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2박 3일간 첫 동계 캠핑을 잘 마무리 하나 싶었는데, 돌아오는 날 낮에 크게 사고를 쳤다.
카라반에 있는 오디오가 나오지 않아서, 퓨즈 박스를 살펴보았는데, 메인 전원을 내리지 않고 퓨즈를 갈아 끼운 것. 퓨즈를 끼울 때 빠직하고 작은 스파크가 튀어서 아차 싶었지만 별일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돌아서 확인해 보니, 보일러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머리가 하얘지고 식은땀이 흘렀다. 양양에 카라반 장박 한 지가 벌써 4달이 넘었고, 다음 주에는 큰애 친구를 초대하는 소위 '접대 캠'을 하기로 했는데..
보일러 수리를 하려고 카라반 출고한 김포 공장까지 끌고 가려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꼼수를 찾던 중, 카라반 출고해준 사장님과 협력 관계에 있는 업체가 한 시간 거리에 있다는 걸 알고, 다음 주 평일에 출장 수리를 부탁드렸다. 우린 잔 머린 정말 좋아~하고 와이프랑 만족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번 주 목요일, 출장 나오신 사장님께서 정말 죄송하나, 이 불량 건은 김포 공장에서만 수리가 가능하다는 소식을 전해 주셨다. 아.. 이럴 거면 차라리 지난주에 가져올걸.. 후회가 밀려온다. 보일러 수리를 안 하고 겨울을 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양양을 갈 수도 없고..
하지만 더 이상 꼼수 부릴 옵션이 없었기에, 금요일 저녁에 가서 토요일에 끌고 오기로 했다. 다만 보일러가 안 들어오니 얼마나 추울지 가늠이 안되어 '어쩔 수 없이' 나 혼자 가기로 했다. 와이프가 너무너무 걱정이 된다며, 같이 와준다고 했지만, 집에 있는 아이들은 어쩌냐고 '정중히' 거절을 하였다.
금요일 저녁에 카라반 도착하고, 토요일 아침에 가져올 것이니, 따로 짐은 필요하지 않았다. 혹시 너무 추울까 봐 텐트 캠핑 시절 사용하던 침낭과, 아침에 먹을 즉석 가락국수, 무료한 밤 시간을 때울 맥주 한 캔으로 간단하게만 짐을 꾸렸다. 금요일에 출근을 하고 생각해보니, 퇴근길에 서울을 통과해서 양양까지 가는 길이 너무 막힐 거 같아, 4시 반 조기 퇴근 찬스를 썼다. 양양까지 가는 길이 너무 심심할 것 같아 요즘 유행한다는 오디오북에서 재미있을 것 같은 소설도 하나 구해서 다운로드하여 놓았다.
이상스레 어제의 짜증스럽던 그 카라반 연행기가, 낭만적인 솔캠으로 바뀌어 간다.
양양으로 가는 길은 다행히 그리 막히지 않았다. 평소에는 뒷자리에서 두 아들들이 떠드는 소리, TV 틀어놓은 소리에 피로도가 증폭되었던 것 같다. 양양까지 운전길이 이렇게 편안할 수가. 특히 오디오북이 최고의 선택이었는데, 성우가 읽어주는 소설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3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캠핑장 도착을 하니 7시 반쯤이었는데 산속이라 그런지 깜깜한 밤이었다. 1월 평일에 캠핑 오는 사람이 있을 리 없지. 캠장님도 집에 계셔서 내가 문을 따고 들어왔다. 진정한 전세 솔캠을 하려나 보다.
정말 잠만 자고 갈 생각에 아무것도 챙겨 오지를 않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 캠장님께 부탁해서 창고에서 장작 한 더미를 빌려다가 모닥불을 피웠다.
카라반은 일주일 새 또 꽁꽁 얼어 있었다. 보일러가 없으니 이대로 지낼 수는 없어서 쉘터에서 쓰던 경유 난로에 불을 올려서 카라반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제법 따듯해져서 점퍼 벗고도 생활할만했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피우는 모닥불은 정말 매력 덩어리이다.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좋아서 음악도 틀지 않았다. 지난 8월부터 유독 우리 사이트 근처에 꽤 흥이 넘치는 이웃 캠퍼들이 많으셨기에, 이렇게 조용한 불멍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혼자 있으니 정말 할 일이 없었다. 이런 게 솔캠의 매력이구나. 지난번부터 하늘의 별이 너무 예뻐서 이번엔 맘먹고 별 사진을 담아봤다. 이사하면서 DSLR 놓을 자리가 없어 처분한 게 엄청 아쉬웠는데, 핸드폰 카메라로도 어느 정도 아쉬움 해결은 되는 것 같아 좋았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하늘의 별구경을 하였다. 북극성과 북두칠성은 볼 수 없는 밤이었지만 그 외의 수많은 별과 별무리들로 눈을 뗄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아, 이 맛에 솔캠을 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