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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리 Dec 27. 2022

밤 산책

패딩을 입지 않으면 찬 공기가 살갗까지 파고드는 겨울 저녁, 하루종일 집에 있던 우리 둘은 조용히 집을 나섰다. 아, 그렇게 조용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겠다. 간재리는 스케이트보드를 가지고 나와서 올라타더니 바퀴 소리를 내며 나를 앞질러 갔으니까. 

동네는 조용했다. 공주 원도심에 갔을 때의 그 고요함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정도로 조용한 골목에 살 수 있다는 게 감사했다. 하지만 이 감사한 마음은 곧이어 만난 쓰레기 담벼락에서 무너져 내렸다. 쓰레기산이라고 칭해도 될 정도로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주말을 거치며 이 동네를 누빈 사람들이 소비한 쓰레기들, 그 안에는 물론 내가 버린 쓰레기도 있다. 도시가 포화상태인 것을 알 수 있는 지표 중 하나, 쓰레기. 쓰레기 배출하는 날은 일주일 중 3일. 곧 4일로 늘어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쌓여있는 쓰레기들.

착찹한 기분으로 원래 목적지였던 카페로 향한다. 간재리가 '더블린'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던 카페. 도착해보니 '더블 하모니'였다. '더블린'이라고 하니 뭔가 아이리쉬 펍 같은 느낌이라 작고 어둑하고 묵직한 가게를 떠올렸건만 도착해보니 커다랗고 아스트랄한 인테리어가 압도적인 가게였다. 

일단 수많은 시계. 100개는 가뿐히 넘을 듯한 크고 작은 시계들이 창가는 물론이고 벽이란 벽을 메우고 그도 모자라서 천장에서부터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커다란 시계의 경우에는 우리집 문 만큼 커보였다. 시계로도 공간을 다 채우지 못 했다고 생각했는지 시계 중간 중간에는 빈티지 철제 조명까지 놓여 있었다. 커다란 조명도 50개는 될 것 같았다. 머리가 어질어질 해 저 멀리 달로 눈을 돌렸다.

이 더블 하모니라는 카페가 있는 골목 맞은편에는 일본식 음식점이 나란히 늘어서 있다. '일본식 음식점'인지 '일본 음식점'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간판부터 가게를 치장한 언어가 일본어 일색이라 사진을 찍으면 다들 일본 여행이라도 간 줄 알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교토에 갔을 때 본 한국 음식점이 생각났다. 그곳들도 간판부터 메뉴까지 한글로 표기되어 있어서 참 신기했는데. 한국에서 일본 음식점을 발견하는 것과 일본에서 한국 음식점을 발견하는 것, 둘 사이에 미묘한 감정 차이가 발생하는데 그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예전에 들었던 강의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이 허상이라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 민족이라는 허상에 너무 물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잡생각을 많이 하게 된 이유는 더블하모니에 들어간 간재리가 교토 킷사텐에서 마셨던 드립 커피와 비슷한 맛을 찾겠다며 카페 주인장과 긴 이야기를 하는 중인지 금방 나오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오겠지... 이제는 나오겠지... 하며 왔다 갔다 했지만 아직도 나오질 않는다. 더블하모니 바로 옆 가게는 미용실이다. 전체 불은 꺼져 있는데 카운터쪽 불은 켜 있었다. 마감이 얼마나 바빴는지 포스기 화면도 켜진 채였다. 

겨우 밖으로 나온 간재리를 보며 살짝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간재리는 그런 핀잔엔 아랑곳 하지 않고 행복한 표정이었다. 교토에서 마신 커피 이야기를 했더니 카페 주인장이 아주 반가워하며 자기가 그 입맛에 맞게 블렌딩을 해주겠다며 이것 저것 얘기해줬다고 한다. 지금 집에 있는 구멍 두 개 뚫린 드리퍼가 아니라 한 개만 있는 드리퍼로 내려야 한다나. 집에 새로운 물건이 늘어날 듯한 예감이 든다. 

들떠있는 간재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 저녁에 했던 이 두서 없는 생각을 글로 쓸 수 있을지 걱정하기 시작했다. 항상 걱정만 하는 것으로 끝나서 문제지만. 글을 쓰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할 때와 글을 쓸 때의 시간차를 극복하는 걸까. 그저 노력할 뿐인걸까?

신나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간재리를 보며 그냥 지금 살고 있는 삶에 충실한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그게 내가 주어진 삶을 다 살고도 풀지 못할 미스터리일지도 모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파충류를 전시해놓은 카페가 있다. 이곳을 지나갈 때면 항상 창문 건너 수조에 누워있는 이구아나를 바라본다. 미동이 없어서 혹시 죽은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할 무렵 살짝 움직이는 꼬리. 파충류는 피부로 숨을 쉰다더니 보통 살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동작이 안 보인다. 마치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어쩌다 이 도심속에서 숨을 쉬게 되었는지, 이 수조가 점점 갑갑해진다. 나도 숨을 잠시 멈추고 겨울잠을 자고 싶다. 잠시 냉동인간처럼 이대로 꽁꽁 얼었다가 따뜻한 봄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날씨에 따뜻한 들판에 풀려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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