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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안 Nov 27. 2022

카라반 살 때는 몰랐던 것들

카라반 3년 유지하며 체득한 리얼 체험기

아름다운 풍경 속에 녹아들 줄 알았지


카라반을 구매하면서 꿈꾸었던 이미지는 대략 아래 사진 같은 씬이었다.


눈뜨고 일어나면 펼쳐져 있는 대자연의 광활함?

흔히 우리가 가는 캠핑장에서 느끼는 그런 답답함을 벗어나,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으리란..


카라반 운영 3개월 만에 그런 것은 다 환상이었단 걸 알게 됐다.


화양동 야영장

설악동 야영장

홍천강 오토 캠핑장


이 밖에도 카라반 성지라는 곳들은 다 한 번씩 가본 것 같다

3대가 덕을 쌓아야 갈 수 있다는 연곡 솔향기..

서울에서 가까워 예약 사이트가 오픈되면 1분 순삭되는 임진각 평화누리 캠핑장과 연천 재인폭포 오토캠핑장..

청수와 오수를 캠핑 사이트에서 바로 해결할 수 있는 횡성 자연휴양림..

(이런 곳은 심지어 사진도 안 남겼음)


안타깝게도 모든 사이트들은 다 '최소한의 면적에 최대한의 카라반을' 넣기 위해 딱 한정된 공간만을 허락해 주었고, 관리가 편하기 위해 바닥은 모두 파쇄석 혹은 보도블록으로 깔려 있었고, 캠핑장 사이트의 나무 수령이 얼마 되지 않아, 한낮에는 그늘을 찾기도 어려웠다.


사람마다의 캠핑 스타일에 따라 이런 사이트에 대한 만족도가 달라질 것 같은데, 우리 가족 같은 경우에는 단독 캠핑만을 다녀서 다른 그룹과 어울림이 없었고, 자연스레 '조용한' 캠핑을 추구했기 때문에, 이렇게 복닥복닥 한 환경이 만족스러울 수 없었다.


전국 일주하며 자유로운 영혼이 될 줄 알았지


카라반 처음 사고 나서 엄청난 흥분 속에 국내 일주를 하겠다는 빅 피처를 세웠었다. 큰애랑도 희희낙락하면서 계획을 세우고 엄청나게 긴 여행 계획기를 쓰기도 했었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몽산포, 영광, 목포, 해남을 지나가며 서해안을 일주하고, 보성, 여수, 진주를 거쳐 부산까지 가면서 남해안을 구석구석 탐방하고, 다시 북쪽으로 경주, 포항, 영덕, 울진, 양양으로 올라오는 Grand Tour! 지금 찾아봐도 두 부자의 흥분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하지만 이또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시작도 못하고 포기했다는 슬픈 이야기. 500급 카라반이 들어갈 수 있는 캠핑장은 꽤 한정적이다. 둔덕이 없어야 하고, 적어도 7m 이상의 사이트 길이가 있어야 한다. 당연히 데크 영역은 갈 수가 없다.

이러하니, 국내 많은 캠핑장 중에서 갈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고, 그런 곳은 전부 예약 전쟁을 통과해야 한다. 갈 수 있는 캠핑장의 예약 오픈 일자를 모두 머리에 암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전국 일주를 하기 위한 캠핑 사이트의 예약은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를 해결하려면 예약이 필요 없는 노지로 나가야 하는데, 이 또한 깔끔한 해결책은 아니다. 물과 전기가 있어야 카라반이 외부환경과 상관없이 자립할 수 있는데, 이동하면서 늘 이런 부분을 챙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 결국은 이상과 현실의 갭을 깨닫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돈이 더는 안들 줄 알았어


중고차 한대 값은 했던 카라반을 구매하면서 더는 돈이 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정말 큰 착각이었다. 500급 카라반은 어엿이 침실, 거실, 욕실, 주방을 갖추고 있는 작은 집이었다. 작은 집에서 생활을 하려니 작게는 칫솔부터 크게는 침대 베딩까지 구비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결혼 10년 만에 다시 신혼집을 꾸리는 심정으로 몇 달에 걸쳐서 카라반을 채워 나갔는지 모르겠다. 그뿐인가, 물을 떠와야 하니 워터 롤 (천수통)을 구매해야 했고, 물을 버려야 하니 오수 통을 구매해야 했다. 카라반만 있음 행복할 것 같던 마음은 어디로 사라지고, 밥솥이 있었으면 좋겠다.. 카라반 샀는데 바비큐 그릴은 있어야지.. 밤에 심심한데 티브이를 하나 살까? 개미지옥도 이런 개미지옥이 없는 듯 물욕에 빠져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초기 셋업 비용은 구매 비용으로 감안할 수 있는 비용이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견인차의 보험료 (카라반에 의한 사고는 견인차 보험으로 커버가 되어야 함)와, 카라반의 자차 보험료, 카라반 세금, 카라반 정기 점검과 자질구레한 수리비, 그리고 결정적으로 캠핑장의 카라반 사이트는 늘 일반 사이트보다 더 비싸다!


 역시 돈을 아끼려면 집에 있었어야 하는 진리를 다시 끔 깨닫게 된 요즘이다.


카라반 보험 들면 다 해결될 줄 알았어


여름철에 카라반 유저 카페에 종종 올라오는 안타까운 소식들 중 하나는 태풍에 의한 침수나 전복 피해다. 카라반은 스스로 움직일 동력이 없기 때문에 이런 자연재해에 더 취약한 편이고, 내 카라반이 그렇게 된다고 생각하면 진짜 아찔할 뿐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동차 보험을 들어 놓는다. 카라반 보험은 일반 자동차 보험과 달리 대인 / 대물 보상은 없고 오로지 자차 보상만 해당된다. 카라반으로 다른 차를 손상시켰거나 사람을 다치게 하였다면, 그 견인차가 속해 있는 보험에서 처리를 해주어야 한다는 뜻. 카라반 보험은 카라반 자체의 손실에 대해서만 보상을 해준다. (근데도 왜 그리 비싼지...)



지금 봐도 가슴 찢어지는 이 사진은, 21년도 여름휴가 마지막 날이었던 것 같다. 기분 좋게 가족들과 휴가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서, 열 번도 넘게 와봤던 캠핑장의 화장실 기와를 카라반 측면이 긁고 지나갔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고, '살짝' 긁었을 뿐인데도 카라반과 건물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이 발생했다. 쉽게 말해서 자차와 대물 사고가 발생한 것임. 사람이 다치지 않았다는 점만 감사히 여기며 보험 처리로 해결해야지.. 하고 서울로 올라왔는데, 결과적으로 보험 처리는 시도도 하지 못하고, 전부 실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보험사에 사고 접수를 한 후 매니저에게 온 답이 예상 밖이었는데, "사고 처리를 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에 이 건으로 몇 백만 원 보상을 받고 나면 내년부터는 어느 보험사를 통해서도 보험 가입이 안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카라반 보험은 의무 가입이 아니기 때문에, 반대로 보험사가 거부를 하면 도리가 없다는 뜻. 앞으로 몇 년을 운영할지 모르는 카라반인데, 태풍이나 화재와 같은 사고로 전손 처리를 해야 하면 천만 원대의 보상이 필요한 상황이라, 이번 같은 경우가 상대적으로 '소소한' 사고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억울하지만 듣고 보면 따를 수밖에 없는 논리? 그렇게 보험을 들었지만 보험처리하지 못하는 홍길동이가 돼버렸다.


텐트는 다시는 안칠 줄 알았어


힘들게 캠핑장까지 가서 가져온 짐을 꾸역꾸역 꺼내놓고 다시 몇 시간 동안 텐트를 치며 사이트를 구축하는 것이 싫어서, 카라반을 구매한 것인데, 구매 1년 만에 다시 텐트를 구매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럴 거면 있던 텐트는 왜 판 것이냐!!

사유는 이러하다. 카라반 일 년 생활을 해보니, 늘 가장 중요한 시간은 저녁과 밤 사이였다. 맛있는 저녁을 해 먹고, 자연스레 불멍을 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시간.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저녁 타임을 야외에 하려 하니,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는 제약이 생긴다. 여름에는 모기와의 전쟁, 겨울에는 다름 아닌 추위의 문제였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대안들을 마련하는데, 가장 흔한 것은 카라반에 확장 텐트를 붙이는 경우다. 어닝의 3면에 모기장을 치는 경우도 있고, 아예 거실을 확장하는 개념으로 어닝 위에 확장 텐트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들 가격도 어마어마하고 무엇보다 설치가 꽤나 어려워 보여 좀 망설여졌다. 결국 우리 부부가 택한 것은 별도의 텐트를 설치하는 것. 필요에 따라 설치/철거가 용이하고, 나중에 처분도 쉽다고 생각했는데, 어쨌거나 돌이켜 보니, 텐트를 다시 사게 된 것임. 캠핑 다시는 안 한다고 캠핑 용품도 다 처분해 버렸는데, 텐트를 사고 나니 다시 그 안에 무언가 채워야 할 것 같은 물욕이 또 올라오네? 이런 불의 순환고리가 또 있을까..


최근에는 텐트에 이어서, 윈드 스크린도 구매하고 말았다. 카라반 팔면 다시 캠퍼로 돌아가긴 아주 쉽겠어..


겨울엔 따듯하기만 할 줄 알았어


작년 겨울에 톡톡히 치렀던 한파와의 전쟁. 카라반이 제아무리 집과 같은 구조를 가졌다 해도 외부와 내부를 차단해 주는 것은 얇은 나무판 하나일 뿐이고, 겨울철에는 영하의 날씨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카라반 선배님들이 겨울철에는 차라리 물을 쓰지를 말라 조언해 주었었는데, 동파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었다가 여러 번 고초를 겪었다. 아무리 조심을 하여도 퇴실할 때 마지막으로 버린 물 한 컵이 퇴수 관아 남아 그대로 얼어 버려서, 다음 캠핑에서는 하수관이 막혀 버리는 일도 있었고, 청수동에 물도 다 비웠다 생각했는데, 그 안에 있던 청수 모터에는 물이 남아 있어서, 교체한지 한 달도 안 되는 모터가 배불뚝이가 된 채 터져 버리기도 했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서야, 겨울에는 늘 워셔액을 상비시켜 놓고 (퇴수 시 퇴수 관아 뿌려주면 얼지 않는다!) 모터가 동파에 너무 취약하다는 것을 알아서, 두세 개는 여유분을 챙겨놓고 있지만, 저 당시에 사고를 목도했을 때의 당황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물만 안 나오면 다행인데, 보일러가 고장이 나거나, 전기가 안 들어오는 경우는 정말 난감했었다. (나머지 가족은 추위에 떨면서 나만 쳐다보고 있다)




적고 보니 카라반에 대한 불평불만만 하나 가득 나열한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카라반 초보 유저로서 겪었던 시행착오라 생각된다. 한국에서의 캠핑 문화는 복작복작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예약 전쟁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감수해야 한다. 카라반은 돈이 많이 드는 취미였다. 날씨에 대한 예상치 못한 사고는 Outdoor에서 늘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늘 따듯한 아파트 안에 있어서 몰랐을 뿐이겠지.. 처음에는 그렇게 낯설고 당황스럽던 일들이 이제는 자연스러워지면서 우리만의 카라반 문화를 찾아가고 있다.


카라반 캠핑장 예약은 번거롭고, 노지는 싫다면, 인기 없는 캠핑장을 가면 된다

캠핑장에서 번잡함이 싫고, 오로지 휴식을 취하고 싶다면 사람들이 안 올만한 깊은 산속 캠핑장을 찾아야 한다

카라반 사고가 무서우면, 운전을 안 하면 된다


우리는 고민 끝에 그런 곳을 찾아냈고, 그렇게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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