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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 Jul 17. 2023

비문(悲文)

나의 글에는 비문이 많다. 늘 비문이 없게, 읽는 사람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자고 다짐하면서도, 한번 써 내려간 글은 잘 퇴고하지 않는 이상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 글은 늘 호불호가 갈렸다. 이건 글이 아니라며 함께 일하던 나를 팽하려 했던 사람도 있었고, 나의 글이 너무 날 것 같아 흥미롭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의 글은 글이 아니라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던 말은 그냥 미안하다였다. 나의 글이 당신의 마음에 들지 못해 미안합니다. 그리고 난 한 동안 일기조차 쓰지 못했다. 그저 단어의 나열, 문장이 아닌 글자인 선과 면. 그것들을 굳이 세상으로 토해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다시 글을 조금이나마 쓰기 시작한 것은 우연한 일이었다. 쌓아놓은 감정과 마음들을 토해놓을 방법이 나에겐 필요했다. 이런 필요를 느낄 때마다 나의 예술적 재능 없음을 얼마나 한탄스러워했는지 모른다. 나에게 그러한 재능이 있었다면, 더 멋지고 더 화려한 방법으로 내 곁에 머문 이 잔인한 계절을 토해낼 수 있었을 텐데. 개탄스러웠다. 


그렇다고 나는 누군가를 나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내 고통은 내가 삼켜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글을 썼다. 비문일지라도, 나는 써야 했다. 삼켜내기 위해서 엉망진창인 글을 토해내야 했다.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그럴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살아야겠는 것을. 


그렇게 나는 다시 조금씩 글을 쓰고 있다. 여전한 비문들과 어설픈 미사여구들이 가득 차 있는 말 안 되는 글일지언정 조금씩 써 보기로 마음먹었다. 요즘은 비문이면 뭐 어떤가 하는 생각도 든다. 주어, 동사, 형용사가 조금씩 삐뚤게 모여있는 것뿐인 것을.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은가? 모든 것이 완벽한 삶이란 (내가 모르는 삶이 있을 수도 있지만) 없다고 난 믿는다. 결핍이 새어 나오는 그 빈틈으로 나는 살아간다. 그렇다. 나는 결핍의 고통으로 살아간다. 


검색창에 비문을 검색해 보면 글 속에 비문은 안된다는 말 뿐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비문을 그렇게 지워버리고 싶지는 않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나의 세계에 그래도 그 또한 삶이라는 이유로 나타나 준 나의 날 것을 마구 잘라내 버릴 수가 없다. 나에게 비문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비문(非文)은 나에겐 비문(悲文)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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