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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Jun 30. 2024

각막이식받으시면 됩니다.  

아직 눈이 멀지 않았지만 벌써 눈앞이 캄캄해졌다.

24년 6월 12일. 언젠가 자서전을 쓴다면 기록해야 할 날이다.  

바로 내가 시한부 시력을 선고받은 날이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약 10년 동안만 앞을 볼 수 있단다. 그 이후에는 각막이식이 필요한다. 대학병원 의사의 진단이었다. 대학병원 진료를 보기 위해 필요했던 동네 안과에서 받은 소견서에 적힌 병명은 각막이형증. 뭐 대단히 특별한 병 같지만 각막에 이상이 있으면 무조건 각막이형증이라는 진단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약간 김이 샜다.


 내 병은 정확히 각막내피세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한 시력상실이다. 보통 사람들은 1000개 정도의 각막내피 세포를 가지고 100년을 산다고 한다. 하지만 38살 먹은 내 각막내피세포는 지금 500개 정도. 각막내피세포가 400개 정도로 떨어지면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한다.



"지금은 괜찮아요. 10년 뒤에 각막이식 하시면 됩니다."

'간단한 감기이니 주사 맞고 약 드시고 푹 쉬세요'라는 말보다 더 무미건조한 의사의 말이었다. 전남대병원 안과에서 가장 오래 근무하셨다는 각막전문의 윤박사님의 말씀이다. 말만 들으면 각막이식이 옆집 강아지 이름인 줄 알겠다.




그렇다.

나는 오늘부터 십 년 동안만 앞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아이를 낳으러 분만실에 갔을 때, 분만실 간호사가 쏘아붙이던 말이 생각났다.

"엄마 울지 마세요. 엄마가 울면 태아에게 산소가 부족해요."

그 말이 서러워 더 눈물이 났던 기억.


아이를 출산한 직후 울 때마다 간호사가 해준 말도 생각났다.

"출산한 엄마가 너무 울면 시신경이 손상돼서 눈이 나빠져요."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 시어머니는 혈액암 4기로 투병 중이셨고, 친정아버지는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계셨다. 의사는 엄마에게 아빠를 보내줄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이것만으로도 울어야 할 이유는 한가득이지만, 신생아 검진을 받은 아이에게는 고환 하나가 없었다.

"한 달 만에도 고환이 내려온 아이들이 많아요."

의사가 위로했지만, 나는 울 수밖에 없었다.


엄마 닮아서 콧대도 없는 아이에게 고환도 없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아이는 결국 6개월 즈음에 잠복고환을 끌어내리는 수술을 받았다.) 조리원에서 머물렀던 고작 일주일 동안 7일을 울었다. 그 때문에 이렇게 눈이 나빠진 것일까.


아이와 함께 집에 돌아오는 택시에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또 눈물이 났다. 진료 대기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던 탓에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할 시간을 놓치고 만 것이다. 십 년 뒤 장님이 되는 것보다 당장 오늘 아이가 등원하지 못한다는 것이 더 서글펐다.


십 년 뒤에는 눈이 먼다는데, 신기하게도 내가 앞을 못 본다는 걱정보다 더 앞서는 것이 있었다. 이제 고작 5살인 아이가 문제였다. 그래 10년이면 아이도 15살. 엄마가 앞을 못 보더라도 제 앞가림은 할 수 있겠지. 만약 나에게 아이가 없었더라면 오늘 날

‘눈이 안보여도 귀로 음악을 들을 수 있자너. 럭키비키자낭!’

하고 원영적 긍정회로를 돌리고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안에 두 눈이 멀어버리는 것. 정말 정말 정말 운이 나빠 3년 안에 눈이 멀어버린다면?

미취학 아이에게 눈먼 장님 엄마가 도대체 무얼 얼마나 해줄 수 있을까. 아직 눈이 멀지 않았지만 벌써 눈앞이 캄캄해졌다.


왜냐하면, 의사는 ‘지금은 괜찮아요 십 년 뒤가 문제’라고 말했지만

내가 느끼고 있는 시력 저하의 체감 속도는 앞으로 끽해야 3년 정도였기 때문이다.


새삼 두 눈으로 올려다보는 저 푸른하늘이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이 났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아직 읽지 못한 책장의 서적들, 계절마다 바꿔어 갈 우리 아파트 정원의 모습. 해마다, 혹은 달마다 커가며 달라질 아이의 얼굴. 해마다 탈모가 심해져서 휑하게 변해갈 남편의 대머리까지.....

내가 포기해야 하는 풍경들을 하나둘 떠올려 보면 슬픔보다 먼저 드는 것은 당혹감이다.


그중에서 가장 억울한 것은......

내 귀여운 고양이들을 볼 수 없는 것.....

누군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작고 귀여운 것들이라고 그랬다.

저 동그란 뒤통수, 치졸하고 하찮은 이빨과 앙증맞고 뭉툭한 앞발.... 수염이 보숭보숭 튀어나온 뽕주댕이를 더 이상 볼 수 없는 건, 내 인생에 불어닥친 시련 중 가장 치명적인 슬픔이자 재난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기록하기로 했다. 두 눈을 뜨고 세상을 볼 수 있던 시절의 감상을 말이다. 어차피 두 눈이 멀면 누군가 읽어주지 않으면 스스로는 수정은커녕 읽는 것조차 할 수 없는 기록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는 하다.


하지만 삶의 의의는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에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오늘에 있지 않을까.


뭔소리냐고?

술은 앞이 보이지 않고 난 후에 먹어도 충분하다고 다짐했건만(10년만 기다리면 되잖아!)

오늘도 맥주 두 캔이 냉장고에 남아 있어 행복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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