가는 그러한 분열적 상태가 개인에게 있어서는 가치중립적인, 하나의 무게감 있는 현실로 파악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The way that I see the world is that we are divided and it creates for a very tense environment that is very extremists and it's part of my vision of Chromatica, which is to say that this is not dystopian and it's not utopian. This is just how I make sense of things.[6]


    〈크로마티카 1〉에서 개인은 몇 가지 의미에서 어떤 분열된 것으로 묘사된다. 우선 〈앨리스〉(Alice)에서는 정신이―물론 하나의 증상이라는 의미에서―신체로부터 분리된다(Where's my body, I'm stuck in my mind.). 신체를 정신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정신에 비하여 열등한 것으로 여겨온 인간이해의 전통을 돌아볼 때 나의 자유로운 사고가 나의 신체를 제어할 수 없다는 것, 나아가 그러한 정신 자체가 내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의 사고를 이끌어간다는 것은 분명 공포를 자아낼 수밖에 없다. 또한 가가가 강조하듯 〈스튜피드 러브〉(Stupid Love)의 뮤직비디오에서  붉은 집단과 파란 집단이 갈등을 빚는 것은 심리적인 의미에서 개인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인격 간의 분열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가 조심스럽게 암시하는 바와 같이 그것은 사회적인 의미에서의 분열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대립과 조화가 지난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상징했던 바[7]를 상기해본다면 뮤직비디오에서의 대립을 하나의 정치적 메시지로 읽는 것 또한 가능하며, 분리된 것들 각각이 사익을 내려놓고 단지 조화만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멍청한 사랑의 은유는 하나의 오래된 계획으로까지 보인다.


    더불어 〈레인 온 미〉(Rain On Me) 뮤직비디오에서의 공간적 분할이 실마리를 제공하듯 〈레인 온 미〉는 의식과는 구분되는 무의식의 공간을 전제하고 있으며, 바로 이 구분된 공간으로 '비'(rain)가 상징하는 슬픔들이 쌓여가고, 그럼으로써 의식은 삶을 이어간다(I'd rather be dry, but at least I'm alive.). 그런 의미에서 〈레인 온 미〉의 목소리가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 둘로 나누어지는 것은 하나의 의도된 것으로 해석되며, 많은 경우 노래의 실제 주인공이 가가가 아닌 아리아나 그란데로 보이는 현상 자체 또한 괄목할 만한 것이다. 왜냐하면 일상적으로 볼 때 타인에게 파악되는 는 무의식적인 것이기보다는 의식적인 것이며, 무의식에 축적되어온 슬픔들, 비유적으로밖에는 표출될 수 없는 과거의 아픔들은 소통의 장으로부터 계속해서 미끄러지고 침잠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뮤직비디오의 공간을 아리아나 그란데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를 촉발한 맨체스터 경기장 테러 사건[8]의 바로 그 공간으로 설정한 것은 그러한 분열 상태를 드러내기 위함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꽤나 타당해 보인다.


    〈앨리스〉와 〈스튜피드 러브〉가 암시하듯 레이디 가가는 이 앨범을 통해 이 같은 분열 상태, 혹은 그러한 분열을 촉발한 원인들을 어떻게든 해소하려 한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치유제 역할을 할 《크로마티카》는 그에게 있어 분명 어떤 문제상황들을 종식시키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어떤 것이었기 때문이다.


I was in this endless state of being attacked and I smoked the whole way through making this record and when we were done, I stopped. It was like the most bizarre, beautiful thing that could’ve happened.[9]


    위와 같이 〈앨리스〉에서 〈레인 온 미〉로 이어지는 〈크로마티카 1〉의 전반부가 다양한 의미에서의 분열상태라는 치유의 동기를 제공한다면, 후반부를 이루는 〈프리 우먼〉(Free Woman)과 〈펀 투나잇〉(Fun Tonight)은 《더 페임》에서 가가가 추구했거나 암시적으로 비판했을 수 있는, 치유방식으로서의 회피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며,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킴을 지적한다. 즉 전자에서는 과거에 수행되었던 의도적 젠더리스함이 《본 디스 웨이》가 추구하는 본질적 속성을 본질화하는 것의 유효함을 퇴색시킨다는 점[10]이 암시되며, 후자를 통해서는 단지 파파라치들이 그를 쫓고 명성이 뒤따르는 '셀러브리티'라는 암막으로의 회피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점을 그는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펀 투나잇〉이 거울 속 자신과의 대화라는 점에서 그러한데(I stare at the girl in the mirror. / She talks to me too.), 이 노래가 그를 사랑하고, 그를 웃게 만들려는 '사람들'의 시도에도 행복해질 수 없었던 자신에 대한 노래라는 그의 언급[11]은 이를 다소 모호하게 만든다. 그러나 두 가지 이야기 사이에는 하나의 연결고리, 즉 그 행복해질 수 없는 원인을 자기 내면에서 찾아야겠다고 하는 성찰 혹은 다짐이 있을 것이며, 이러한 다짐은 곧 〈크로마티카 2〉에서의 '극단적 수용', 즉 "내게 정신적 문제가 있다"라는 사실의 인정으로 이어진다.


I think that the beginning of the album really symbolizes for me what I would call to be the beginning of my journey to healing and what I would hope would be an inspiration for people that are in need of healing through happiness, through dance, and that's in what I would call radical acceptance, and radical acceptance is this concept that, for example, I know that I have mental issues, I know that they can be sometimes rendering me non-functional as a human, but I radically accept that this is real.[12]


    이러한 극단적 수용의 포문을 여는 것은 너무나 적절하게도 가가 자신이 복용 중인 항정신성 약물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911〉의 배치가 적절한 것은, 첫째로 약물 자체가 개인의 문제상황의 인정 혹은 최소한으로는 진단을 의미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그것만으로 이미 개인의 치유에 대한 의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11〉에서의 가가의 목소리는 처절하게 들리는데, '극단적 수용'의 서사로 인해―어쩌면 '극단적 수용'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도―개인은 감정의 극단까지 이끌려가고, 그것은 때때로 자기혐오의 언어들, 종잡을 수 없는 감정적 변화를 보다 가시화하기 때문이다(Turning up emotional faders. / Keep repeating self-hating phrases. / (…) / My mood's shifting too manic places.).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서사의 아픔은 그것이 문제의 실상을 밝히도록 하고 그에 대한 객관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고통의 큰 값을 치른다(My biggest enemy is me, pop a 911.).


    한편 이 같은 '극단적 수용'은 단지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약을 복용하는 데에서 끝나지는 않는다. 레이디 가가는 이러한 '극단적 수용'을 통해 정신적 이상의 서사적이고 경험적인 원인을 마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크로마티카 2〉에서 〈911〉의 자가진단은 곧바로 〈플라스틱 돌〉(Plastic Doll)과 〈사우어 캔디〉(Sour Candy)에서의 대중음악 시장에 대한 다소 직접적인 공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음악시장과 대중이 하나의 강한 압력으로 작용해 왔다는 〈퍼펙트 일루젼〉(Perfect Illusion)에서의 호소는 여기에서 보다 분명하게 표출되는데, 곧 시장은 예술인의 자유로운 사고를 그것의 체계 내부에서 '물화'(objectification)하며, 그를 하나의 로봇 내지는 플라스틱 인형으로 만든다. 이때 물화된 예술가는 소비자의 기호를 묻는 방식으로만 그 목소리를 사용하도록 강제되며(Am I your type? Am I your type?), 가가의 표현대로 그 자신의 인간성을 상실하고 만다.[13]


    ZDF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레이디 가가는 가가 자신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고통에 시달릴 수 있는 모든 개인들이 《크로마티카》를 통해 치유의 길을 걷길 바라는데[14], 여기에는 분명 어떤 공통적인 원리가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크로마티카》가 개인적 경험들의 기술에만 머무른다면, 그것 전체가 전하는 메시지마저 개별화되어 그 전략적 유효성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가가는 그가 〈아우라〉(Aura)에서 《아트팝》의 화자로 제시했던 '에니그마 팝스타'(enigma popstar)를 다시 무대에 올린다(I'll be your enigma.).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트팝》에서의 그는 자신의 과거를 죽임으로써(I killed my former and, / left her in the trunk on highway 10.) 부르카를 패션으로 입는(Enigma popstar is fun. / She wears burqa for fashion.) 등 기존 도덕을 전위시키는 자아로 형성되지만, 《크로마티카》 전반부에서 드러나듯이 이제 그는 자신의 과거와 마주함으로써, 보다 근본적인 문제, 즉 《아트팝》의 실천적 요소를 실행할 수 있을 치유된 자아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다양성이 분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그의 언급[15]과 같이 모두가 사랑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에니그마〉의 선언(We could be lovers, even just tonight. / We could be anything you want.)은 〈아트팝〉에서의 통합의 메시지(My ARTPOP could mean anything. // We could, we could belong together, ARTPOP.)와 겹쳐진다.


    한편 모든 오명으로부터 개인을 탈출시킬(We could break out all of our stigma.) 〈에니그마〉에서의 통합의 이미지는 〈리플레이〉(Replay)에서 문제의 원인을 보다 분명히 바라보도록 한다. 즉 이 지점에서 《더 페임 몬스터》(The Fame Monster)에서의 오해가 드러나는데, 거기서 가가는 스스로 괴물로 변장함으로써 문제에 대한 회피적인―혹은 《레이디 가가: 155cm의 도발》(Gaga: Five Foot Two)에서 밝혔듯[16] 반동적인―전략을 취했으나, '극단적 수용' 이후 그는 그렇게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실제 괴물인 것의 실상이 또렷한 기억 속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The monster inside you is torturing me. (…) // Your monsters torture me.). 그것은 달리 표현하자면 개인의 정신적 아픔의 탓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을 멈추도록 하고, '너'(You)라고 표현된 분명한 어떤 기억들을 문제들의 진범으로 지목한다(I won't blame myself 'cause we both know you were the one. // (…) // You had a gun!). 그렇기 때문에 〈리플레이〉에서 묘사되는 '상처의 반복'(The scars on my mind are on replay, re-replay.)은 개인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트라우마의 반복이기보다는, 트라우마의 분명한 트리거(Who was it that pulled the trigger, was it you or I?)였다고 할 특정한 기억의 온전한 재생이라고 하겠다. 이를 통해 가가는 긍정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긍정이고, 합리적으로만 사고하는 인간 전형에 대한 부정이다. 그렇기에 가가는 《크로마티카》의 치유 과정의 정점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완벽하게 완벽하지 않다."[17]


    위와 같이 레이디 가가는 《크로마티카》의 전반부에서는 인간의 분열적 양상을 드러내면서, 이것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개인을 치유할 방법은 없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이러한 여정의 발걸음은 〈크로마티카 2〉에서 '극단적 수용'으로 이어지며, 치유의 길의 중반부에 이르러 가가는 개인의 불완전성의 수용, 즉 기억의 온전한 재생이 치유의 열쇠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여기서 촉발되는 여정의 막바지에서 우리는 '크로마티카'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다.


In music there are twelve notes in an octave, and they are chromatic. So this speaks to both color and to music. And I really wanted to express with this album title that I view the world in all the colors, you know, every color, more colors than we could imagine. (…) We as people are so complex and so different, we are so colorful, we are so ingenious in the way that we have been created. And also when something's chromatic, it's a half-step, so it's a closed step, so we're also very close to each other. (…) We're also completely different, but also we're so close to each other, because being different, I think, implies that we should be separate, but it doesn't.[18]


    즉 가가에게서 '크로마티카'는 음과 색의 다양 그 자체를 상징하며, 그것은 또한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긍정의 신호이고, 그 다양성 내에서의 개개인 간의 인접성 혹은 그러할 가능성까지도 보여준다. 한편 '크로마티카'에 대한 이러한 설명이 암시하는 바는 결국 '극단적 수용'과 같은 앞서의 과정을 거쳐 개인은 비로소 타인을―트라우마에 의한 왜곡 하에서가 아니라―그러한 다양성의 긍정 하에서 바라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같은 긍정을 매개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사랑, 혹은 그가 거듭 강조하는 '친절함'(kindness)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인 프럼 어보브〉(Sine From Above)에서 가가가 묘사한 바와 같이 그러한 타자애는 음악으로 대표되는―혹은 음악 그 자체인―어떤 신적인 것에 의하여 촉발된다. 왜냐하면 〈사인 프럼 어보브〉에서 Sine은 사인파(sine wave)―가가에게서 이것은 소리 자체를 의미하는데[19]―이면서 동시에 신적인 계시, 신호(sign)이기 때문이다.[20]


    그런데 여기까지의 설명은 마치 《크로마티카》가 〈본 디스 웨이〉에서의 본질주의적 정당화의 논리를 단지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사인 프럼 어보브〉에서 강하게 울려 퍼지는 단순한 응시의 공허함(Yeah, I looked / with my face up to the sky, but I saw nothing there. / (…) / Yeah, I stared / while my eyes filled up with tears, but there was nothing there.)은 가가가 신에 대한 전통적 해석에 회의를 품고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21], 존재의 정당화란 사실상 위 같은 타자애를 촉발하는 어떤 능동적인 활동을 통하여 가능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화자는 어느 순간엔가 내적 트라우마가 아닌 그 바깥의 타인을 만나도록 하는 어떤 소리, 음악, 계시를 듣게 되기는 하지만, 그것은 〈크로마티카 2〉에서의 '극단적 수용'의 실천으로부터 비롯되는 기억의 온전한 재생을 통하여, 더  근본적으로는 〈앨리스〉에서 울부짖은 여정의 시작으로부터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본 디스 웨이〉와의 거리두기는 〈1000 도브즈〉(1000 Doves)에서처럼―타인과의 연대, 공감의 중요성은 다른 어디에서보다 강하게 나타남에도 불구하고―타자에 대하여 어느 정도는 결별을 선언할 수 있게 된 그의 자세에서 두드러져 보인다('Cause inside we are really made the same. / In life wating's just a stupid game. // (…) // If you love me, then just set me free, / and if you don't, then baby leave. / Set me free.).


    그러므로 《크로마티카》의 여정이 고대도시 바빌로니아에서 마무리된 것은 적절했다. 레이디 가가는 고대의 것, 기원 전의 것, 16세기의 웃음을 소환함으로써(We only have the weekend. / You can serve it me to ancient city style. / We can party like it's B.C. /  with a pretty sixteenth century smile.) 〈바빌론〉(Babylon)으로 입성하는데, 거기서 그는 과거 그를 아프게 했던 것, '가십'들을 계속해서 마주친다.[22] 그러나 '극단적 수용'의 과정을 거친 그에게 '가십'은 더 이상 트라우마를 양산해내지 않는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래된 기억들로 둘러싸인 고대의 도시에서 '삶을 위해 싸우라'(Battle for your life, Babylon.)는 목소리가 반복되는 것은, 정신적 아픔을 겪는 모든 이들을 향한 《크로마티카》의 일관된 메시지, 즉 과거를 그대로 마주하는 것의 중요성과 그것이 타자애로부터 매개된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여기서 우리는 원더랜드를 눈앞에 둔다. 나의 기억이 자리한 모든 시간적 무대, 곧 '바빌론'이 모든 범인들의 원더랜드, 곧 치유의 종착지이다.


    2011년 〈매리 더 나잇〉(Marry The Night) 뮤직비디오에서 트라우마를 대하는 레이디 가가의 자세는 절망적이었다. 당시 그에게 트라우마에 의한 기억의 훼손이란 절대적인 것이었고, 그의 예술적 작업들은 그렇게 생긴 기억의 '구멍'을 어떻게든 '아름답게' 메꾸기 위한 것이었다.[23] 그러나 가상만으로는 트라우마의 반복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는 점을 그는 치유되지 않은 나라는 경험적 사태로부터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내적이거나 외적인 갈등이 촉발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그에 관한 온갖 틈새 없는 논리적 서사나 그럴싸한 실험적 결과들을 누구에게서든 간에 전달받곤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아름다운 시멘트들은 기억에 남은 상흔을 치유하지 못한다. 오히려 치료제 역할을 하는 것은 프루스트의 마들렌이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소피야이다. 내 추잡한 기억을 들춰내는 그 불쏘시개를 가까이할 용기를 기르는 것만이 어쩌면 개인의 최선이다. 그 후에 타인이 보인다. 그 후에 사랑은 시작한다.



[1] " That she appeared in alien-like form in that song's video made perfect sense> here was a chameleonic pop superstar in the vein of Bowie, Prince and Madonna opening a portal to an escapist dimension."(Michael Cragg, Lady Gaga: Chromatica Review - Gaga Rediscovers The Riot On Her Most Personal Album, The Guardian, 2020.)

[2] "Despite its extroverted sound, Chromatica is a deeply introspective album."(Alexandra Pollard, Lady Gaga Review, Chromatica: Big, Brazen Pop With An Introspective Side, Independent, 2020.)

[3] "Although I feel completely disconneccted and offline, I am still going to pursue Wonderland, I'm still going to look for something that I do not have right now, and maybe it is through just simply trying, I think that being brave is hard, but it's synonymous in many ways with trying."(Interview with Zane Lowe.)

[4] "I think that the beginning of the album really symboliyes for me what I would call to be the beginning of my journey to healing and what I would hope would be an inspiration for people that are in need of healing through happiness, through dance, and that's in what I would call radical acceptance."(Interview with Zane Lowe.)

[5] "I wished to go on a journey that I’ve been on with the world before, which is, when I know that I’ve opened my own creative portal to the other realm and made music out of my own personal experiences, that is also related to how much I love people and love the world and what I want them to feel and experience. (…) I hope that they listen to this record and go on not only my personal journey with me and dance through all the pain, but also go through their own journey and dance through all their pain (…)."(Interview with Zane Lowe.)

[6] Interview with Zane Lowe.

[7] 2017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레이디 가가는 스타디움 지붕 위에서 "God Bless America"와 "This Land Is Your Land"를 부르며 등장한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의 정치적 혼란이 극심하던 가운데 열린 슈퍼볼에서 가가의 위에서는 붉은빛과 푸른빛의 드론들이 공중에서 한 데모여 성조기를 형성한다. 이는 분명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대표되는 바와 같이 정치적으로 대립되는 미국 구성원들이 서로 화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보인다.

[8] 정의길, 영국 맨체스터 공연장 폭발… 최소 19명 사망, 한겨레, 2017.05.23.

[9] Interview with Zane Lowe.

[10] "I think I tend to aspire for things to be genderless, just because I think that it's significant, but with that song(Free Woman) in particular I felt a need to reference my gender, because, even though I really have a tremendous disdain for people that attribute gender or sexual identity to your personality, like I hate that."(Interview with Zane Lowe.)

[11] "'Fun Tonight', which is a song that means a lot to me and every time I listen to it I get chocked up, because I can’t tell you how many nights that people that really loved me were trying to get me to smile or laugh or be optimistic and I just had no ability to be happy. It just wasn’t there."(Interview with Zane Lowe.)

[12] Interview with Zane Lowe.

[13] "And I'm always remiss to talk about my personal experience with fame or my personal experience with being an artist, that’s by proxy because of pop culture also a celebrity. The truth is that I was trying to make sense of my humanity within a system, that is the music industry that decidedly is also objectifying, I mean that objectification makes me feel like a robot and then you start to act like one. And once you start to act like that robot, you lose a sense of your humanity."(Interview with Zane Lowe.)

[14] "When I came down into the studio to write, I didn't just think about my own pain, when I was writing these songs. I thought about how I could've formed the world through my experiences and helped them. "How can I help someone else? How can I make an album that if someone’s having a bad day, they turn it on and they just start dancing? How can I do that?" And I worked on it, and worked on it, and worked on it, and everyone that I worked with had the same vision, and that's Chromatica."(Interview by ZDF heute.)

[15] "We're also completely different, but also we're so close to each other, because being different, I think, implies that we should be separate, but it doesn't."(Interview by ZDF heute.)

[16] "My methodology behind what I've done is that when they wanted me to be sexy or they wanted me to be pop, I always fucking put some absurd spin on it that made me feel like I was still in control. And you know what? If I'm going to be sexy on the VMAs and sing about the paparazzi, I'm going to do it while bleeding to death and reminding you of what fame did to Marilyn Monroe, The original Norma Jean, and what it did to Anna Nicole Smith."(Chris Moukarbel, Gaga: Five Foot Two, Netflix, 2017.)

[17] "I've flirted with the idea of sobriety, I'm not there yet, but flirted with it throughout the album and it's something that came up as a result of me trying to work through the pain that I was feeling, but part of my healing process is going “well, I can either lash the hell out of myself everyday for continuing to drink or I can just be happy that I'm still alive and keep going and feel good enough like I am good enough, it's not perfect enough, but (…) I'm perfectly imperfect."(Interview with Zane Lowe.)

[18] Interview by ZDF heute.

[19] "The symbol for Chromatica has a sine wave in it, which is the mathematical symbol for sound, and it's from what all sound is made from."(Interview with Zane Lowe.)

[20] "My understanding of God actually is that it's a sine/sign, I believe God began as a sound."(Interview with Zane Lowe.)

[21] "I do believe in God, I don't believe in God the way that, you know, maybe throughout history it's been portrayed, but I believe in a higher force"(Interview with Zane Lowe.)

[22] "That sound, sine from above, is what healed me to be able to dance my way out of this album singing Babylon, a song about gossip and something that used to run my life and make me feel so small and so chained."(Interview with Zane Lowe.)

[23] "Clinical psychology tells us arguably that trauma is the ultimate killer, memories aren't recycled like atoms and particles in quantum physics, they can be lost forever. It's sort of like my life is an unfinished painting. And as the artist of that painting, I must fill in all the ugly holes and make it beautiful again."(Music video of "Marry The Night".)



Interview with Zane Lowe : https://www.youtube.com/watch?v=CZXBF9t32zA

Interview by ZDF heute : https://www.youtube.com/watch?v=RXLxuqU9sAg

Music video (Stupid Love) : https://www.youtube.com/watch?v=5L6xyaeiV58

Music video (Rain On Me) : https://www.youtube.com/watch?v=AoAm4om0wTs 

Music video (Bad Romance) : https://www.youtube.com/watch?v=qrO4YZeyl0I

Music video (Marry The Night) : https://www.youtube.com/watch?v=cggNqDAtJYU

Superbowl halftime show : https://www.youtube.com/watch?v=txXwg712zw4


작가의 이전글 지금 대의민주주의는 있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