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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Nov 28. 2023

'문턱' 너머

직장인에게 출근이란

내가 출근하는 사무실은 집에서 지하철로 한 20분 거리이다. 집에서 나와 5분쯤 걸어 지하철 역에 도착해 갈아타지 않고 한 번에 직장이 있는 지하철 7호선 H역에 도착한다. 다시 역을 나와 10분쯤 걸으면 사무실에 도착한다. 출퇴근 시간에는 차량 배차 간격도 길지 않고 속도도 빨라 연결만 잘 되면 30~40분이면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으니 역세권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서울에서 출퇴근에 이 정도 시간과 에너지 밖에 소요되지 않는다는 점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해서 나는 최대한 늦잠을 잘 수 있다. 침대에서 나와 세수하고 양치하고, 얼굴에 안티 에이징 크림을 듬뿍 바르고, 거울 한번 보고 나면 출근 준비 완료다. 아, 헤어는 동네 이발소가 아니라 프랜차이즈 헤어샾에서 전문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은 펌이어서 별로 손 델 일이 없다. 아침은 먹지 않은지 꽤 오래돼서 이젠 웬만한 공복감에도 끄덕 없다. 그러므로 참으로 간소하고 신속한 출근 준비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직장인들에게 그렇듯 내게도 여전히 '출근'은 힘든 고민과 결단의 시간이다. 맞춰 논 알람에 습관처럼 머리는 깨어났으나 아직 몸은 무의식의 세계를 노니는 중이다. 출근 준비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감안한 최대한의 미적거림을 소진하면 결국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적당한 연가 사유나 핑곗거리가 떠오르지 않는 한 오늘도 어제처럼 문턱을 넘어 집을 나서야 한다. 그렇다. 출근이란 결국 어떤 '문턱'을 넘는 일이 아니던가.      

  

"두려움은 문턱에서도 깨어난다 

두려움은 문턱에서 생기는 전형적인 느낌이다 

문턱은 미지의 것으로 넘어가는 이행의 장소다 

문턱 너머에서는 전적으로 다른 존재상태가 시작된다."

- 한병철, <타자의 추방> 중에서 



그래서 직장인에게 '문턱'을 넘어서야 하는 일인 출근은 두려움과 기대를 수반한다. '문턱' 너머에는 다른 존재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고통으로서의 타자, 지옥으로서의 타자일 수도 있다. 그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내게 은근슬쩍 떠넘기는 동료일 수도, 문서의 핵심적인 내용보다는 지엽적인 줄간격과 서체에 집착하는 상사일 수도 있다. 서로의 욕망이 충돌하는 직장에서 이들을 만나는 일이 때론 두렵고 경악할 만하지만, 그 고통의 경험이 없다면 다른 사람의 매력도 느낄 수 없다.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며 나는 그 '문턱'을 넘어 새로운 세계로 향한다. 몇 개의 골목길을 지나고, 수 십 개의 횡단보도를 건너 사람과 일, 사건과 경험이 있는 나의 일터로 향한다. 일터란 '문턱'을 넘어야만 도달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 곳이다.


"문턱은 경악하게 하거나 두려움을 줄 수도 있지만 우리를 행복하게 하거나 매료시킬 수도 있다 

문턱은 타자에 대한 환상을 자극한다."

- 한병철, 같은 책  





출퇴근길의 지하철은 언제나 만원이다. 얼굴이 거의 닿을 정도로, 아무리 조심하려 해도 신체구조상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접촉이 행여 오해를 살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동한다, 이토록 우리는 서로 가까이 밀착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출근길의 사람들이 친밀한 것은 아니다. 모두들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네트워크에 '접속'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서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모두들 눈은 스마트폰을 응시한 채 아주 가까이에 있는 '서로'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눈길을 주었다가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블루투스 이어폰이 대세가 되면서 이젠 모두들 귀마저 틀어막고 있다. 노이즈 캔슬링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이나 '주변'이 만들어 내는 음성과 소리, 소음과 음향과는 완벽히 단절된다. 코로나 시대는 이제 지난 듯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내

뿜는 거친 호흡 속에 있을지 모를 무서운 바이러스가 두려워 마스크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유튜브와 인스타를 넘나들며 '좋아요'와 '팔로우'를, '구독'과 '하트'를 남발하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취향과 기호는 잃어버린다. 디지털 세계에서 무수히 많은 '친구'와 '팔로워'를 쌓았지만 점심시간에는 여전히 혼밥이 편하다. 직장에서 만나는 동료에게는 눈을 마주치며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기가 무엇보다 힘들다.  


그렇게 우리는 눈과 귀와 입을 모두 닫은 채 각자의 일터로 향한다. 외부로부터의 오염과 이질적 존재에 대한 철저한 방역과 단절의 시대에도 우리는 '문턱'을 넘어 출근을 해야 한다. 고립과 단절이 깊고 철저할수록 사람들은 '문턱'을 넘어 새로운 경험과 교류를 갈망한다. 인간은 결핍 속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아 길을 떠나는 존재가 아니던가. 직장인에게 출근이란 바로 그 새로운 경험과 대안을 위한 답을 찾아 나서는, 한마디로 문턱 너머로 가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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