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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안 Jan 21. 2023

카라반에서 보낸 사계절

카라반 운영 3년 차에 접어든 2022년, 사계절을 온전히 지내보니 이제는 내공이 제법 생긴 것 같다. 우리 가족의 스타일에 맞추어, 캠핑을 가는데 들어가는 힘은 되도록 빼고, 힘들 때 쉬어갈 수 있는 쉼터 역할로 카라반을 두었다. 설악산 주전골 언저리에 정박시켜두고 서울-양양 간을 단출한 1박 2일짜리 짐만 챙겨서 옮겨 다녔다. 다른 카라반 유저들처럼 경치 좋은 곳에서 눈이 호강하는 알빙을 하지는 못했지만, 우리에게 정말 쉼이 필요할 때, 우리만의 아지트에서 쉴 수 있었으니 그걸로도 충분했다.




상도문 돌담 마을과, 영랑호의 석양


와이프가 꽃을 좋아해서 봄에는 꽃구경하기 좋은 곳을 목적지로 하고 속초, 양양, 평창을 많이 구경 다녔다. 서울에서의 벚꽃구경이야 인파에 떠밀리는 여의도를 생각하게 되지만, 강원도에는 호젓하게 꽃구경을 즐길 수 있는 거리가 많이 있다. 양양 남대천 꽃길과 상도문 돌담마을, 속초 영랑호에서 벚꽃 구경을 정말 눈이 시리다 못해 질리도록 하였다. 이때 막내랑 2인용 자전거를 타고 영랑호를 한 바퀴 돌았는데, 처음으로 자전거를 탄 아이가 신이 나서 내내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꽃이 지고 푸른 잎새가 나던 5월은 꼬마 캠퍼들에게는 딱히 할 일이 많지 않은 계절이다. 바닷가에 들어가기에는 아직 물이 차기 때문에 가장 따분한 시즌 중 하나.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지난 몇 달간 황량했던 숲 속에 다시 생기가 돌아오는 이 계절이 가장 반가운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듣는 새소리가 어찌나 곱고 예쁜지. 아이들이 늦잠 자는 오전 시간이 우리 부부에게는 캠핑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인데, 커피도 내리고, 빵도 굽고, 아주 가끔은 책도 읽으면서 우리만의 테라스에서 호강을 누렸다.



여름


카라반이 정박해 있는 캠핑장 뒤로는 설악산에서 내려오는 계곡이 있는데, 물이 정말 맑다. 주변 길가에 보면 매운탕집이 많이 있는데 다 이 계곡에서 나오는 물고기들이라고 한다. 아들과 함께 낚시하는 로망이 있어서, 견지낚시부터 시작해서 릴낚시까지 꽤 많은 종류로 여름 내내 다양한 시도를 해봤다. 물론 동자개나 메기 같은 큰 물고기는 우리 같은 아마추어에게 잡혀줄 리 없고, 작은 소망은 송사리라도 하나 잡아보자는 것인데, 눈먼 고기하나가 걸려주지를 않네. 큰 아이랑 새벽녘에 계곡에 나가 앉아 물 반 고기반인 웅덩이를 바라보며 "쟤네가 왜 우리 미끼는 안 물까?" 하며 슬퍼하던 시간도 지나 보니 다 좋은 추억 같다. 올해는 꼭 하나 잡는다.



7월을 넘겨 본격적인 여름이 된 후에는 고성 바닷가에 자주 나가 있었다. 낙산이나 하조대처럼 가까운 해수욕장도 많이 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편하게 앉아서 쉴 곳은 아니었다. 우연히 찾게 된 고성 바닷가는 우리들만의 아지트가 되었는데, 작년즈음에 일반인에 공개된 곳이라 그런지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와이프는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들의 습성 중 하나는 자연물 채집인 것 같다. 우리 셋은 늘 모래사장보다는 돌무지가 있는 바닷가를 좋아하는데 그래야 게나 새우 같은 바다생물들을 잡을 수 있기 때문! 동해에서는 이런 갯바위 해변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이곳이 바로 그런 곳이었음. 해초도 많아서 7월쯤 되면 손가락 한마디 정도 되는 복어 새끼들이 많이 있어서 아이들이 하루 종일 있어도 지루해하지 않는 최고의 놀이터였다. 와이프랑 나는 이케아에서 산 하얀색 파라솔과 의자 두 개 펴놓고 하릴없이 파란 바다와 하늘 구경을 하다 보면, 괌이나 사이판 부럽지 않은 휴양지 느낌을 제대로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커피 천국인 대한민국 동해라, 바로 뒤에는 맛 좋은 라테를 파는 카페도 있는 건 덤이었고!


가을

가을 단풍 구경에 설악산만 한 곳이 또 있을까? 캠핑장 바로 뒤에 있는 오색 주전골에 단풍이 벌겆게 흘러넘치는 계절이었다. 이 나이 때 아이들이 다 비슷하겠지만, 십 대 아들 둘을 데리고 하이킹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마음 같아서야 대청봉을 오르고 싶지만, 아이들과 함께 해야 하는 여행이니 왕복 두세 시간 정도의 코스로 가볍게 단풍 산행을 즐긴다. 산행을 끝내면 우리 가족만의 리추얼로 산아래 기념품 가게에 들러서 오천 원짜리 작은 기념품을 하나씩 사주었는데, 아이들이 주로 부엉이를 골라서 지금도 카라반에 부엉이만 수마리가 나란히 앉아 있다. 부엉이로도 사실 입막음은 잘 안되어 늘 투덜거리는 녀석들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 따라나서주는 것에도 고마울 따름이다. 영 몸이 무거워 걷기가 싫다고 하는 주간에는 낙산사에 있는 카페에 차를 타고 가서 시원한 호박식혜 한잔씩 시켜놓고 시원한 동해바다를 구경하기도 했다. 산사에 있는 고양이들이 아주 점잖은데 막내 녀석이 특히나 좋아해서 한참을 놀다가 내려오곤 했다.


가을이 캠핑을 즐기기에는 가장 좋은 계절인 것 같다. 바람이 많이 불지 않을 때에는 장작불을 때우고 캠프 파이어도 많이 했다. 넷이 모여서 아이엠 그라운드도 하고, 쫀득이부터 시작해서 구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다 꺼내다 구워 먹곤 했다. 제사 지낼 때마다 천덕꾸러기로 남 북어포가 이때만큼 인기 많을 때가 없다. 구름이 없는 밤이면 부르을 다 끄고 고개를 한껏 젖힌 채 별자리 찾기도 하였다. 불멍타임 와이프나 아이들과 평소에는 못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아마도 일주일간 집에서 나눈 대화보다 훨씬 심도 있고 다채롭다. 카라반에 있으면 우리 모두가 마음의 긴장 상태가 조금은 이완되어서 그렇겠지. 핸드폰도 잘 안 보게 되는데, 주변 자연의 변화를 보고 들으며, 수다 떨 화제가 너무도 많았기 때문인 거 같다. 이보다 자연스러운 SNS 디톡스가 또 있을까 싶다.  


겨울


올 겨울에는 눈꽃 캠핑을 못하여 아쉬움이 컸다. 12월 한 달 동안 장박을 신청하여 매주 카라반에서 주말을 보냈었는데, 아무래도 눈이 빠지면 겨울 캠핑은 심심하다. 날씨 탓에 주로 실내에서 보드게임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대신 매 끼니 식사에 정성을 다해서, 먹거리가 풍족하게 시간을 채워낸다. 우리 가족은 카라반에서 가까운 양양 시장을 즐겨 찾는데, 웬만한 야채, 과일과 고기는 다 구할 수가 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돼지 삼겹살을 두둑이 사 와서, 4시간 동안 훈연을 하여 구워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 따듯한 야채와 밥을 같이 곁들여 준비하면 꽤 근사한 파티 상이 된다. 캐럴을 틀고, 크리스마스트리가 깜박깜박 점등하고, 경유 난로 위 주전자에서는 보글보글 물이 끓고, 이제는 산타의 진실을 알지만 여전히 모른 척하는 아이들과 함께, 산타가 어디 쯤 와있을까로 노닥거렸던 크리스마스이브의 저녁 시간이 참 좋았다.




올해도 우리 가족은 카라반 여행을 즐길 수 있을까? 큰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입시의 압박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강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중2가 입시라니!) 1박 2일의 짧은 시간이라도 좋으니 가족이 한 달에 한 번쯤은 일상 스트레스 훌훌 털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모닥불 쪼일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올해의 작은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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