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팀에서 중요한 마케팅 프로젝트의 PM을 맡았다. 2021년의 기로에서 긍정적인 변곡점을 만들고 싶었고, 연간 단위의 페스티벌로도 만들어보고 싶어서 개인적으로 욕심도 기대도 컸던 프로젝트였다. 고민에 고민을 더한 기획안을 짜고, 서비스 디자인 개발 사업 모든 팀에게 협업 요청을 하며 요란하게 시작을 알렸다.
결과는 처참했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어느 정도 결과가 예견되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함께 준비한 팀원들의 사기마저 떨어지는 걸 보고 두려움이 밀려왔다. 사실 그때를 떠올려봐도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만큼 하루하루를 멍하게 보냈다. 약속했던 일정이 다 끝나고 팀원들과 함께 모여 피드백 회의를 가졌다. 나름 덤덤하게 진행했던 것 같은데 너무 속상했다.
여러 악재도 겹친 상황이라 번아웃 비슷한 것이 찾아왔다. 어디로든 도망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타이밍 좋게도 리프레시 휴가(3년간 근속하면 주어지는 2주 재택 + 2주 유급 휴가)라는 핑곗거리가 생겼다. 돌아온 후에도 컨디션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동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서히 기운을 되찾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4월-5월의 시간을 떠올리기는 싫었다. 내 실패와 마주 본다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그때 작성했던 이벤트 시트를 열어보았다. 마지막 피드백 회의 시간에 공유했던 인사이트 탭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분노와 억울함, 자책감과 자괴감, 역량 부족과 미성숙함 등 그때의 감정과 상황이 다시 떠올랐다. 이때의 실패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언젠가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찬히 기억을 더듬어 잘못 놓았던 수를 복기해보았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과 대화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 할 수 있는 건, 내 의견을 밀어붙이거나 상대방의 의견을 수긍하거나, 내 의견과 상대방의 의견의 강점만 모아 새로운 안을 만들거나 셋 중 하나다. 내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편은 아닌데 누군가 아예 다른 의견을 냈을 때 종종 자신감을 잃고 끌려간다. 그럴 필요가 없는 순간에도 말이다.
‘딱 한 번이라도 PM으로서 좀 더 의견을 밀어붙여 볼 걸.’하고 후회하는 순간이 있다. 그렇게 용기를 내지 못하고 쉽게 타협하고 수긍했던 순간이 프로젝트가 끝나고 자괴감으로 돌아왔다. 바뀌는 게 없었더라도, 한 번이라도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말을 했다면 조금은 더 나아졌을 텐데, 조금은 더 떳떳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오랫동안 남았다. 거절당하더라도 내 의견을 더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태도,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갖춰야겠다고 다짐했다.
PM은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사람이다. 매 순간의 선택은 내 몫의 책임감으로 돌아올 것이고, 그때마다 회피하거나 합리화해선 안된다. 당시 나는 내 자책감을 덜기 위해 회피했고, 합리화했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개선책을 찾기보다는 다른 요소들을 탓하기 바빴다. 어떻게 보면 실패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그때의 못난 나를 돌아보는 게 더 끔찍해서 지금까지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었겠다.
PM으로서 좀 더 이성을 차렸다면 피드백 회의에서 보다 건설적인 논의를 하며 문제점을 깊게 들여다보고 더 유용한 인사이트들을 뽑아낼 수 있었을 텐데, 군데군데 보이는 합리화한 부분들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실패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결과에 매몰되지 말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냉철함으로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문제점을 파악하고, 내부를 정비해야 한다. 모든 문제는 그 안에 존재한다. 회피와 합리화를 가장 큰 적으로 두자.
어떤 프로젝트를 끝낸 후 복기를 하면 아쉬웠던 점 중 하나가 꼭 ‘좁은 시야’였다. 여기서 조금 더 넓게 봐도 좋았을 텐데, 꼭 이 틀에 갇혀있을 필요가 없었는데 하는 아쉬움.
지난 프로젝트들에서 교훈을 얻어 나름대로 펼친다고 펼쳤는데도 여러모로 허술한 부분이 있었다. 담당자에게 물어보기도 전에 ‘이건 안될 거야.’, ‘이건 오래 걸릴 거야.’ 스스로 결론을 내고 시도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고, 사소한 내용 하나에 꽂혀 더 넓고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관성처럼 하던 액션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기회인데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이 가장 유감스럽다. 이 아쉬움을 잊지 않고 다음번에는 더 유연하게 생각하며 재미있는 시도들을 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맑아진 정신으로 시트를 보고 나니 보인 것은 ‘고객 경험’이었다. 우리가 제공하는 콘텐츠로 타깃 고객은 어떤 경험을 얻을 수 있을까. 어떤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까. 개선 방법에 적어둔 내용을 보며, 그때 이 부분의 고민이 미흡했던 걸 깨달았다.
당시 기획에서는 마케팅 측면에서 시선을 끌 수 있는 후킹 요소의 콘텐츠를 떠올렸다. 한 단계 더 들어가서 고객이 이 콘텐츠를 보고 느낄 감정, 경험까지 고민했다면 자괴감이 조금 덜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덕분에 새롭게 기획하고 있던 콘텐츠를 고객 경험의 측면에서 한번 더 살펴볼 수 있었고, 중간에 놓친 부분들을 건져 올려 보완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더 풍성하고 즐거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유연한 사고로 가지고 있는 강점 요소들을 잘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콘텐츠를 통해 고객과 브랜드가 연결되는 고리가 넓게 펼쳐진 그물 사이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그들의 경험에 몰입하며 촘촘하게 이어주는 고민 역시 수반되어야 한다.
기획자의 입장에서 기획을 완성했다면, 이 콘텐츠를 처음 보는 고객의 입장에서 낯설게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며 놓쳤던 부분을 건져내자.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한다. 내가 둔 악수를 복기하며 마음을 다 잡았음에도 관성의 힘은 꽤 커서 비슷한 상황이 찾아오면 또다시 실수하고, 좌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또다시 고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겠지. 3번의 실수를 2번으로, 2번의 실수를 1번으로, 1번의 실수를 완전히 고치는 것에 의의를 두고 나아갈 거다. 인간은 위버멘쉬(UberMensch), 극복하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팀원들과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 조금만 더 하면 조금씩 바뀔 것이고, 그 조금의 변화가 어쩌면 모든 것을 바꿀 수도 있다. 욕심부리지 말고, 쉽게 포기하지 말고, 실패에서 겸손과 교훈을 배우고, 성공에서 나아갈 힘을 얻는, 항상 극복하는 존재로 살아가야겠다.
이제야 속이 좀 후련하다. 껍질 하나를 벗기고 나온 느낌. 과거의 찌질했던 나와 완벽히 이별한 기분! 대체공휴일 덕분에 내일부터 2주간 주 4일제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다. 가벼운 마음과 무거운 책임감으로 산뜻하게 출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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