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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이 Aug 02. 2021

간밤의 화재 경보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위이이이이이잉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위이이이이이잉. 일요일 밤잠부터 낮잠까지 꽉꽉 채워  데다가 읽고 있는 소설이 너무 재미있었고, 사둔 생수는 바닥을 드러냈는데 목이 너무 말라서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잠에 들지 못하던 차였다. 천도복숭아 하나를 꺼내 먹고 다시 자보려다가 포기하고 다시 전등을 책을 펼쳐 이제   페이지를  넘기려는 찰나 화재 경보가 울렸다. 어찌나 시끄럽던지 나도 모르게  뭐야 하고 소리를 치고 말았다.  5 정도 넋을 놓고 듣다가 아차 싶어 옷을 갈아입었다. 현관문 여는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아서 이상했지만 나가야겠다 싶었다. 와중에 지갑도 챙기고  구역의 방역왕답게 마스크도 썼다.


3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니 다른 층에서 바쁘게 내려온 몇몇 이웃이 경비실에 가 경비아저씨께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럴 땐 사공이 많은 게 별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일단 밖으로 나가 맞은편에 있는 편의점에 갔다. 길을 건너면서 건물을 돌아봤는데 불길처럼 보이는 건 없었다. 우리 집 창문에서 대각선 바로 윗집에 주황색 빛이 크게 보였지만 흔들림이 없는 걸로 보아 조명이었다. 편의점에 들어가 커다란 생수 하나를 샀다.


알바생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 왼쪽 맨 팔뚝으로 차가운 생수를 감싸니 순간 섬찟한 기운이 몸에 쫙 돌았다. 우리 건물은 10층짜리 오피스텔. 각층별로 아홉 호수가 있으니 못해도 100명은 넘게 살 텐데 건물 밖으로 나온 사람이 5명도 안된다는 사실은 더 섬뜩했다. 동태를 살피기 위해 잠깐 안으로 들어갔더니 경비 아저씨가 오작동이라며 금방 조용해질 거라고 하셨다. 작동보다 오작동이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


바로 들어가기는 찝찝했다. 흡연자들에게 둘러싸여 앉을 기회가 없었던 벤치가 내 차지가 되었다. 폰 배터리가 넉넉하지 않았다. 앞으론 비상시 갈아입을 옷을 미리 꺼내 두고, 휴대폰 배터리는 늘 넉넉히 충전해두며 지갑과 마스크는 손이 가까이 닿을 거리에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일 정말 불이 났다면 누구에게 가장 먼저 전화할까 떠올렸을 때 문상신이 떠올랐고, 그 순간 너무 슬퍼서 아주 오래 건강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도 몇몇 얼굴들이 떠올랐다. 불이라곤 담뱃불도 못 봤는데 1분 남짓한 짧은 시간에 고막을 때려 박듯 울리던 경보의 임팩트가 컸던 탓일까 괜히 큰일 하나를 겪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더 이상 센치해지고 싶지 않아 주변을 둘러봤다. 커다란 차들이 1층에 있는 식당들 앞에 세워져 있었다.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내렸다. 능숙하게 식당의 문들을 열고 차 안에서 커다란 짐을 내렸다. 새벽부터 식당의 곳간들이 속속 채워지고 있었다.


아까 내 생수를 계산해주던 알바생도 커다란 파란 박스 두 개를 겹쳐 들고 문을 나섰다. 누군가의 배를 부르게 하는 일에 여러 사람들의 수고가 들어가는구나. 짐이라곤 1.5리터짜리 페트병 하나를 옆에 낀 내가 괜히 머쓱했다. 시간을 봤다. 4시 55분. 5분만 더 있다가 들어가야지 생각했다. 5분 동안 점점 밝아지는 하늘을 봤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일어날 수는 있을까. 들어가면 긴장이 풀려서 잠은 잘 오겠다 같은 생각을 했다.




벤치에 앉아서


5시가 되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여전히 경보가 울리고 있었다. 아까처럼 건물 전체에 울리는 경보는 아니고, 오작동의 원인이 된 2층의 경보기에서만 울리는 소리였다. 그래도 괜히 꺼림칙했다. 나는 3층에 사는데 2층에서 울리는 경보라니. 만약 아주 작은 불씨라도 있다면? 우리가 모두 오작동이라고 치부한 게 실은 맞았다면? 극심한 안전민감증인 나는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왔다. 10분 정도 더 있으면 저게 정작동인지 오작동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로 위 4시의 소리와 5시의 소리는 사뭇 달랐다. 더 많은 차들이 달리기 시작했고, 때문인지 소리도 더 시끄러웠다. 진짜 신기하네 조용히 읊조렸다. 뉴스 몇 개를 보고 나니 시간이 지났다. 아무 일도 없었다. 이제는 불보다 출근이 더 무서워졌다. 집으로 들어가 애지중지 챙긴 생수병을 열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누웠다. 위이이이이이-뚝. 다시 오작동이 일어났다. 아무래도 잠자긴 글렀다. 이사 가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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