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폴라리스> Vol.170 '식탁을 부탁해'
‘농사짓는 교수’로 유명한 이원종 교수는 아이의 아토피를 치료하기 위해 얻은 낡은 농가 주택에 살면서 ‘거친 음식’의 중요성과 마주하게 됐다. 세계 10대 장수 마을을 돌며 그곳에 사는 100세 노인들을 직접 만나 얻은 생로병사의 비결 또한 ‘음식’이었다. 이원종 교수의 말에 따르면 사시사철 알맞은 때에, 자연의 바람을 맞고 자란 식재료들은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 된다.
글 성소영 에디터 한순호 포토그래퍼 강봉형
지난 2010년, 따님과 함께 <먹을거리 걱정 없는 기적의 아이 밥상>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아이들의 밥상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과거에 비해 식품의 종류가 무궁무진해졌습니다. 그야말로 먹을 게 넘쳐나는 세상인 거죠. 하지만 그와 함께 식품 안전성에 대한 불신은 점점 커져가고 있습니다. 2004년 불량 만두 파동, 2008년 멜라민 분유 파동 등 불량식품의 유통이 만연했을 뿐 아니라,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와 같은 사회적 문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등의 사고로 인한 수산물 안전성 문제 등 우리가 먹는 음식에 관한 좋지 않은 소식이 연일 쏟아졌어요. 이렇게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확신이 없는 가운데서도, 요즘 아이들의 식탁에는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이 넘쳐납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제가 20년간 농가 주택에서 아이들을 키운 노하우를 소개하고 싶었어요.
어린 시절에 거친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라는 서양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결국 우리의 몸을 완성한다는 얘기지요. 아이들의 두뇌는 6~8세가 되면 거의 다 발달하는데 특히 음식에 대한 선호도는 10세 이전에 대부분 형성됩니다. 따라서 어릴 때 거친 음식을 먹어본 경험이 없는 아이는 성인이 돼서도 이러한 음식에 거부반응을 나타낼 가능성이 높아요. 또 성장기에 먹는 음식은 대부분 신체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합니다.
교수님이 늘 강조하는 ‘거친 음식’은 단순히 촉감이 거친 식품만을 뜻하는 말이 아닐 텐데요, 거친 음식의 정확한 정의가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거칠게 자란 음식’이에요. 농약 없이 자란 채소, 자연에서 난 산나물, 방목돼 자란 가축의 고기 등 입니다. 특히 자연의 모진 환경에서 자란 식물은 온실에서 자란 식물보다 색과 향이 더 진하고 다양해요. 해충이나 병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보호물질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죠. 이것을 ‘생리활성물질’이라고 하는데, 이는 인간의 몸에 들어와서도 좋은 영양소가 돼 면역력을 높여주고 콜레스테롤을 저하해 각종 암이나 성인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저서 <100세 건강 우연이 아니다>를 통해 장수 마을 사람들의 공통점이 ‘먹을거리’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을 찾아 나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2004년에 <위기의 식탁을 살리는 거친 음식>이라는 책을 발간한 뒤, 음식이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대해 더 깊이 있게 고민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장수하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는데, 국내에 출판된 책은 대부분 저자가 직접 다녀오지 않고 전해지는 사례를 정리한 경우가 많더라고요. 예를 들어 에콰도르의 장수 마을 ‘빌카밤바(Vilcabamca)’에 직접 방문해 확인해보니, 이곳의 장수식품이 ‘감자’라고 쓴 누군가의 글과는 달리 실제로 사람들이 먹는 것은 감자와 비슷하게 생긴 ‘유카’라는 뿌리채소였습니다. 이처럼 그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보지 않고는 정확한 정보를 전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개인적으로도 말로만 ‘장수하는 이들은 대부분 오염되지 않은 채 거칠게 자란 음식으로 식탁을 채운다’고 주장하는 게 학자로서 늘 마음에 걸렸어요. 그래서 여행을 결심했습니다. 방학 때마다 지역을 하나씩 정해 돌아다니느라 10군데 마을을 가는데 3년이 걸렸어요.
아이에게 비싼 사교육은 시키면서도,
조금 비싼 유기농 식품 앞에서는 머뭇거리죠.
하지만 부모가 반드시 해야 할 것은
건강한 음식을 즐겨 먹는 식습관을 길러주는 일이에요.
그렇게 찾아낸 장수 마을 노인들의 공통점은 거친 음식을 먹고, 소식하고, 몸을 많이 움직이는 등의 생활 습관이었지요. 이러한 식습관이 어린 시절부터 형성돼 왔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대부분의 장수 마을이 문명의 혜택을 받지 않은 오지에 위치해 있어요. 마을 사람들의 소득도 넉넉하지 못한 편입니다. 가공식품을 만나기 힘든 지리적 위치에 있는 동시에 돈이 없어서 사먹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중국의 장수 마을 ‘바마(巴馬)’에 갈 때 주민들에게 줄 선물로 무엇을 사가면 좋을지 중국에 사는 지인에게 물어봤더니 ‘백설탕’을 가장 좋아할 것이라고 했을 정도로 현대 문명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수 마을에 살고 있는 100세 이상 된 노인들은 매일 텃밭을 가꾸고 일을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건강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의도치 않게 행해진 음식의 제한이 오히려 건강을 선물한 것이지요.
음식에 대한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만큼 두 딸의 아버지로서 자녀들의 올바른 식습관 형성을 위해 노력한 점이 많을 것 같아요.
벌써 농가 주택에서 산 지 25년이 지났네요. 처음 이곳에 터를 잡게 된 것은 큰아이의 아토피를 치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캐나다에서 지낼 때에는 건강했던 아이가 한국으로 돌아와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아토피로 고생을 했거든요. 이전부터 아파트 베란다에 작은 텃밭을 일궜을 정도로 채소 기르기에 관심이 많았어요. 농가 주택으로 이사한 뒤로는 텃밭에서 매년 채소를 키웠습니다. 부모가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탓에 우리 아이들은 매일 제철 채소를 먹으며 자랐지요. 한 번은 딸이 학교에 갔다 와서 “엄마, 다른 아이들 도시락은 다 화려한데 내 도시락은 왜 이렇게 우중충해?”라고 한 적도 있어요(웃음). 친구들 도시락에는 햄, 소시지 같은 가공식품이 많은데 자기 도시락에는 푸성귀뿐이라는 말이었죠. 멸치볶음이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투정을 부릴 때면 아내는 아이에게 칼슘이 풍부한 멸치를 많이 먹어야 키가 클 수 있다고 친절하게 음식의 효능에 대해 설명을 해주곤 했습니다.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한 적은 없지만, 먹는 음식에 있어서 만큼은 철저하게 건강한 식품을 먹이려고 노력한 편이에요. 덕분에 제 큰딸은 아이 엄마가 된 지금도 유기농 마켓에서 장을 보고, 제 아내가 그랬던 것처럼 가족에게 자연식 밥상을 만들어주고 있어요.
어린 시절 부모가 길러준 건강한 식습관은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 이어지면서 자연스레 자신의 아이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거네요.
맞아요. 그래서 부모가 먼저 아이에게 모범을 보이는 태도가 가장 중요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식습관을 닮기 때문이지요. 엄마, 아빠가 가공식품을 즐겨 먹고 과식하면서 아이에게는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를 따르는 자녀는 없을 거예요. 물론 오래된 식습관을 바꾸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도 의식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게 필요해요.
<먹을거리 걱정 없는 기적의 아이 밥상>을 보면 음식이 건강뿐 아니라 성격, 성적, 불안 등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먹을거리가 개인의 성향에 영향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건강한 음식을 먹는 아이라고 해서 100% 성격이 원만하고 성적도 높다는 것은 아니지만, 예민한 기질을 지녔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의 경우 음식이 아이의 성격이나 성향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요. 실제로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식은 당분을 단시간 내에 뇌로 공급해 뇌의 활동을 원활하지 못하게 하고 인슐린이 지나치게 분비되기 때문에 이런 음식을 많이 먹으면 쉽게 피곤해지고, 주의가 산만해집니다.
특정 음식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거나 알레르기가 있을 때도 그 음식을 먹음으로 인해 생긴 불편한 기분이 아이를 불안정하게 만들기도 해요. 제 딸은 어린 시절에 음식을 먹고 자주 체하곤 했어요. 그런데 미국에 가서야 자신에게 밀가루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을 먹어서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됐던 걸 모르고, 가족들은 그저 위장이 약한 아이라고만 생각했었던 거죠. 이처럼 정도가 심하지 않은 알레르기는 평생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아요. 따라서 아이가 이상 행동을 한다면 일단 먹는 음식과 식습관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수님이 계절별로 즐겨 먹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텃밭에서 나는 제철 채소를 주로 먹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식재료를 직접 기르거든요. 봄에는 산나물이나 민들레, 질경이 등 산에서 나는 나물 종류를 많이 먹어요. 여름에는 토마토, 가지, 오이를, 가을에는 더덕, 고구마 등을 많이 먹지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겨울에는 호박고지, 무말랭이 등 여름·가을철에 말려둔 채소를 주로 먹습니다(웃음).
대부분의 부모가 가공식품은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생활이 너무 바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먹이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또 거의 획일화된 주거 공간에 살고 있어서 식재료를 자급자족하는 데도 한계가 있는데요.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의 부모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현대사회에서 모든 음식을 건강식으로 한꺼번에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단 우리 가족이 먹는 식품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차근차근 바꿔나가려는 인식부터 가지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또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클릭 한 번에 지역의 유기농 농산물을 매주 집까지 배송해주는 시스템이 많습니다. 그런 서비스를 한 번 신청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외에도 베란다에서 화초를 기르는 대신 채소를 길러보시길 권해요. 상추, 파, 토마토, 고추 등은 화분으로도 충분히 기를 수 있고 씨앗에 물을 뿌리기만 하면 자라는 콩나물, 새싹채소 등은 베란다가 없어도 쉽게 재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특별히 주의해서 섭취해야 할 음식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상추, 쑥갓, 깻잎, 시금치, 근대, 부추, 열무, 미나리, 풋고추, 토마토, 오이, 가지, 취나물, 머위, 사과, 딸기, 포도, 복숭아, 배, 감귤 등은 잔류 농약이 자주 검출되는 농산물이에요. 따라서 가급적 유기농으로 구입해 먹는 게 좋습니다. 고기나 생선 등은 가축, 양식을 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자란 것들이 좋습니다. 요즘은 동물복지, 무항생제, 무농약 등을 강조한 식품이 많으니 되도록 이러한 식품을 사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아이들에게 꼭 먹여야 할 식품을 추천해주신다면요?
DHA가 풍부한 등 푸른 생선은 유아의 뇌 발달을 향상시키고 뇌세포 감소를 방지하기 때문에 많이 섭취할 것을 권장합니다. 그런데 DHA는 양식한 어류에는 들어 있지 않고 깊은 바다에서 잡히는 생선에 들어 있으니 이를 꼭 명심하셔야 해요. 또 콩은 단백질이 40% 이상 들어 있고, 아미노산의 구성도 뛰어나 신체의 성장과 생리 기능 조절에 필요한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밥을 지을 때 콩을 넣어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를 매일 보충해주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미 첨가물의 맛에 길들여져 있거나, 채소를 싫어하는 등 편식하는 아이들은 거친 음식을 먹지 않으려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또는 노하우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음식을 만드는 데 아이를 참여시키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주말농장, 베란다 텃밭 등을 활용해 함께 채소를 기르는 것도 좋고, 같이 장을 보러 가거나 음식을 만들 때 아이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습니다. 또 향과 맛이 강해 아이가 잘 먹지 않는 음식이 있다면, 보이지 않게 소량씩 갈아서 아이가 잘 먹는 음식과 섞어주어야 합니다. 일단 낯선 맛과 향에 익숙해질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아이의 먹을거리 때문에 고민이 많은 부모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많은 부모님들께서 아이들의 교육 등에는 신경을 쓰지만 가장 중요한 먹을거리는 등한시하는 경우를 자주 봐요. 아이에게 비싼 사교육은 시키면서도, 일반 채소보다 조금 비싼 유기농 식품 앞에서는 머뭇거리는 것이죠. 하지만 아이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부모가 반드시 해야 할 것은 건강한 음식을 즐겨 먹는 식습관을 길러주는 일이에요. 아이의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 먹을거리에 관심을 더욱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아이를 변화시키는 거친 음식 List
● 학습 능력과 기억력을 높여주는 ‘블루베리’
블루베리는 항산화력이 뛰어나고 시력과 기억력 향상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 블루베리에 풍부한 검붉은색의 안토시아닌은 학습과 기억력 증진을 도와준다.
● 뇌에 비타민을 공급하는 ‘브로콜리’
뇌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쉽게 몸 밖으로 배출되는 비타민 B군을 수시로 보충해야 한다. 브로콜리에는 비타민 B군 중 하나인 엽산이 많아 기억력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아이들이 잘 먹지 않으려고 할 때는 부드러운 수프로 만들어주거나 고기 요리에 넣어 먹으면 좋다.
● 기억력을 증진시키는 ‘호두와 아몬드’
호두와 아몬드는 건뇌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오메가-3 지방산이 뇌의 활동을 촉진시켜 머리를 좋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호두에는 비타민 B1, 비타민 E, 셀레늄, 마그네슘 등이 풍부하다.
● 집중력을 높여주는 ‘굴’
굴에는 ‘학습 미네랄’이라고 불리는 아연부터 필수아미노산, 칼슘, 철분, 타우린이 풍부하다. 일종의 아미노산인 타우린은 두뇌 성장 발달, 망막 기능 촉진, 신경계 활동을 돕는다. 비릿한 향으로 아이들이 거부감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달걀물을 입혀 구워주거나 육수를 내는 데 사용하면 좋다.
● 신진대사를 돕는 ‘피망’
피망에 들어 있는 비타민 A와 C는 신진대사를 돕는다. 이 밖에도 엽록소, 철분, 칼슘 등도 풍부하다. 피망을 넣고 스크램블드에그를 만들어주면 달걀의 단백질까지 동시에 섭취할 수 있어 더욱 좋다.
● 성장기 아이들에게 좋은 ‘연어’
연어에는 필수아미노산을 포함한 양질의 단백질이 풍부해 성장기 아이들이 꼭 섭취해야 할 식품이다. 특히 뼈와 치아 형성에 필요한 칼슘이 풍부하며, 칼슘의 흡수를 돕는 비타민 D가 많이 들어 있다.
참고 도서
이원종, 이소영(쥬니맘) <먹을거리 걱정없는 기적의 아이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