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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Feb 25. 2024

중년의 커다란 누렁이를 좋아하세요?

우리 뿌꾸는 올해 8세. 강아지 나이로 치면 벌써 중년이다. 강아지의 시간은 왜 이리도 빨리 흐르는지. 매주 월요일이면 회사 가기 싫어서 앓는 소리를 하면서 '우리 뿌꾸가 얼른 유튜브 슈퍼스타가 되어서 언니 호강시켜 줘야 할 텐데' 하고 우스갯소리를 하면 '뿌꾸도 벌써 사람 나이면 60줄인데, 네가 먹여 살려야지 무슨 소리니' 하는 말이 돌아온다. 내 눈에 뿌꾸는 아직 아기 같은데. 특히 겨울의 뿌꾸는 털이 둥실둥실해서 더 동안으로 보인다.


저 빼꼼 나온 혀가 너무 귀여워...
언니들의 쓰다듬이 귀찮지만 참아주는 중...
그만하라 했꾸!!!!
뿌꾸야 니 머선 고민있나


 남쪽에 살아서 겨울에도 비교적 따뜻한 날씨지만, 그래도 한 겨울은 춥기에 뿌꾸도 주기적으로 옷을 입힌다. 문제는 뿌꾸의 체형이 유난한 것인지, 웬만한 큰 사이즈의 옷을 입어도 작다는 것. 소형견 옷은 참 다양하게 이쁜 옷이 많이 나오는데 중 대형견으로 가면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처음에는 오기로 귀여운 무늬의 천 옷들을 둘러봤었는데, 어차피 못 입힌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는 주로 패딩조끼를 사서 입힌다.


 처음에는 맞는 옷을 못 찾아서 송아지 방한 조끼를 사 입히고는 했다. 그렇지만 어디서 보니 진도믹스들도 깜찍한 옷들 많이 입고 다니던데, 우리 뿌꾸도 예쁘고 따뜻한 게 입고 싶겠지 싶어서 나름대로 색깔이 조금 들어간 패딩조끼를 사주었다. 뿌꾸 입히라고 3xl 사이즈 패딩조끼를 집에 내려보냈더니, 엄마가 입혀보곤 뿌꾸한테 딱 맞단다. 그리고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누가 봐도 옷에 갇힌 누렁이 꼴... 선물 사 준 사람 기분 좋아라고 입에 발린 말을 해주시는 것 같았는데 사진 속 뿌꾸의 표정이 많은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다음 해에는 4xl의 패딩조끼를 사줬는데 그것도 미묘하게 작았다. 옷 사이즈가 늘었는데, 계속 비슷하게 작은 느낌이라니. 뿌꾸는 아직도 성장하는 걸까.


저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 좀 보세요..

 

 빨간 내복이 강아지 버전으로도 있길래 뿌꾸도 입으면 귀엽겠다 싶어서 사이즈를 한참 고민하다 사서 보냈다. 상세설명 상으로 골든 레트리버가 입고 있길래, 이 사이즈면 뿌꾸도 잘 입겠지 싶었는데. 이번에도 작다. 특히 목덜미와 흉곽 쪽이 꽉 껴서 천으로 된 옷이 터질 것 같았다. 그래도 큰 언니가 신경 써서 보내준 거라고 최대한 입혀보고 싶었던건지 아빠가 목 부분 천을 좀 뜯어서 늘려줬더니 조금은 입을 만 해졌다. 곧 너덜너덜한 누더기가 되었지만. 이쯤 되면 신기하다, 8세 강아지가 여전히 자라나요. 털 부숭부숭한 겨울을 올해만 보내는 것도 아닌데, 매년 겨울이면 애가 좀 커지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닌 것 같았는데.


문제의 빨간 내복!
옷만 입으면 표정이 안좋아진다, 심지어 옷이 작아서 더 짜증나는 듯 ㅠ
새삼 거대하다, 옷 목부분을 늘려줌
옷이 너무 내려가서.. 무슨 여배우 드레스 마냥 오프숄더가 됐다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뿌꾸는 발톱 깎일 때 버둥거림과 반항이 심해서 입마개를 씌우는데, 올해 설 연휴에 내려가서 입마개를 씌우려니 입마개가 작았다! 아니 개가 주둥이에도 살이 찌나. 어떻게 지냈길래 얼굴이 벌크업을 해..


 전에 병원에 갔을 때 마지막으로 잰 뿌꾸의 체중은 18kg이었다. 보통 여름에는 18kg, 겨울 되면 19~20kg 정도 되는 것 같다. 근데 최근에 안아 들어보니 확실히 더 묵직한 느낌이 들기는 했다. 21kg는 훌쩍 넘을 것 같은 느낌. 뿌꾸는 어렸을 때부터 자율배식을 해서 사료에 식탐이 없는 편인데, 요즘 입맛이 많이 도나. 대체 어디가 자란 거니, 뼈대가 커진건가. 한 가지 이실직고를 하자면, 내가 집에 내려가면 뿌꾸 간식을 많이 주기는 한다. 그리고 엄마 아빠도 출근, 퇴근길마다 약간 통행세 같은 느낌으로 뿌꾸에게 간식을 주신다. 주말에는 주로 고구마와 강아지 우유 같이 뿌꾸가 좋아하는 간식을 주시고. 그렇지만 매일 산책이며 마당놀이며 활동량이 꽤 많은 편이라 칼로리도 많이 소모할 텐데. 요즘 묘하게 동그래진 뿌꾸를 보면, 봄이 오면 다시 날씬 뿌꾸로 돌아오려나 이번에는 안 돌아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긴 어째 귀여운 동그라미 누렁이로 사는 거지) 근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허리가 잘록하니 들어가 있고 확실히 비만은 아니다. 오히려 여전히 날렵한 느낌인데.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우리 집 누렁이 뚱뚱해요?


놀아달라고 그윽하게 쳐다본다
볼따구 좀 놓고 이야기하시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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