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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Nov 15. 2023

부서지는 것들



   어제는 늦은 낮잠 때문에 아이가 늦게까지 깨어 있었다. 아이가 바퀴가 하나 없는 장난감 수레를 발견했다. 어린이집에서 받아온 교구였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올 때부터 바퀴가 하나 없었다. 아이는 바퀴가 없는 수레 장난감을 볼 때마다 바퀴 하나는 찾아 달라고 칭얼거렸다. 적당히 함께 찾는 척해주다 보면 이내 잊어버리고 다른 장난감을 찾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포기하지 않고 바퀴를 찾아대는 게 아닌가. 나올 리 없는 수레의 바퀴를 찾아주다가 내가 먼저 지쳐버렸다.


“우리가 바퀴를 만들어 줄까?”

 밤이 늦은 시간이었고 나에게 남은 체력은 없었지만, 아이는 펄쩍 뛰면서 좋아했다. 아이의 반짝이는 눈빛에 어쩔 수 없이 클레이 도우를 꺼내 들었다. 다른 쪽 바퀴의 크기를 가늠해 적당히 반죽을 굴렸다. 원목 수레 장난감에 새 바퀴를 다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새 바퀴를 보고 아이는 환호성을 질렀다.


 새 바퀴는 만 하루도 되지 않아 아이 손에 의해 뽑혀 부서지고 말았다. 아이 방을 정리하다 아이가 가진 것들을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온전한 장난감이 몇 개 없었다. 어디선가 얻어온 자동차와 로봇장난감들은 색이 바래거나 더 이상 소리가 나오지 않은 것이 많았다. 기차놀이 세트와 옥스퍼드 블록은 벌써 부품이 절반은 없어졌다. 즐겨보는 그림책은 찢어지거나 너덜거리는 것이 한두 권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완전하지 않으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당연히 아이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 모르게 버린 장난감도 벌써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는 어딘가 부족하고 모자란 장난감들도 잘 가지고 논다.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그 장난감이 얼마나 비싸고 완전한지가 아닌 것 같다. 아이는 어제 내가 만든 가짜 수레바퀴를 보며 행복해했다. 하지만 그것은 수레가 완전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 들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 중 ‘갓생’이라는 말이 있다. ‘완벽’의 ‘완’이 신(God) 의미를 가진 ‘갓’으로 변형되어 ‘갓벽’이라고 부르며, 강조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파생된 ‘갓생’이라는 단어도 있다. 이는 완벽한 인생을 말한다. ‘갓생’을 살기 위해 뭔가를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완벽’이든 ‘갓벽’이든, 그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나는 이런 단어를 대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진다. 완벽하지 않으면 뒤처지고 가치 없는 것이라고 내모는 것 같아서다. 새해를 맞이해 다이어리를 사려고 검색해 보았다가, ‘갓생을 위한’이라는 다이어리 판매 문구를 보고 구매를 포기한 적도 있다. 나는 도저히 ‘갓생’을 살 수 없을 것 같고, ‘갓생’을 살아내지 못하는 나는 무능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내 눈에는 조악하지만 아이에게는 소중한 장난감들이 내게 말해준다. ‘갓벽’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이다. 인생은 부서지기 쉬운 것들로 가득하지만, 완전한 것만이 언제나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건 아니다. 완전하지 않은 그 자체로도 가치 있는 건 아닐까. 부서지는 것들에 조금은 더 관대한 세상이 되기를 바라본다.


오늘도 아이의 부서진 장난감을 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본다. 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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