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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Oct 19. 2020

아기 아빠는 어디에 있을까?

인터넷 중고 마켓에 등장한 신생아 입양 광고를 보고 든 생각



지난 주말, 요즘 많은 이들이 애용한다는 한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 갓 태어난 신생아 사진과 함께 '36주 된 아기를 20만 원에 입양합니다'하는 광고가 올라왔다. 그래도 제목이 '판매'나 '거래'는 아니고 '입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어서 우리는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그 광고가 게재된 시간은 상당히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특히 인터넷 맘 카페를 중심으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우리 시대의 인명 경시 풍조가 이젠  갈 데까지 가서 막장에 다다랐다는 탄식과 어떻게 아기를 물건처럼 인터넷 중고거래를 통해 사고 팔 생각을 다 할 수 있을까 하는 분노가 퍼졌다. 그 누구보다 세상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아 아기를 중고품 거래 사이트를 통해 입양하겠다고 했는지도 의문이었다. 오히려 아이를 거래하겠다는 발상과 상상을 하고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어른들의 비뚤어진 생각과 일그러진 마음이 중고라면 중고일 텐데.





당근도 아닌 사람을, 그것도 중고도 아닌 신생아를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거래한다는 이 광고의 파장은 만만치 않았고 즉각 경찰은 조사에 나서 그 신생아 입양 광고를 게재한 사람의 신원을 확보했다.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그 광고를 게재한 사람은 20대 미혼모였고 아기는 이제 겨우 1주일이 지난 신생아였다고 한다.  아기 엄마는 지난 14일 미혼모 쉼터에서 아기를 낳은 뒤 공공 산후조리원에서 몸을 추스르던 중 "아이 아빠가 없어 키우기 어렵고, 입양 상담 등을 받으며 화가 나서" 위 광고글을 올린 것으로 밝혀졌다. 



그랬구나. 그러면 그렇지 의도적으로 인터넷으로 아기를 매매하려고 광고를 올린 피도 눈물로 없는 매정한 부모는 아니었구나. 그러면 그렇지 우리 사회가 아무리 타락했어도 아직은 상품처럼 신생아를 사고 팔 정도로 타락하진 않았겠지. 아기 엄마는 예상치 않은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원하지 않는 아기를 낳게 되었겠지. 그런데 원치 않은 임신으로 생긴, 원치 않은 아이를 지우기도 법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어려웠겠지.  헌법재판소 판결로는 낙태가 합법화되었다고는 하는데, 또 정부 방침을 보면 임신 14주까지만 허용된다고도 하니 뭐가 뭔지 판단하기도 어려웠겠지. 부모님한테 이런 임신 중단 문제나 출산 문제를 상의하기에도 어려운 형편이었겠지. 그런 상태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에 시달리다, 애기 아빠 없이 혼자 아기를 낳은 후 미혼모 센터와 아기 입양 문제로 다투다 홧김에 글을 올렸겠지. 여기까지 혼자 아기 엄마의 상황을 상상하고 유추해보다 문득 갑자기 든 생각은 바로 이것이었다.


아, 애기 아빠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렇다. 분명 저 미혼모의 임신과 출산에도 분명 상대방인 남자가 있을 텐데. 그리고 그 아기의 아빠도 분명 어딘가에는 존재할 텐데. 왜 이 기사에는 애기 아빠 이야기는 없고 인면수심의 매정한 엄마, 몰지각하고 철없는 애기 엄마 이야기만 등장하는 걸까? 물론 깊은 생각 없이 중고 사이트에 아기 입양 광고를 올린 그 미혼모의 행동과 사고방식도 분명 적절하진 않다. 그러나 최소한 문제의 원인이자 아이에 대해 절반의 책임을 지고 있는 아기 아빠의 존재, 역할, 의무에 대해 공정한 질문은 던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아기 엄마의 무책임과 몰지각함을 탓하기 전에 말이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8세 이하 자녀를 키우는 미혼모와 미혼부의 비율은 약 2만 1254명(73%) 대 7768명(27%)이라고 한다.  이런 통계가 말해주는 것은 결혼 전 임신과 출산에 있어서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양육 부담이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이 쏠려 있음을 보여준다. 쉽게 말해, 남성들은 혼전 관계에서 성적 쾌락만을 추구하다 출산과 임신, 육아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상대 여성에게만 맡겨놓은 채, 바람처럼 혹은 하이에나처럼 떠나버리는 것이다. 원래 남자란 기질상으로 한 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는 방랑자라고 자위하며? 그런 상황에서 임신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여성의 몫으로 남게 되고, 심지어 임신 중단 혹은 출산에 대한 결정의 부담을 여성 혼자 짊어져야 한다. 



정상가족의 신화를 넘어


 또한, 혼전 관계와 혼전 임신에 대한 윤리적 비난과 사회적 멸시는 혼전 임신과 혼전 육아의 문제를 더더욱 어렵게 만들고, 그 책임을 전적으로 여성에게만 지우게 한다. 여기에서 또 우리 사회의 굳건한 믿음으로 자리하고 있는 정상 결혼과 정상 가족의 신화는 문제 해결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식 결혼 전 젊은이들의 혼전 관계와 임신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고, 정직 결혼 제도의 틀 내에 포함되지 않는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해 배타적이고 차별적 시선을 던지는 분위기에서는 미혼모와 미혼부의 출산과 육아를 사회적으로 보장하고 지원하는 제도적 배려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정상 가족과 정상 결혼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 속에서 그 틀 내의 출산과 육아만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정상 가족 지원 시스템만 매달리는 한 진짜 신생아 거래 광고를 보게 될 날이 오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메인사진 Photo by Luma Pimente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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