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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Jun 14. 2019

은밀히 나가고 싶은 공간

카카오톡 단톡 방이 만드는 불편함에 대하여

언제부턴가 구성원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 있다. 몇몇은 대화를 하고, 대부분은 말이 없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말이 대체로 없던 구성원 중 누군가 슬그머니 일어나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이유를 알 수 없다. 괜히 불편한 마음에 누군가는 의논하고, 누군가는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해본다. 이 돌발 상황으로 인해 각자 생각이 복잡해진다. 남겨진 구성원들이 갖가지 상상 끝에 내린 결론은, '그가 이 집단에 불만이 있어서'이고 '원래 이 곳에 잘 어울리지 않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중 나간 사람과 연락이 닿는 사람이 있어 물어본다. "왜 나갔어?". 그러자 답이 돌아온다.


굳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서.


이 상황이 어색하게 그려지는 이유는 대체로 이런 상황이 현실세계에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공간에선 구성원이 나가기 전 인사를 하거나 남겨진 구성원이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는다. 드나드는 문이 있으니 나갔다가 언제든 다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인데, 단톡 방은 그렇지 않다.


큰 맘 먹을 일


꽤 오래 머물렀지만 딱히 존재감이 없던 두 개의 단톡 방을 나오는 일은 오랜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서야 가능했다. 그곳에 속한 이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쌓인 '안 읽은 메시지'숫자 배지(bedge)를 치우며 마음먹기를 수개월, 어느 날 더 이상 망설이지 말자 마음먹고 그 방을 나온 후 매우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그간 왜 그리 신경을 썼는지. 하지만 그렇게 그냥 나와도 아무런 영향이 없을 정도로 본인의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단톡 방이었기에 괜히 고민했나 싶기도 하지만, 본인뿐 아니라 구성원 전체가 강한 유대감을 가진 소수의 인원이 모인 단톡 방이라면 아마도 별 말없이 그냥 나오기에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단톡 방을 나가기 전 딱히 설명할만한 내용도 없다. 어차피 공짜로 쓰고, 가만 놔둬도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그 공간을 '그냥' 나간다는 것을 사람들은 대체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톡방이 너무 많아 굳이 남아있을 필요가 없는 이 곳은 정리할게요"라고 솔직히 말한다면 일부 남겨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재수 없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차 은둔하다가 아무도 모르게 몰래 나가는 고민을 시작했다. 실제로 인터넷 검색창에 '단톡 방'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추천 검색어 상위에 '단톡 방 아무도 모르게 나가기'라는 문장이 보인다. 많은 이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나가고자 하되 '아무도 모르게'가 중요한 그 공간. 초대는 타의로, 이탈은 자의로 이루어지는 단톡 방은 이처럼 기능적으론 합리적이지만 감정적으론 부분 제한이 생기는 독특한 구조다. 고민은 나간 사람과 남겨진 사람 모두에게 생긴다. 그게 뭐라고 이리도 신경을 쓰는지. 바로, 'ooo 님이 나갔습니다' 형식의 원치 않는 알림 때문이다.

신경을 끄지 못하는 이유


한국 언론진흥재단에서 2017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단톡 방 구성원 중 가장 많은 비중이 '친구'단톡 방이며 가장 많은 사용 목적은 '여러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거나 결정할 때의 편의성' 때문이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정보공유나 재미 목적보다 '유대감이나 집단 소속감'이 단톡 방 이용의 상위 목적이라는 것이다. 경험상 대체로 친구, 동창 혹은 가족과의 단톡 방이 최소한 2개 이상의 복합 목적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시작은 모임 일정을 정하기 위해서였으나 이후엔 목적이 유대감이나 소속감으로 변하며 해당 이벤트가 끝났다고 해서 쉽게 이탈할 수 없는 공간으로 발전한다. 이탈은 곧 '소속감 결여' 혹은 '변절'로 인식되어 모임 주최자 혹은 상위 계층자에게 '강제 소환'을 당하거나 이후 그 이유를 '추궁'당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벌어진다. 다행인 것은 최근 이런 형태의 단톡 방 대부분이 평소엔 조용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각자 매너를 지키는 문화가 잘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몇은 여전히 (꽤 자주) 모두의 공간을 사담으로 채운다.


단톡 방에서 이어지는 연결(connection)이 오프라인의 인간관계를 정확히 반영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는 듯하다. 가상의 공간 속 기술의 편리함을 누리고 나서 왜 굳이 불편함에 머무를까? 원치 않는 알림이나, 나도 모르게 단톡 방에 쌓인 쓸데없는 잡담이 일상의 소음으로 느껴진다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신경 끄고 살면 되잖아요.


하지만 앞서 인용한 재단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절반이 넘는 사용자가 '내가 남긴 메시지를 몇 사람이 봤는지 계속 확인'하고 비슷한 비율의 사람이 '메시지를 모두가 봤는지 끝까지 확인'하며 일부는 '메시지 확인을 재촉하거나 왜 안 하는지 물어보기'까지 한다고 하니, 신경 끄는 게 나 하나면 충분할까? 내가 남겨진 사람일 수도 나가는 사람일 수도 있는 그 공간이 불편한 것은 알고 보면 양자 모두의 '예민함'에서 비롯되는 것일지 모른다.

잘 나가고, 잘 보내기


대체로 방의 존재 목적이 '유대감'이나 '소속감'일 때 더 그 방을 나오기로 결정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앞선 공간의 예시에서, 나간 사람이나 남겨진 사람들이나 불편한 상황이 비롯된 한 가지 '결여'는 바로 말 한마디,


안녕히 계세요. 필요할 때 불러 주세요~.


이 정도면 원래 예민하거나 그 이유가 궁금한 사람들이 조금 덜 신경을 쓰도록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대체로 말이 없던 구성원이 불쑥 인사하고 나가는 것도 자연스럽지 못하므로, 남아있는 사람들이 괘씸함 잠시 넣어 두고 뒤에서 욕하지 않는 여유로운 상호존중의 인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나친 관심에 불편해하고 무심함에 익숙해지는 요즈음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쉽게 외로워지고 신경 많이 쓰고 사는 피로한 사회적 동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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