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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빛 Nov 15. 2021

점자워드 입력 봉사

오리온 자리 아래에서

올 여름 점자워드 입력 봉사를 했다.

승진자 교육 과정 중 봉사 활동이 과제로 부여되었다. 어떤 일을 할까? 이십 대에 부산시각장애인복지센터에서 녹음 봉사를 했던 것이 생각났다. 울산시각장애인복지센터를 찾아 녹음 봉사 활동이 가능한 지 물었다. 현재는 수요가 없어 점자워드 입력봉사를 해 줄 수 있는지 되물어, 가능하다고 했다.

3주 정도의 봉사 활동 후에 실적을 제출해야 했다. 이 활동은 책 한 권을 입력 완료해야 활동 점수가 인정되었다. 그런데 300페이지가 넘는 책이었는데, 3주간 입력을 해야 했다.

점자워드는 기준에 맞추어 입력하는데 점자로 변형될  최소한의 부피를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엔터키로 한줄을 띄우 점자책은  장이 넘어간다고 한다. 한자漢字의 입력도 음과 훈을 병기하여야 하고, 표는 풀어서 정리해야 한다. 이러한 방법을 배워야 해서 직접 방문하는 봉사자에게만 봉사기회를 주는 교육을 한다고 한다.

쉬는 시간이 없어졌다. 휴일은 하루 종일 컴퓨터 자판 앞에 앉아 있었다. 계속 손가락을 움직여야 해서 무리하지 않기 위해 일정시간이 지나면 쉬어가면서 했다. 페이지를 넘기고, 한 개의 장을 마치면 쉬어갔다. 13개의 장으로 구성된 약에 대한 내용이었다. 읽는 것과 거의 비슷한 속도로 워드 입력을 하고, 오타가 있는지 각 장이 끝나면 다시 한번 들여다봤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데, 워드 입력을 하면서 읽는 책은 맛이 달랐다. 내 손을 통해 글이 흘러나가는 느낌은 새로웠다. 눈으로만 읽던 것과도 달랐고, 입으로 소리 내어 읽던 때와도 차이가 있었다. 천천히 지나가는 글들이 눈을 거쳐 머리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손으로 바로 이어지는 듯했다. 연이어지는 작업에 몽롱하게 글들이 지나갈 때도 있었다.

내용이 나에게 머물지 않았던가? 각 장이 끝나고서 다시 읽어보면 내용이 떠올랐다. 흐릿하면서도 또렸했다. 마라톤을 한창 할 때 느끼던 무아지경의 경지와도 닮았다.

점점 쉬는 시간이 없어졌다. 점자워드 입력 시간은 이제 오히려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교육 중 쉬는 시간마다 워드를 입력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듯하다. 입력이 마무리 되어도 신경이 쓰였다. 오타가 있으면 읽는 이는 어찌 알까? 모니터의 큰 화면으로 다시 한 번 들여다보았다. 촘촘히 박혀있는 10포인트의 한글워드는 29장이나 되었다. 점자워드를 입력하며 한 권의 책을 세 번은 보게 된다. 어떤 다른 책을 볼 때 보다 더 많이 봤다. 어느 부분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대충은 알 수 있게 되었다.

기한 내에 마치고 책을 반납하러 갔다. 보통 한 권의 책은 한 달의 기한을 주는데, 일반적으로 두 달은 지나야 완료가 된다며 어떻게 이렇게 빨리 끝냈느냐며 담당자가 칭찬을 한다.

다른 책 한 권을 다시 받았다. 이번에는 조금 늦을거라고 말했다. 이제 교육도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주말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워드 입력을 했다. 시간이 남으면 먼저 컴퓨터 책상에 앉았다.

한 달을 꼬박 채워 두 번째 책도 마쳤다. 또다른 책이 없느냐고 묻고 있는 내 모습이 별나다. 담당자는 이제 올 해 할 책은 다했다며, 내년에 보자고 한다. 속으로 안도를 하며, 또다른 마음에서는 허전해 하고 있다. 집에 와서 쉬는 시간에 빈둥대고 있다고 해야할까? 계속 무언가가 빈 듯하다.

이렇게 또 한 권의 책을 마무리 지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봉사라고하면 다른 사람을 돕는다라고 생각했지만, 나에게 있는 다른 모습을 보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삶이 재미가 없으지면 한번 시도해 보라. 나에게 이타적 임무를 부여하고 놀이처럼 그 과정을 완수하면 마음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보름을 향해 가는 저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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