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세. 이제는 현업에서 물러나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며
나름의 의미 있는 마침표를 찍고 싶다.
그러나 여전히 밑줄을 긋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허겁지겁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그 절반 이상의 이유는 분명 생계다.
실제보다 아름답게 분칠해 놓았을 뿐,
화장이 짙은 날이면 혼자서 얼굴이 붉어진다.
아내는 가끔 내게 말했다.
“당신은 생계걱정없이 돈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하고 싶은 좋은 일을 더 많이 했을텐데”
그 말에 나 또한 내심 동의하며 씁쓸히 웃곤 했다.
오늘 아침 마당을 거닐다 오래 묵은 나무 그루터기에서
비 온 뒤 돋아난 버섯을 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경제적으로 풍족한 집안에서 태어나,
공부도 더 많이 하고, 더 좋은 대학에 다니며,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길을 걸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단점이고 부족함처럼 보였던 것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밑거름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나무도 한때는 푸르게 자라 그늘을 드리웠다가,
잘려나가 허허로운 그루터기만 남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또 다른 생명이 피어나고 있었다.
상실은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의 발판이었고,
사라짐은 또 다른 삶의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돌아보니 내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너지고, 잃고, 멈춰 선 듯 보였던 순간들.
그러나 그 빈자리마다 또 다른 길이 열렸고,
새로운 만남과 배움이 이어졌다.
삶은 흩어진 조각들의 나열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 겹쳐져서 하나의 질서를 이루는 조화였다.
그 사실을, 마당이 내게 일깨워 주었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오늘의 내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지난 과거 또한, 내 주변의 환경 또한,
감사하고 사랑스럽다. 고맙다.
조상들이 전생에 나라를 구한 모양이다.
2025년 10월 2일, 이음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