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고양이 이야기를 하기 전, 나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나는 늘 죽음을 생각한다. 마치 아무 노력이나 의식 없이 숨을 쉬는 것처럼 나는 한숨 한숨마다 죽음을 이야기한다. 지금보다 더 죽음에 가까워 있을 때 우리 사회는 아직 우울과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려하던 시기였다. 개인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라고나 할까. 물론 지금도 사람들은 의지라는 단어를 꺼내든다. 비장의 카드인 양 나에게 내민 의지라는 단어가 얼마나 의지를 사라지게 만드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죽음을 생각하며 산다는 건 나에겐 그냥 좀 불편한 일이다. 가슴이 답답하고 노상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살아가는데 크게 지장은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안 그랬던 적이 없으니 지금이 익숙한 거다. 그냥 이렇게 사는 게 말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망가져 버렸는지는 알 길이 없다. 지난 내 글들을 보았다면 더더욱 나와 같이 생각할 것이다. 그냥 평범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하지 않은 일들을 겪고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하니 생기는 인지부조화 같은 거 아닐까? 하는 짧은 생각을 해보지만 그렇다고 나의 죽음이 멀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여기서 멈추기로 한다.
사람들이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난 늘 행복이라고 대답한다. 근데 행복이라는 게 실존하기는 하는 걸까? 사람들이 농담처럼 말하는 유니콘 같은 건 아닐까? 모두가 있다고 말하긴 하지만 아무도 본 적은 없는 그런 거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나에게는 그놈의 행복이 현실감 없는 가상 세계의 일처럼 느껴지냔 말이다.
난 죽음의 반대가 삶이라고 생각했었다. 죽으면 삶이 끝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지겨운 삶이 계속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죽음의 반대는 행복일지도 모른다고.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삶은 죽음과 같다는 누군가의 명언 같은 문장이 스치고 지나가자 나는 분명 죽음을 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미 죽음을 살고 있는 나는 또다시 죽음을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
나의 이야기는 사실 별 것 없다. 오만하지도 겸손하지도 않은 태도로 삶을 마주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자.
나의 이야기는 더 머무를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