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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May 17. 2024

부모교육 등록하고 온 날

아이는 노 프라블럼, 엄마는 프라블럼.

-어머님 아이가요. 

아이를 하원시키려는데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부르신다.

아이가 자꾸 친구를 밀치거나 끌어당긴다고 한다. 놀이를 할 때 마음대로 안되면 힘을 쓰는 것 같다. 하도 말로 해도 안되니 선생님이 이제부터는 놀이하다 친구 밀치면 놀이에서 바로 제외시키겠다고 하셨다. 

- 더 단호하게 해주세요. 

- 아이가 사실 그러면 너무 싫어해서요 

- 괜찮습니다. 단호하고 더 엄하게 해주세요. 


말은 그렇게 하고 돌아섰지만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돌아와서 바로 놀이치료 선생님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오늘 아이 하원 후 놀이방에 가자고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거의 6개월 만의 만남이었다. 작년에도  여름인가에 등록해서 거의 늦가을에 치료가 끝났다. 하도 친구들을 물어서 다치게 해서 어린이집을 옮겼는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시작한 놀이치료였다. 우연인지 치료덕분인지 놀이치료 후 아이의 폭력적 문제행동도 어지간하게 잡히고, 등원거부 문제도 해결이 되었다. 

그때 놀이치료에서 배운 것은 엄마가 아이의 놀이나 행동을 침범하지 않고 행동을 읽어주고 마음과 감정을 읽어주는 것 등등 이었다. 매번 갈 때마다 듣지만 매번 잘 안되는 것. 이 센터는 놀이치료에는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상담까지 해주는 곳이다. 상담을 통해 엄마의 마음에 타인을 의식하고 배려하는 불안이 너무 높아서 아이에게도 강요하는게 많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어린이집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고 2학기 즈음에는 순조롭게 적응을 하는 것 같아서 찬바람이 불 즈음 놀이치료를 종료했었다. 

 

 그런데 해가 지나고 3월에 담임 선생님이 바뀌면서 아이가 어린이집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하기 시작했다.

화가나면 깨물기도 하고, 어디에서 배웠는지 친구를 해치고 싶다는 나쁜 말도 했다. 바깥놀이 시간에도 우리 아이는 빌런이었다. 친구들에게 모래를 뿌려대서 교실로 먼저 들어가는 벌을 받았고, 내가 하원하러 가서 본 바깥놀이의 난동상황만 해도 벌써 여러 번. 

 새 학기가 시작되고 또 새학기 병이 도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낮잠시간은 없어지고, 바깥에서 노는 시간은 길어졌다.(올해 담임 선생님이 바깥놀이에 진심인 선생님이셨다.) 작년에 시작했지만 올해 본격적으로 가고 있는 태권도며, 새학기 들어서 시작한 학습지며 아이도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이가 피곤한 날에는 선생님과 상황공유를 하기도 하고, 등원을 늦게 하거나, 낮잠을 재우기 위해서 점심 먹고 하원시키기도 했었지만 여전히 아이는 상호작용 놀이에 적응하지 못했다. 


다시 놀이치료에 가면서는 굳이 같은 곳을 다시가는게 맞는 걸까라는 고민도 하긴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상호작용 놀이나 게임을 부탁하려는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 두시간에 걸친 상담결과는 내 생각과 달랐다. 


오랜만에 주원이를 본 이 부부 상담가들은 아이의 그간의 발달사항을 쭈욱 듣더니, 아이에게는 문제가 전혀 없다고 결론 내리셨다. 아이가 센터의 놀이방에서 노는 모습을 직관하면서 아이의 상승과 성장욕구와 에너지가 엄청나고 이건 좋은 거라고 말씀하셨다. 다만 잠깐 센터에서 아이가 나에게 올 때의 내 반응을 예리하게 관찰하면서 잘 못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셨다. 

예를 들면, 인사를 시키는 것 

하지만 아이가 입구에서 얼른 못 들어가고 있는 걸 내가 재촉하지 않고 들어갈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줬던 건 칭찬해주셨다. 

아이가 와서 나에게 매달릴 때의 내 반응에서 내가 무의식적으로 힘들어하고 아이를 밀어내는 것을 캐치하셨고, 나에게는 아이에게 쓸 에너지가 하나도 없다고 평가하셨다. 그러니 자꾸 힘들고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재촉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0세에서 3세까지만 아이들 정서를 잘 케어해주면 그 이후는 문제가 없는데, 그게 안되서 지금까지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도 하셨다. 그리고 지금부터 초등학교 들어가기까지 3년이 아이의 정서가 완성되는 골든타임이라고도 하셨다. 지금 아이의 정서관리를 잘 해놓으면 아이의 사춘기는 덜 힘들게 지나갈 거라고도 하셨다. 

엄마가 이렇게 불안한데 아이까지 불안하게 키울거냐는 말에 수치와 참담함을 무릎쓰고 부모교육을 받기로 결정했다. 대화를 하면서 새롭게 느낀 것이 많았다. 


 이미 작년에 아이 놀이치료 할 때 적지 않은 시간 상담을 받았음에도 내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이 여전히 공격적이고 아이의 주도권을 빼앗으면서 아이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는 방법에 대해서도 다시 배웠다. 

(예를 들면, 너는 원하는 옷을 입을 수 있어. 그런데 고르기 어려우면 이것과 저것 중에서 골라볼래? 약간 이런 느낌?-차후 상담선생님께 다시 확인할 것!)

'그놈의 맥포머스'라는 말을 썼다가 아이도 그렇게 말할 거라며 부정적인 표현을 지적받았다 .

또 아이의 부정적인 말과 행동에 대한 읽기도 다시 배웠다. ( 이후에 내가 부정적인 말을 할 때마다 아 내가 부정적인 말을 하고 있구나 알아차리게 되었다. 알아차리게 되니 일단 조심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당장 긍정적인 사람을 변할 수는 없어도, 부정적인 행동을 줄여나가는데에는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렇게 느꼈구나, 그렇게 하고 싶구나." 

그림을 그려달라고 조르는 아이에게 계속 먼저 상황을 해결해주려고 했던 것도 틀린 행동이었다.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스스로 고민하게 해야했고, 울고 속상해 할지언정 본인이 그리고 싶은 해적깃발을 내가 대신 그려줘서는 안되는 거였다. 설거지하는 시간도 아이가 주지 않는 건 아이에게 훈육이 들어가야하는 부분.

'지금은 엄마가 이걸 해야해 '


 거절 못하는 성격도 혼났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다 쓰면서 아이에게 쓸 에너지를 낭비했다고. 딱 3년만 하고싶은 거 참고 아이에게 집중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3년 뒤에는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다고. (진짜 어떻게 아셨지. 용하신 분들. 상담 센터가 아니라 돗자리를 까셔야 하는거 아니냐고요) 한숨을 많이 쉬는 것도 지적받았고, 너무 참고참다가 터지는 것도 지적받았다. 참는게 능사가 아니라는 거다.  


센터를 나오는 순간까지도 무사할 수 없었다. 

센터의 출입문 도어락의 건전지함 뚜껑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나보다. 아이가 그걸 들었는데 내가 그걸 낚아채서 끼워버린 것이다. 

-아이가 해보려고 하는데요 좀 기다려 주시지! 

나는 그 순간 또 배웅하는 센터의 소장님 부부가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 시간도 너무 늦으니 그 순간 아이의 주도권을 빼앗아버린 것이다. 정말 답이없는 구제불능 엄마이다. 


결론은 그렇게 놀이치료(놀이방이라고 알고 있음)를 원하는 아이는 더 올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엄마의 문제가 해결되면 아이는 저절로 편안해 진다고 하셨다. 나는 이제 다음주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한시 반에 부모교육을 받으러 간다. 


센터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  센터아래 김밥집도 문을 닫아버렸다. 차가운 5월 밤바람에도 아이를 재촉하지 않고 차가 있는 곳까지 돌아왔다. 크룩스신발을 슬리퍼로 신어서 자꾸 신발이 벗겨지는데도 아이가 슬리퍼로 신고 싶다고해서 그러자고 했다. 찬바람이 불고 아이가 배고플거라는 조급한 마음이 명치를 찔러왔다. 아이는 또 길가의 화단에 있는 징검다리를 모조리 밟아야겠다고 했다. 또 밤공기가 갑자기 더 차가워진 느낌이 들었지만 아이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보고자 했더니 돌다리를 모두 밟으면서 빨리 갈수 있는 방법이 보였다. 아이는 신났다. 차에 타서는 카시트에 앉지 않겠다고 했다. 

-좋아 김밥집까지는 뒷좌석에 타자 대신 안전벨트는 메야 해. 

안전벨트도 자기가 꽂는 다고 해서 기다려 주었다. 

-천천히 해봐 정 안되면 엄마가 도와줄게 

 손가락은 차 지붕을 두드리면서 조급함을 달래는데 결국 한참 씨름하던 아이가 안전벨트 메는 것을 성공했다. 아이는 스스로 성공한 안전벨트를 절대 벗어나지도 다시 풀지도 않았다. 


결국 모든 김밥집이 문을 닫았고 집으로 향했다. 신호대기하는 시간에는 급한 마음에 김밥을 배달시킬까 했는데 2만원이 넘게 나오는게 아까웠다. 결국 좀 굶는다고 애가 죽지 않아. 마트에서 간단히 장까지 보고 집에 오니 시간은 거의 9시. 아침에 먹은 국에 밥 말아먹이고 싶었지만, 아이는 굳이 김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간단히 계란말이 김밥을 쌋는데, 아이는 가장 예쁘게 썰어진 김밥을 집어 내 입에 먼저 넣어주었다.


앞으로 한달 40만원의 비용은 적은 돈은 아니지만, 아이를 존중하고 기다려주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그 보다는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결코 비싼 비용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들기 전 아이가 조용히 귓가에 속삭여 주었다.


"엄마 사랑해요!"

언제나 반사적으로 영혼없이 엄마도 사랑해 했는데 나도 오늘은 진심을 담아서 대꾸해줬다. 

"그렇게 말해주니 엄마가 감동이야! 엄마도 사랑해!"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니, 이런 문제아 엄마 밑에서도 참 잘자라 준 우리아이가 너무 대견하고 예뻐보였다. 

엄마가 문제라고 하셔놓고는 나중에는 문제라기보다는 개선할점이라고 정정해주신 상담선생님. 다음주까지 열심히 또 기록해보고 다음 상담을 준비해야겠다. 


조금은 벌거벗겨진 느낌이지만, 그래도 뭔가 다 털고 오니 개운한 기분이들기도 해 오랜만에 블로그에도, 브런치에도 글을 남길 용기가 생겼다 .그동안 글이 안 써진건 내가 불안해서였나보다. 


아이에게 '걱정하지마 엄마는 항상 네 편이야.' 라고 말해주지 못한 건 나 역시 그런 말을 들어본 적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내 사춘기의 고통은 피가 날 만큼 괴로웠던 것 같다. 내 아이에게는 절대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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