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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니스트리 Sep 18. 2023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

이 길엔 빛도, 구름도,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도 있다. 이 길엔 바다도, 벚꽃도, 오색 찬란하게 강산을 물들이는 단풍도 있다. 또 이 길엔 땀도, 거친 숨도, 점점 감각이 사라져 가는 두 다리도 있다. 그리고 이 길엔, 조화로운 어울림과 이어짐, 쉬 잊히지 않는 장면들이 있다.


그 길 여기저기에, 글을 아무리 써도 다 전하지 못할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벚꽃은 봄에 핀다. 벚나무는 덩그러니 혼자가 아니라 여러 그루가 모여 있을 때 그 꽃이 더욱 예쁘다. 비록 짧은 개화 기간이 아쉽지만, 벚꽃이 만개할 때는 화려하다 못해 주위가 훤히 밝아진 착각도 든다. 그래서 벚나무 군락지를 찾은 사람들은, 개화한 나무 아래에서 일생에 단 한 번인 것처럼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벚꽃은 화려한 만큼 짧게 머물다 사라져 사람들에게 ‘지금이 아니면 다음은 없다’는 조바심마저 들게 한다.


단풍은 가을에 든다. 문경새재 길을 걷다가 본 절정의 샛노란 단풍은 잊을 수가 없다. 노란 단풍이 예쁘다 못해 황홀한 기분까지 들어 한동안 멍하니 서서 바라봤다. 단풍 든 산의 색감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은행나무 단풍의 노란색은 … . 지금도 보도 위 점자블록, 찻길의 경계선, 테이블 위 바스크 치즈케이크의 노란색들을 마주하고 있지만 은행 단풍의 노랑과는 비교할 수 없다. 세상의 노란색 중 으뜸은 은행나무의 단풍색이 아닐까?


벚꽃 혹은 단풍으로 유명한 계절의 명소들을 차로 가자면 교통 체증이며 주차난까지 신경 쓸 일이 많다. 그래서 벚꽃의 아름다움과 스트레스가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는 이들의 사정은 차량 운전자보다는 나은 편이다.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곳에는 벚꽃이나 단풍의 명소들이 많다. 봄철 한강으로 나가 동으로 달리다 보면 팔당이 나오는데, 팔당에서 북으로 향하면 양수리 주변의 벚고개, 명달리, 중미산 등 벚꽃이 예쁜 고갯길을 만날 수 있다. 이 고개들은 오르막이 결코 만만치 않지만, 주위에 흐드러진 벚꽃의 장관은 땀과 숨의 고통도 잊게 한다. 한강 서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강변 길 내내 벚꽃이 흐드러져 터널 같은 구간이 이어지고, 아라갑문을 지나 정서진을 향하면 역시 쭉 뻗은 길 좌우로 벚꽃이 피어 있다.


반포천변 자전거길


단풍 명소도 찾아보면 많다. 양수역에서 남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여주 이포보 방면으로 방향을 틀면 남한강변 평지 길이 이어진다. 이포보를 지나 남으로 가다 보면 도리섬이 나오는데, 캠핑족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가을 단풍길이 절경이다. 양수역에서 북한강 자전거길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호명산과, 안양천 자전거길을 지나는 서쪽 끝 대부도의 메타세콰이아 길도 가을에 단풍이 수놓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아얘 서울을 벗어나 남쪽 먼 속리산의 말티재도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게 많이 알려진 단풍 명소다.


사실 꽃과 단풍뿐만이 아니다. 라이더들이 찾는 명소 중에는 바다나 호수, 계곡과 같이 물이 멋진 곳도 있다. 제주도는 말할 것도 없고, 삼 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 어디든 자전거로 달리기 좋은 해변 국도가 천지다. 청평호, 충주호, 삽교호와 같이 자전거길이 멋진 신비로운 호수를 비롯해 남한산성, 양평 사나사, 가평의 용추계곡도 자전거로 가기 좋은 길과 시원한 물이 매력적인 장소다. 이들 명소는 익히 알려진 전국 각지의 관광지에 비해 사람이 적다. 고속도로가 많이 생긴 요즘엔 자전거로 달릴 수 있는 지방국도는 상대적으로 자동차가 적고, 지역 곳곳에 미세혈관처럼 뻗어 있어 포장만 되어 있는 길이라면 더 깊숙이 있는 자연에 닿을 수 있다.


팔당 가는 길




경기도 양평에는 고찰 사나사(舍那寺)가 있다. 무려 고려시대 태조 6년에 세워졌다는 이 절은 산속 깊이 자리한다. 사나사는 임진왜란과 의병의 봉기, 한국전쟁 등 여러 번의 창과 칼의 대치에 불에 타 소실과 재건이 반복된 아픈 역사의 증거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다행히 주위의 자연은 자생하며 지금의 수려한 경관을 유지했다. 사나사 근처에는 제법 수량이 많은 계곡이 흐른다. 이 계곡을 자전거로 간 적이 있었다. 장마 직전의 무척 더웠던 날로 기억한다.


그 여행을 이끈 E는 오랜 자전거 경력을 가진 여성 라이더다. 국내 아마추어 대회에서 입상을 하기도 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E의 리더십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처음 가는 길에 함께한 사람들은 또한 서로를 잘 몰라 어색할 수 있었는데, E는 우리 모두가 어색하지 않게 이야기를 건네는 등 배려 있게 대했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앞에서 잘 끌어주며 안내를 해 준 덕분에 계곡에 무사히 도착해 물놀이도 즐기고 각자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었다. 그날의 여행은 특별했고, 또 즐거웠다.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멋진 경험을 할 수 있게 이끌어준 E에게 답례로 작은 선물을 보냈다. E는 감사 인사를 했고, 이 것을 계기로 우리는 가끔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E는 왠지 이쪽 세계의 사람 같은 냄새가 풍겼다. 사실 자전거를 타며 만난 사람들은 서로 무슨 일을 하고, 어디에 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등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안장 위에서는 말없이 타고, 안장에서 내린 후에도 자전거에 관한 이야기만 가볍게 나눌 뿐이다. 그런데 어쩌다 건넨 말도 그저 형식적으로 받지 않는 E를 보며, ‘이 사람도 나 만큼이나 매 사에 꽤나 진지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취향도, 관심사도, 의미에 대한 생각도 거의 어긋남이 없이 잘 맞아 신기했던 E는 스스로를 ‘진지충’이라고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지루해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속마음을 자주 숨기고, 과묵해지게 되더라고요"


TMI(too much information: '너 꼰대야'를 간결하게 말하는 신조어)와 같은, 우리 다음 세대의 언어 권력이 영 마뜩잖던 나는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한 것 같은 E의 말에 깊은 공감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일상적 대인관계에서 진정성이 왜곡되거나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걸 공감하는 우리는 대화를 하면 할수록 감정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걸 느꼈다. 말을 하기보다는 공기와 함께 삼키는 데 익숙해 오히려 헛배가 불러버린 사람들처럼 우리는 쉴 새 없이 직장, 사람, 운동, 글, 사색과 더불어 일상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어쩌다 이야기는 자정을 넘어 이어졌다. 그러다가 다음날 아침이면, '잘 잤느냐'며 서로의 퀭해져 있을 눈을 걱정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계절 라이딩에 대한 대화를 하다가 E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저는 벚꽃 잎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어요. 꽃은 함께 피어 이쁜데, 그게 지면 이리저리 바람이 휩쓸려 다니다 결국은 서로 헤어지게 되잖아요. 그게 자연의 섭리 같아요. 사람도 만나 어울렸다가 자연스럽게 헤어져 서로 잊히는 게 정한 수순이 아닐까요?"


E의 말은 한동안 생각에 잠기게 했다. 지금은 비록 대화가 잘 통하는 서로를 만나 마치 도플갱어를 발견한 양 신기하고 즐거운 기분에 들떠 있지만, 우리도 결국 그네들처럼 각자의 삶 속으로 사라져 결국 각자가 잊힐 운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다. 자전거를 함께 타던 사람들은 돌아오는 길에 각자의 집 방향으로 하나 둘 사라지고 결국 마지막엔 혼자가 된다. 그렇게 자전거의 세계와 일상은 대체로 분리되어 있다. 자전거의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은 헬멧과 고글로 얼굴을 가리고,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른다. 각자 마신 커피 값, 밥 값만 나눠 내면 그 길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단톡 방은 목적을 다하고, 더는 이 모임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어지면 인사도 없이 사라진다. 그걸 탓하거나 서운해하는 이도 없다. 잊고 잊히는 그런 일회성 관계가 보통인 세계. 혹, 나와 E 또한 안장 위에서 만났으니 지금과 같은 잠시의 교감과 공감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의미였을까?


돌이켜 보면, 그간 자전거를 함께 타는 타인과 자전거를 넘어 서로의 일상, 서로의 이상, 서로의 상상을 마음껏 나눠본 사람은 드물었다. 아니, E와 같은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E는 나보다 훨씬 현명해 앞으로 벌어질 모든 일들을 예측하고 통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이별 예고 같은 E의 이야기에 이렇게 글로 답했다. 장마가 막 끝났지만, 비는 간헐적으로 자주 오던 무더운 어느 여름이었다.


기나긴 장마 끝 하늘은 좀 더 맑을 줄 알았는데, 기후가 아열대로 변한 듯 무더운 기온에 쉼 없이 몰려드는 비 구름이 예상치 못한 물줄기를 뿌려대니, 봄 꽃은 다 지고 거센 비바람에도 잘 버텨줄 이파리만 나뭇가지에 무성한 한여름이란 사실이 나무들은 참 감사하겠다 싶다가, 너의 이야기가 반향이 되어 쉬이 떠나지 못하고 귓가에 맴돌아 잠시 그 의미에 젖어보려 해

봄 무렵, 어떠한 개연으로 그 나무 그 가지에서 나란히 피어났던 벚꽃 잎은 때가 되면 땅으로 지고, 이리저리 봄바람에 휩쓸리다 오 간데 없이 사라지는 게 마치 우리들 만나고 잊힘의 이치인 듯하여 그저 그 시간에 충실할 뿐이라는 한마디에 고개가 끄덕여지다가도, 문득 어쩔 수 없는 운명이란 별명을 가진 시간이 아쉬워 벚꽃과 우리가 다른 게 무엇일까 고심하다 발견한 건, 이 이야기를 짓고 엮는 나 자신, 그리고 우리였어

소재는 인연이 주고, 엮는 건 시간이 하고, 말미에 마침표 하나는 우리가 찍어 완성하는 그것은, 바람도, 벚꽃도, 지금 다시 내리려 하는 빗방울도 아닌 우리들의 자유 의지에 의해 맺어지는, 이야기

<끝나지 않아 맺지 못하는> 중


이 글에는 마침표가 없다. 그러니 문장마다 호흡이 길어 읽기 그리 편하지 않다. 마침표를 찍지 않은 이유는, 쉬이 맺어 끝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즐거운 시간 뒤 아쉬운 헤어짐은 늘 찾아오기에 사람은 어른이 될수록 만남과 헤어짐에 무심해지고 무뎌진다. 그것이 어른들이 선택한 이별을 대하는 지혜로운 방법이라면, 나는 아직 아이로 머물고 싶은 철없는 어른일지 모른다.


자전거를 타며, 아니 인생을 살며 만난 모든 소중한 사람들, 귀한 경험들, 그리고 모든 멋진 이야기들이 끝맺음 없이 이어지길 바랐던 건, 보조 바퀴를 떼고 비로소 두 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기쁜 어린 날의 나였던 것 같다. 더 멋지고 더 비싼 자전거로 더 높이, 그리고 더 멀리 가려하는 어른은 더는 과거에 머물려 하지 않기에.


저 글을 쓰고 나서도 몇 해가 지났다. E의 예견처럼, 우리는 지금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E는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여전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사랑하는지, 아직도 벚꽃 잎이 질 때면 그 가을의 시간을 떠올리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문장도 이어지려면 쉼표와 마침표가 있어야 한다. 끊임이 없어 호흡이 길어진 문장처럼 자전거도 욕심 내어 쉬지 않고 달리면 더는 이어 달릴 수 없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매 번의 자전거 여행은 올바르고 안전하게 잘 마무리해야 한다, 는 것을.


아쉬운 마음에 맺지 못했던 저 이야기는, 오히려 미완의 미련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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