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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안 Aug 22. 2022

맑고 맑았던 여름 초입에서


캠핑은 매번 가면 지겹고 힘들다가도, 한 달만 안 가게 되면 다시 생각나는 묘한 맛이 있다. 사람은 쓴맛은 빼고 단맛만 추억으로 남긴다고 하는 게 여기도 통하는 건지 모르겠다. 지난 5월에 가족 모임으로 매주 꼬박꼬박 캠핑을 간 탓에 좀 질려버렸었는데, 한 달이 지나니 어김없이 그 초록 초록한 풍경들이 그리워져서 짐을 싸고 출발하기로 했다.


이런저런 루트를 경험해 보았지만, 결국 가장 편한 건 금요일 야밤 출발 루트다. 큰애가 중학교 들어가니, 캠핑을 간다고 과외를 빼먹기가 부담스럽고, 와이프랑 나도 회사를 매번 휴가 내기 어려우니, 금요일 일상은 온전히 다 해내고, 밤에 출발하자는 취지다. 단, 금요일 퇴근 후부터 캠핑 준비를 할 때는 짐을 가볍게 싸야 한다. 준비과정에 힘을 쏟으면, 출발할 때쯤엔 이미 짜증지수가 올라가 있어 여행의 시작이 순탄하기 어렵다. 예전에는 온갖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1박 2일 여행에 3박 4일 치 먹을 것을 챙겨갔었다. 양이 많으니 챙겨 가기도 힘들고, 가서는 그걸 다 먹느라 힘들고, 돌아올 때는 남은 걸 처분하느라 또 힘들다.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 토요일과 일요일만 머무를 거니, 딱 두 끼분의 식사와, 몇 가지 주전부리만 챙겼다. 모자라면, 나가서 사 먹거나 사 오면 된다는 마음을 먹은 후로, 캠핑 준비가 정말 간단해진 것 같다. 그렇게 저녁 7시부터 준비를 해서, 밤 9시쯤 출발을 했다. 그 쯤되면 지긋지긋한 고속도로 정체도 풀려서, 보통 2시간 반 정도면 양양에 있는 우리 아지트에 도착할 수 있다. 10시가 넘으면 캠핑장은 매너 타임이기 때문에 그 늦은 시간에 짐을 푸는 게 민폐지만, 우리 아지트는 보통 주말에는 7~8월이 아닌 이상 아무도 없기 때문에 맘 편히 들어가는 편이다. 도착하면 아이들 재우고, 와이프랑 내일 계획 조금 이야기하다 잠드는 편인데, 이번에는 오는 길이 수월해서 인지, 의자랑 테이블 설치하고, 2시까지 맥주 한잔 하며, 별보다, 랜멍하다, 음악 듣다 잠들었다.





이곳에 오면 주말 아침을 새소리와 함께 눈을 뜰 수 있어 정말 좋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새들이 여러 마리 바쁘게 움직이며 울어댄다. 바깥에 나와보니, 파란 하늘과, 초록한 숲과, 연둣빛 잔디, 상큼한 공기까지.. 어제까지의 팍팍했던 도시생활으로부터의 완벽한 공간이동이다! 중 내내 장맛비가 내려서, 이번 주말은 내내 흐릴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쨍한 날씨라니. 양양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워 기상청 날씨는 확인 안 하고 온 지 꽤 되긴 했지만, 이런 반전 날씨는 늘 재미있고, 예상하지 않은 즐거움을 준다.



카라반을 이곳에 정박시킨지도 일 년이 넘었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한 번씩은 겪었다. 이제는 사실 질릴 만큼 익숙한 풍경이지만, 신기하게도 늘 좋기만 하다. 하늘은 어쩜 저렇게 파란가. 구름이 오늘은 둥글둥글하니 이쁘네. 나무가 그새 많이 컸네. 풀 자란 것 좀 봐. 저긴 좀 깎아줘야겠다. 다행인 건, 이런 소소한 관심사가 와이프와도 아주 잘 맞는 편이라, 둘이 바깥에 앉아있으면, 숲멍하면서 자연관찰 만담을 즐기곤 한다.


서울에서는 평일에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어렵지만, 가끔 퇴근 시간이 맞아 저녁에 식탁에 마주 앉는다 하여도, 건조한 대화뿐이다. 회사 생활, 집안의 돈문제, 10년이 지나도 늘 어렵기만 한 아이들 교육, 육아 등등. 이런 대화들은 꼭 필요하여하는 이야기이다 보니, 우리의 긴장 수준을 높이면 높이지 낮추지는 못한다. 결론을 내야 하기 때문에, 대화인지 토론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재미있는 사실은 서울에서 양양으로, 도시에서 숲 속으로 이렇게 공간 이동을 하고 나면, 대화의 주제와 질도 달라진다는 점. 개미가 집 짓는 모습과, 먹이 채집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긴장될 일이 있겠는가. 오늘은 크루아상이 더 바삭하네, 덜 구웠네를 이야기하면서 주말 아침을 보내는 시간. 나에게는 캠핑 중 가장 달달한 시간이다.



모닝 숲 멍을 두세 시간 하고 나니, 아이들도 일어났고, 슬슬 커피 한잔이 생각나서 양양 시내에 마실을 다녀왔다. 양양은 근처에 있는 속초나 강릉에 비해서는 작은 도시이기 때문에, 시장 규모도 매우 작은 편이지만, 그래도 필요한 물건들은 대체로 다 구할 수 있는 편이다. 우리 가족의 시내 마실 리추얼도 늘 비슷한데, 시장 과일가게, 정육점, 하나로마트 그리고 다이소를 거치면 대충 필요한 물건은 다 구하는 편이다. 정육점에서는 양양에서 큰 돼지고기를 구할 수 있고, 과일가게에서도 갓 수확한 복숭아를 맛볼 수 있어서, 웬만하면 신선 식품들은 이곳에 와서 사는 편이다. 아이들도 이제는 시장 길이 눈에 익어 차에서 내리면 이리저리 구경을 하다 모이곤 한다. 새로운 여행지의 낯선 발견도 재미있지만, 양양은 우리 가족에게는 늘 올 수 있는 편안한 쉼터 같은 곳이 되었다.


작은 도시지만, 곳곳에 숨은 맛집은 있기 마련이고, 올 때마다 새로운 곳에서 먹는 즐거움을 꼭 찾아보려 한다. 처음 왔을 때는 시장에 있는 유명한 감자 옹심이 집 한 군데밖에 몰랐는데, 자꾸 다니다 보니 하나 둘 숨어있던 맛집들을 보물 찾기처럼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 낙산이나 속초 해수욕장 쪽 바닷가로 나가면 생선구이와 물곰탕을 먹는다. 설악산이나 주전골과 같은 산속으로 들어오면 메밀 막국수나 손두부집을 찾는다. 서퍼들로 핫한 하조대나 동호해변으로 내려가면 분위기가 Young 해지는데 음식도 그에 맞게 시카고 피자나 진득한 치즈버거를 고를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동안 계속 찜해두었던 배배젤라또에 들러서 간식을 즐겼다. 배 과수원 바로 옆에서 만드는 이 젤라토 집은 맛도 맛이지만 인테리어의 모던함이 좋았다. 너무 늙어 보이지 않는, 젊은 분위기가 살아있어서 양양이 좋은 것 같다.



                    

이날 오후에는 주전골 계곡 물놀이를 개시했다. 나는 5분만 들어가 있어도 덜덜 떨려서 여러 번 말렸는데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들이다. 이곳 계곡에서 한 해를 보낸 뒤라 지형도 꽤 익혔기에 노는데 거침이 없다. 덕분에 와이프와 나는 파란 하늘 하얀 구름 보며 한나절 망중한을 즐겼다. 계곡이란 게 참 묘한 게 물줄기가 매번 바뀐다. 깊은 웅덩이였던 곳이 한참 비가 안 와서 거의 말라버려 거기에 갇혀버린 물고기들 걱정을 했는데, 이번에 와보니 다시 물은 차고 넘쳐 본류와 합쳐져 있었다. 물고기들도 각자 집을 찾아갔겠지. 물이 맑아 눈앞에 물고기가 하도 많아서 몇 번이고 낚시질을 시도해 봤는데 나 같은 얼치기 초보 낚시꾼에게 걸리는 녀석은 한 마리도 없었다. 허탕 치고 나오는 길에 이끼가 잔뜩 내려앉은 바위를 밟아 물에 홀딱 빠져버렸다. 애초에 물고기 잡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와이프 눈에는 이해 못 할 어른 이인가보다. 나는 멋쩍어서, 그녀는 어이없어서, 웃으며 넘어갔다.



저녁엔 오랜만에 직접 BBQ를 하기로 했다. 여름철에는 저녁도 후끈한 공기가 남아 있어서 불멍을 하기가 쉽지가 않다. 아무리 불이 좋아도 땀을 뻘뻘 흘리며 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여름에는 해 질 무렵 밖에서 저녁을 머으면서 모닥불도 동시에 피우곤 한다. 스모어 겉은 간식거리는 가을철로 미뤄두고, 일단은 메인 요리에만 집중한다. 오늘은 갈빗살과 토마호크 스테이크, 그리고 야채 가니쉬를 준비했다.



이번 캠핑에선 유튜브 영상을 찍어본다고 스폿마다 비주얼 있는 사진 찍기에 시간을 좀 많이 들였었다. 이 음식들도 이 사진 구도 잡고 찍느라 맛있는 순간을 놓친 부분이 있었지. 실제로 이번 캠핑으로 영상을 한번 만들어 봤는데, 흔히 유튜브에서 보던 영상들에 비하면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유투버는 못하겠다 포기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캠핑을 즐기면서 인기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건 양립할 수 없는 일이라고.. 즐거운 순간은 찰나인데, 그 순간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넌센스인 것 같다.



마지막 날 아침. 원래는 7시에 일어나고 집을 챙겨서, 고속도로 정체 피해 집으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그런데 어제부터 계속된 파란 하늘 릴레이에 와이프와 둘 다 마음을 뺏겨 출발을 계속 뭉그적 거리고 있었다. 결국은 하루 더 쉬고 밤에 올라가기로 합의를 봄.


뜬금없이 찾아온 청개구리 손님

그렇다고 딱히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몇 분 고민해 보다가,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낙산사 경내의 커피숍에 가서 시원한 오미자차를 마시기로 했다. 잿밥에 관심이 더 많은 불경스러운 가족이라 탓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런 걸 어쩌리. 이번엔 정말 경내 커피숍에 가서 오미자차만 마시고 돌아왔다.



인근 식당에서 저녁도 해결하고, 하조대 해수욕장에서 지는 해를 구경하고, 엄청 여유를 부리다 결국 밤 8시 즈음되서야 서울로 출발하였다. 그렇게 주말을 꽉 채워도 아쉬웠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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