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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Jul 11. 2020

지금, 이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

영화 <밤쉘>을 보다

미투 운동은 다들 아시다시피 2017년 미국 영화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 전력 고발하기 위해 시작됐다.  와인스타인의 범죄를 고발하는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경험담을 해시태그 "#Me Too"를 달아 자신들의 SNS에 공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촉발되었다. 이후 미투 운동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SNS를 통해 자신의 피해 경험을 전파하는 차원을 넘어서 성폭력의 심각성을 고발하고 피해자 간 연대를 모색하는 사회운동으로 발전했다.


영화 <밤쉘> 포스터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은 바로 이 미투 운동보다 1년여 앞서 일어난 기념비적인 사건을 다룬다. 2016년 미국 최대 방송사 폭스뉴스의 여성 앵커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은 미디어 산업계의 거물이자 미국 최고 보수 언론사 폭스 뉴스의  회장 로저 에일스(존 리스고)를 직장 내 성희롱으로 고소한다. 이는 미국 미디어 업계 최초의 직장 내 성희롱 소송이었다. 지금은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용어 "위계에 의한 성희롱 혹은 성폭력"!


영화의 세 주인공, 메긴 켈리, 그레천 칼슨, 케일라 포스피실 (왼쪽부터)


영어 사전에서 'Bombshell'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폭탄이라는 사전적 의미 이외에 '폭탄선언'이라는 뜻과 '매력적인 아가씨'라는 추가적인 의미가 더 나온다. 영화 제목을 '밤쉘'로 정한 데에는 아마도 나름의 의유가 있을 것이다. 영화 제목처럼 이 영화는 세 명의 '매력적인 여성'이 '폭탄선언'을 통해 거대 언론 권력을 무너뜨린 통쾌하지만 진지한 이야기이다.


그 첫 번째 주인공 그레천 칼슨은 폭스 뉴스의 대표 여성 진행자로서 2002년부터 2016년까지 14년간 폭스 뉴스의 아침 프로그램 <폭스 앤 프렌즈>와 오후 프로그램 <더 리얼 스토리>를 진행했다. 그레천 칼슨은 2016년 7월,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수 없을 것 같았던 폭스 뉴스 회장 로저 에일스를 성희롱으로 고소하기에 이른다. 그레천의 폭로로 로저 에일스가 수십 년간 자행한 직장 내 성희롱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동료 언론인들의 추가 증언이 잇단다.


그레천 칼슨 역의 니콜 키드먼


2004년부터 2017년까지 폭스뉴스에서 <아메리카 라이브 위드 메긴 켈리>와 높은 시청률의 뉴스쇼 <더 켈리 파일> 등을 진행한 간판 앵커 메긴 켈리가 폭탄선언의 뒤를 이었다. 트럼프와 벌인 TV 토론 설전으로 더욱 유명해진 폭스 뉴스의 스트 앵커 메긴 켈리(샤를리즈 테론)는 그레천이 로저 에일스의 성희롱 범죄를 폭로하자 내적 갈등에 휩싸인다.  왜냐하면 자신도 역시 직장 상사이자 자신을 키워준 로저 에일스의 범죄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메긴 켈리 역의 샤를리즈 테론


영화 속에서 세 번째 '밤쉘'로 등장하는 마고 로비가 연기한 케일라 포스피실은 그레천 칼슨, 메긴 켈리, 로저 에일스와는 달리 가상의 캐릭터다. 하지만 그 인물은 폭스 뉴스 회장 로저 에일스의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 지를 가장 생생하고 긴장감 넘치게 그려낸다. 케일라는 자신이 선택한 꿈의 직장 폭스 뉴스에서 선망받는 앵커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순수한 노력과 능력 이외에도 더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함을 알았다.



케일라 포스피실 역의 마고 로비


그것은 자신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권한과 권력을 가진 로저 에일스의 명령에 언제든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때로는 로저 에일스가 "TV 뉴스는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며 요구하는 성희롱을 감내하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어떤 원리에 의해, 어떻게 작동하며, 그 폭력은 여성의 신체를 어떻게 대상화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푸코였던가? 권력의 문제는 소유가 아니라 작용이라고 지적했던 사람이.   



 "TV 뉴스는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


로저 에일스 역의 존 리스고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은 이렇게 실존 인물들과 실제보다 더 리얼한 가상의 캐릭터를 활용하여 폭스 뉴스의 공동설립자 로저 에일스가 자신의 회사를 미국의 대표 보수 TV 채널로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수십 년간 수십 명의 여성 앵커들에게 자행한 위계에 의한 성폭력의 실상을 폭로한다. 영화의 리얼리티는 실존 인물과의 외모적 간격을 줄이기 위해 견뎌낸 장시간의 분장과 보형물 착용 이외에도 세 주인공의 관록의 연기과 세심한 준비를 통해서도 보장된다. 니콜 키드먼에 샤를리즈 테론을 더하고, 여기에 마고 로비라니, 영화 관객으로서 이런 호사가 얼마만인가?




폭스 뉴스 스튜디오를 완벽하게 재현해낸 수십 개의 세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샤를리즈 테론의 연기는 실제 인물인 메긴 켈리의 모사가 아니라 재림으로 여겨질 정도다. 여성 앵커들의 다리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나 얼굴 화장이나 옷차림에 대한 지적을 통해 드러나는 로저 에일스가 자행한 여성 앵커들의 성적 상품화와 성희롱의 민낯을 메긴 켈리가 마치 방송사 견학을 온 관객들에게 회사 소개를 하듯 전달하는 롱테이크 장면은 압권으로 영화의 주요 볼거리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런 시퀀스를 통해 영화는 폭스 뉴스사의 방송 촬영 현장에서 수많은 여성 앵커와 뉴스 제작진들이 성착취적 업무환경을 직장에서의 성공과 성취를 위해 감수하면서도 쌓여가는 불만의 목소리를 어떻게 삼키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하여 '위계에 의한 성폭력'은 단지 남녀의 성적 본능에서 기인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사와 직무를 매개로 작동하는 '권력'의 문제임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이 영화를 지금 보지 않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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