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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Nov 26. 2016

작은 카페에 앉아 크루아상 하나

#갈림길 사이에서 가장 달콤했던 날  

우연히 스페인으로 오게 된 친구와 함께 바르셀로나 여행을 시작했다.

스페인에 대한 로망이 가득한 친구는

보는 것들마다 연신 감탄을 금치 못하며

스페인에 와있음을 실감하려고 애썼다.  

   

"와ㅡ 여기가 스페인이야!

지금 스페인에 있는 거야!!

난 이 자유로운 사람들의 분위기가 너무 좋더라."


아무것도 없는 거리에 구름 하나 달랑 떠있는 하늘일지라도 

그 친구에겐 세상 가장 자유롭고 떨리는 하늘이었으리라.



작은 것 하나에까지 들뜬 친구의 모습이 마냥 해맑고 즐거워 보였다.

행을 시작한지 3개월이 지난 나로서는

사실상 매번 들뜬 감정을 가지고 여행지를 바라보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출발부터 거리 하나하나가 설레고 아름다워

심장이 두근거리는 여행지가 있는가 하면,

때론 새로운 곳에 도착해서도 무덤덤하게 시작하는 날도 더러 있으니 말이다.


매번 모든 것에 환호하고 떨리면 좋으련만,

아마 그렇게 모든 체력을 소진했다면 이미 내 여행은 막바지에 접어들었을지도 모른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

창가에서 바라보는 거리의 색감,

걸어가다 보이는 건물의 조각 하나하나가

친구에겐 새로운 영감이자 축복이고 행복이었다.     


사실은 그게 조금 부러웠다.

보이는 모든 것에 감동을 받고 가슴 벅차 하는 설렘이.

새로운 것에 환호할 수 있는 첫 마음이.

하루를 꼬박 세고 돌아다녀도 지치지 않는 열정이.     


그 친구는 되려 내가 부럽단다.

하루 종일 집 앞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하루를 흘려보낼 수 있는 그 여유가 말이다.

     

누군가에겐 한 번도 닿아 보지 못할 수 있는 곳에 있으면서도 들뜨고 설레기보단 익숙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여유가

여행을 하는 사람이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 같다고 친구는 말했다.     



어쩌면 어떤 여행을 하든 우리는 각자의 모습으로 여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에도 각자의 정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여행에서도 각자의 정답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의 얼굴 생김새가 다 다른 것처럼

똑같은 생각과 똑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여행을 하는 모습도 각자의 모습을 닮아

각자의 방식대로 흘러갈 뿐이다.   

  

곧 내가 여행하는 것이 정답이며,

가 행복하다면 그건 충분히 제대로 된 여행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곳을 여행하고

같은 곳을 걸어도

우리는 다른 것을 느끼고 배운다.


그래서 난 여행이 좋다.     

여행에서만큼은 '다름'을 조금 더 쉽게 인정하게 되니 말이다.


어디를 가는지

얼마나 머무는지

누구와 떠나는지

똑같은 경우를 가지고 여행하는 사람은 없다.


수많은 경우의 수들은 같은 여행지를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바꿔버리고 한다.


그래서 우린 모두 다른 것들을 얻고

다른 것들을 깨닫게 된다.   


그러기에 어떤 여행이든 각자의 여행이 가져다주는 감동은 무궁무진하다.


그것이 내가 계속해서 여행을 하는 이유이고,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가 아닐까.     



친구의 떨리는 발걸음을 보며

내 발걸음도 조금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밟고 있는 이곳이 조금 더 설레고 낯선 곳이 되어갈 무렵,

나는 다시 멈추기로 했다.     


친구는 아침 일찍 근교 여행을 떠났고,

나는 간단히 노트북과 책을 챙겨 집 앞의 작은 카페로 향했다.   

  

지나다니면서 줄곧 눈여겨보던 곳이다.

동네에 사는 현지인들이 가끔 들러 쉬는 곳이며,

친구들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곳이기도 하고,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땐 산책을 나와 커피를 한잔 마시고 돌아가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 곳에 나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들처럼 나의 아침도 조금 여유롭고 편안한 곳에 있기를 바랬다.     

조그만 크루아상과 아메리카노 한 잔에

2유로도 채 되지 않는 착한 가격의

메뉴를 시켜두고는 노트북을 켰다.


진하고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달콤한 크루아상의 향과 함께 담겨 나온다.     



특별히 예쁜 인테리어도 없다.

특별히 엄청난 커피 맛을 가진 곳도 아니다.

특별히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번화가도 아니다.


그럼에도 난 이곳이 참 좋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편안한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줄 서서 들어간 유명한 베이커리에

빽빽이 자리한 테이블에 앉아 다리를 구겨 넣고

피와 디저트를 정신없이 먹고 나오는 곳보다

이곳이 좋다.     



 한잔 마시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이곳이.

주인아저씨와 적절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이곳이.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노래에

고개를 까닥거릴 수 있는 이곳이.

나는 더 좋다.     


아무래도 내일 아침도 난 이곳에 앉아 있을지 모르겠다.

이만한 커피와 크루아상은 어딜 가도 있겠지만,

이만한 감동을 주는 아침의 여유는

아무 곳에서나 만날 수 없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내일은 친구와 함께 와야겠다.

천천히 걷는 여행의 소소한 즐거움도 함께 전해주며 말이다.     



하늘이 조금 흐리고,

바람이 조금 불고,

조용히 웃고 싶을 땐 ,

이렇게 작은 카페로 가야겠다.


그리고 따뜻하게 데워 낸 크루아상 한 조각을 시켜야겠다.

그곳에서도 바르셀로나의 아침이 떠오르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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