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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샤Asha Dec 22. 2016

할아버지의 이름과 아버지의 눈 색깔

신들의 나라 네팔, 히말라야의 아름다움 아래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2013년, 2014년 2년간 머물렀던 시간들을 순서대로 기억하며 네팔의 여행지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과 365일이 축제인 그들의 삶을 나눕니다. 2015년, 4월 대지진 이후 관광객이 줄었습니다. 다시 희망을 일구어 가는 네팔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기억하며, 애도하고, 희망하는 여정을 2017년 1월 다시 떠납니다


할아버지의 이름과 아버지의 눈 색깔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롭게 만나게 되는 네팔은 신기하다. 최근에야 한 두군데 생겼다곤 하지만 한국처럼 일반적인 부동산이 없는 네팔은 집이나 사무실을 구하려면 발품을 엄청 팔아야했다. 지나가다가 건물에 'To-Let' 이라고 쓰여있으면 임대 한다는 뜻이기에 그 때마다 들어가서 물어야했고 외국인이 같이 가는 순간 가격은 배로 올랐다. 네팔 여성들의 수공예품 가게와 카페 그리고 여행사 등의 사무실로 쓸 건물을 찾고 있었기에 위치도 중요했지만 실내의 동선과 규모도 중요했다. 하루종일 먼지를 뒤집어 쓰고 쉬디씨와 벅터씨 오토바이 뒤에 각각 나눠타고 카트만두 전역을 뒤졌다.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는 크게 바그마띠 강을 중심으로 강남과 강북으로 나눌 수 있다. 신성한 바그마띠 강이 지금은 쓰레기강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수영도 할 정도로 매우 깨끗했다고 한다. 강북에는 대사관과 고급호텔들이 모여있는 라짐팟(Lazimpat) 과 여행자들의 거리인 타멜(Tamel)을 중심으로 볼 수 있고 강남에는 고대 랄릿푸르왕국이었던 현재의 파탄 지역과 UN 및 NGO 사람들의 거주지역이 많은 잠시켈과 사네파 지역을 중심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몇날 몇일을 그렇게 사무실을 찾는 일과 카페에 쓰일 기자재의 가격조사하는 일로 보냈다.


네팔의 대형마트체인점인 ‘바뜨바뜨니’에서 온갖 가전제품들의 가격을 조사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러 앞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주문을 하려고 하니 주문받는 분들이 말은 안하시고 주문서를 내밀더니 적으라는 동작을 취한다. 알고보니 청각장애인분들을 고용하여 운영하는 레스토랑이었다. 식당 벽에는 수화를 사용할 수 있고 청각장애인분들이 주문을 받을 때 어떻게 하라는 안내문이 있다. 베이커리카페는 1991년 네팔에 처음으로 패스트푸드를 소개한 곳으로 현재는 카트만두에 9개 정도의 지점을 가지고 있다. 메뉴도 다양하고 의미도 있어 이후 가끔 찾게 되었다.


* The Bakery Cafe 

http://www.thebakerycafe.com.np


출처 : 베이커리카페 홈페이지  - 사람우선(People first) 라는 메세지가 인상적이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서 중요한 일을 깜빡한 게 생각났다. 네팔에서는 하루에 중요한 일을 하나정도 할 수 있었다. 아직 적응도 안됐거니와 정신없는 오토바이와 뚝뚝이, 택시 사이로 신호등도 없는 차도를 건너는 것은 최고조의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가져왔다. 이동하는 것은 쉽게 피로감을 몰고 왔고 한국처럼 방안에서 핸드폰으로 모든 물건을 감상하고 주문할 수 있는 것과 달리 가게를 일일이 찾아가서 내가 원하는게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그나마도 있으면 다행이었지만 없으면 언제올지 모를 주문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다보니 하루에 하나라도 잘 마치면 다행인 하루였다.


이날은 은행통장을 개설해야 했다. 역시나 은행계좌 하나 여는 것도 쉽지 않다. 왜필요한지 모를 정보들을 기입해야 하는 란이 시험지 수준이다. 아버지의 눈색깔이 무엇입니까? 와 할아버지 이름을 쓰는 란은 당황스러웠다. 웃지 못할 질문에 나도 가볍게 아버지의 눈 색깔이 파란색이라 써버렸다. 질문의 끝은 내가 현재 사는 곳의 약도를 그리라는 거였다. 미술과 가사시간이 제일 싫었던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최대한 성의껏 유치원생 수준으로 약도를 그려 제출하니 작게 찢은 종이에다가 수기로 숫자 몇 개를 적어서 건내준다. 이게 뭐냐고 물으니 계좌번호란다. 통장같은건 없나요? 라고 물으니 통장은 없고 인터넷으로 거래내역을 보란다. 인터넷아이디를 달라고 하니 일주일 뒤에 오라고 한다. 오늘도 기운이 쪽 빠진 채로 너덜너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이후 돈을 찾으려고 하니 출금신청서 묶음 책을 신청하라 그래서 또 며칠, 인출카드를 신청하고 또 일주일, 비밀번호를 잃어버린 후 카드를 재발급 받을 일이 까마득하여 카드를 버려버리고 출금신청서 묶음책만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초록색 볼펜으로 썼다고 반려되고 500달러를 출금하려 하는데 네팔은행에 귀한 100달러는 없다고 모조리 20달러짜리로 받는 일을 반복하다 나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 비자발급을 위해 꼭 필요한 경우만 빼고 더이상 은행에 가질 않았다. 은행 가는게 제일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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