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는 즐거움
보건소에서 ‘인바디’ 검사를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몸의 변화를 체크한다. 상담사는 상체와 몸통에는 지방이 과다하게 쌓여있고, 하체 근육은 성인 남성 평균에 못 미친다고 알려주었다.
나이 들면 근육이 빠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나도 오십 중반이다. 매일 걷지만, 근육 유지는 안 되는 듯하다.
동료직원이 매일 수킬로미터를 걷는다. 하지만, 걷기만으로는 근육이 빠지는 것을 막지 못한다고 계단을 타야겠다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나도 덩달아 따라 오른다.
근무지가 종합운동장이다. 남북으로 긴 타원형의 구조이다. 양지바른 동쪽에는 세 개의 계단이 있다. 다수의 군중 이동을 위해 계단은 넓고 우람하다. 넓이가 사 오 미터를 넘어간다. 18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2미터 정도의 계단참이 나오고 다시 17개의 계단을 올라가는 구조이다. 아파트라면 3층 정도의 높이이다.
이런 계단이 세 개가 연이어 있다. 계단들은 십여 미터 정도 떨어져 자리한다. 계단하나를 오르면 앞에 두 개의 계단이 펼쳐져 있다. 내가 가야 할 곳이다. 꼭 산에 오르고서 목표로 하는 봉우리를 쳐다보는 기분이다. 세 개의 봉우리가 있는 조그마한 산을 오르는 것 같다.
삼봉은 이렇게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아침 근무 전과 점심 식후 하루 2번 삼봉을 2세트 왕복한다. 처음엔 15분 정도 걸리던 것이 이제는 10분 정도로 단축되었다.
매일 삼봉을 오르며, 정상에 서면 문수산을 매주 주말마다 다녔던 때가 생각난다. 지리산 종주를 위해 몸 만든다고 한여름을 산에서 보냈다.
산 아래 가게에 들러 정상에서 마실 오징어다리와 시원한 맥주 한 캔을 사서 수건으로 꽁꽁 싸매어 가방에 넣고 출발한다.
초입을 지나면 굽이굽이 능선이 기다린다. 산속을 걸을 때, 내가 뱉어내는 ‘헉헉’ 거리는 숨소리와 이마를 타고 내리는 땀들의 느낌. 아무도 없이, 나의 발소리만 사박사박 들린다. 이때의 감정들은 다른 어느 곳, 어떤 운동에서도 가져보지 못한 것이었다.
체력단련이나, 극기로서의 산행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나를 자연스럽게 인지하는 과정이었다.
나뭇잎 사이로 떨어져 내리는 한 줌의 빛과 가지들을 흔들면서 얼굴로 부딪혀오는 바람, 자연과 내가 하나라고 느껴지는 생생한 시간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고, 고단한 다리엔 은은한 통증이 인다. 몸으로서 내 마음을 위로하는 엄숙한 제례와도 같은 순간이다.
땅에 기대어 사는 내가, 조금 더 하늘에 가까워져 내가 사는 곳을 바라볼 때, 욕심에 가려져 못 보던 내면을 조금 들여다본다. 저 조그만 곳에서 오늘도, 내일도 하고 싶은 것을 이루어보려 아웅다웅 살고 있었구나, 산은 자그마한 하늘이었다.
처음엔 두 시간이 넘어가던 산행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평지는 거의 뛰다시피 했다. 비탈이 심한 정상아래 깔딱 고개는 여전히 힘들었지만, 정상에서 안주와 맥주 한잔은 그날의 힘듦을 날려주었다.
두 달여 여름을 그렇게 보내고 9월 첫날 지리산 종주를 했다. 아직은 여름기운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지만, 산 위는 선선했다. 밤공기는 차가웠다. 천왕봉 아래로 하산하며, 개울가에 뛰어들었다. 종주대원들이 아이가 되었다. 피로가 모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산에 간다는 기대와 두려움에 준비했던 시간들이 좋았다. 문수산을 매주 토, 일요일 아침에 혼자서 달려서 오가던 그때가 그립다. 삼봉을 하며 매주 오르던 그때의 감흥이 되살아난다. 몸이 깨어나는 것 같다.
다시 인바디 검사를 했다. 한 달이 지난 후 나의 몸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양다리에 0.1kg씩 근육이 붙었다. 몸통의 지방은 0.2kg이 빠졌다. 전체적으로 몸무게는 그대로인데, 근육은 늘고 지방은 줄어들어 종합점수도 1점이 올라갔다.
내가 걷는 것을 보고 동료 직원들도 하나 둘 합세했다. 넓은 계단이지만 네 명이 한꺼번에 오르면 비좁다. 추운 날에도 삼봉 2세트를 하고 나면 열이 후끈 오른다. 땀이 난다.
삼봉 정상에 서면 문수산과 지리산 골짜기의 냄새가 난다.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