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중국 장가계로 여행을 가신다고 했다. 그것도 4박 5일을. 자연스레 나는 집에 혼자 있을 뿌꾸를 보살피기 위해 본가에 내려가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 회사는 아직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휴가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위기다. 휴가 사유는? 강아지 수발들러 가야 합니다. 오케이.
목욕을 시키다, 무려 1년 만에!
우리 뿌꾸는 물을 정말 싫어한다. 여름에 마당에 수영장을 만들어 줬는데(나름 고급스러운 어린이 수영장 만들기 세트를 샀었다), 절대로 수영장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면서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는 표정의 뿌꾸의 모습을 봐야 했다. 강아지 친구들이 있는 큰 수영장에 가면 물에 뛰어드려나 하는 생각에 강아지 수영장에 데리고 갔을 때, 뿌꾸는 내 기대를 산산조각 내며 기겁을 하고 줄행랑을 쳤다.
우리 뿌꾸는 다른 개들하고도 서먹했고, 물과는 더더욱 서먹했다. 인사하자며 다가오는 조그마한 강아지들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 수영장에는 앞발도 담가보지 않는 뿌꾸를 보고 있자니, 괜히 애한테 스트레스만 줬구나 싶어서 미안해졌다. 이후 친구 없이, 수영 없이 물을 피해 살아온 뿌꾸 견생 7년. 그러나 여름이 되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냄새 때문에, 목욕은 피할 수 없다. 목욕의 낌새만 느껴져도 슬슬 피해 다니기 때문에, 이 눈치 빠른 녀석을 힘으로 잡아챌 수 있는 내가 본가에 머무는 동안 목욕을 시키기로 했다.
여름 내 꽤나 자주 집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뿌꾸는 이번에도 집 안에서 우유를 마시게 해 주려나 보다 하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나를 따라 현관으로 들어왔다. 흐흐, 이 순진한 녀석. 갑자기 번쩍 자기를 들어 올리는 나를 보는 뿌꾸의 아차 하는 표정이란. 버둥거리며 도망가기 전에 뿌꾸를 들어서 욕실로 옮겼다.
원래는 동생이랑 둘이서 목욕을 시키는데(순식간에 빨리 끝내야 하므로), 동생이 중국에 있는 관계로 엄마와 함께 조를 이뤘다. 목욕 단계는 간단하다. 하나, 욕실에 들어와서 눈만 땡그랗게 뜬 뿌꾸를 간식으로 유인해서 샤워실 쪽으로 몰아간다. 둘, 미리 물에 풀어둔 비누 거품을 뿌꾸 몸에 끼얹고 북북 박박 열심히 문지른다. 셋, 샤워기와 바가지를 이용해 미지근한 물로 후다닥 헹궈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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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삐지지 않도록 간식을 입에 넣어주는 것도 필수. 뿌꾸 하나 씻기고 나면 나도 엄마도 땀에 흠뻑 젖는다. 분위기 보고 다 씻겨진 것 같으면 뿌꾸는 화장실 문 앞으로 도망가서, 몸을 후드득 턴다. 몸에 남은 물기를 힘차게 털어내는 그 호쾌한 몸놀림이란.. 새삼 뿌꾸도 역시 ‘개‘구나 하는 생각. 이 자식, 하도 거만하길래 본인이 인간인 줄 착각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어찌나 귀여운지. 대신 내 티셔츠는 뿌꾸가 뿜어낸 물방울들로 축축해진다.
화장실에 갇혀서 목욕당하고 나면 뿌꾸는 기분 나쁜 티를 엄청 낸다. 불러도 모른 척하고(쳐다도 보지 않음
), 밖으로 나가자고 문 앞에 고집스레 버티고 서 있는다. 그러면 별 수 없이 뿌꾸 몸에 물기가 조금 남아 있어도 마당으로 보내준다. 여름이니 감기는 안 걸리겠지. 마당에서 한참 풀냄새를 맡고 뜀박질하고 나면 기분이 풀리는지, 그제야 웃어준다. 목욕시키는 건 너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의 건강을 위해 하는 거란다 하는 내 마음을 이해해 줬으면.
발톱 깎기는 힘든 미션
뿌꾸는 매일 산책을 하지만, 잔디밭을 걷는 경우가 많아 발톱이 충분히 닳지 않는 데다가 땅에 닿지 않는 며느리발톱이 있어서 주기적으로 발톱을 깎아주어야 한다. 이것도 둘이서 조를 이뤄야 하는데 한 명은 뿌꾸가 못 움직이게 붙잡는 역할, 한 명은 뿌꾸 발톱을 깎아주는 역할. 주로 내가 붙잡고 아빠가 뿌꾸 발톱을 자른다.
뿌꾸를 번쩍 안아 들어서 마당의 평상 위에 올린다. 이 단계에서 뿌꾸는 아 발톱 자르는구나 하고 눈치를 챈다. 이것도 몇 번이나 한 거라서 뿌꾸도 이해해 줄 법한데, 매번 성질을 부르고 서운한 티를 내니, 후다닥 자르고 간식을 많이 먹이는 수밖에. 발톱 자르기는 뿌꾸한테 예민한 이슈라서 입질을 할 위험이 있어서 입마개도 씌운다. 얌전히 입마개를 하면 잘했다고 포상 간식을 주는데, 그 조그만 틈으로도 간식을 날름날름 잘 받아먹는 모습을 보면 그것도 참 귀엽다. 얼른 자르자 하는 생각으로 뿌꾸가 버둥거리지 않도록 꼭 껴안으면 아빠가 비장하게 발톱 가위를 들고 오신다.
아빠는 이제 거의 반려견 미용사 수준으로 발톱을 잘 깎으신다.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게, 혈관을 건드리지 않도록 잘 보고 잘라야 하는데, 망설임 없이 톡톡 빠르게 깎아 나간다. 특히 며느리발톱은 자르는 각도를 만들기 힘들어서 요리조리 뿌꾸의 몸을 돌려가면서 깎는데, 뿌꾸가 초반에는 좀 불편해도 참아주다가 못 참겠다 싶으면 버둥버둥. 그러면 아빠가 간식을 뿌꾸 입에 넣어주신다. 그리고 이어서 발톱을 세 개쯤 깎으면 또 버둥버둥. 그러면 또 간식을 입에 넣어주고. 무한 반복이다. 이 쯤되면 발톱 깎는 거 별 거 아닌데 그냥 뿌꾸는 간식이 먹고 싶어서 버둥거리는 게 아닌지. 뿌꾸에게 진지하게 묻고 싶다. 내 눈을 피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는 확신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산책이 너무 좋아
강아지들이 좋아하는 건 보통 비슷하다. 밥, 산책, 간식. 저 셋 중 뿌꾸가 순위를 매긴다면 단연 산책이 일등일 것 같다. 엄마아빠가 안 계신 동안의 내 루틴은 아침에 일어나서 뿌꾸에게 문안 인사(+간식 조공)를 드리고, 마당 산책을 한다. 마당에 있는 작은 연못의 물고기들에게 밥을 주면서, 수면 위로 다가와 뻐끔거리는 물고기들을 뿌꾸와 함께 보며 멍 때린다. 다행히 우리 뿌꾸는 마당 물고기들에게는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뿌꾸도 나도 각자 집에 들어가고, 오전에 일하고(뿌꾸는 자고) 점심을 먹는다. 점심 후에 햇살이 뜨거울 때는 뿌꾸를 우리 집 안으로 들인다. 멀뚱히 앉은 뿌꾸를 구경하면서 오후 근무를 하고 일이 끝나면 같이 저녁 산책을 간다. 산책 후 뿌꾸를 집에 들여보내주고,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는다.
매일 비슷하게 동네를 도는데 어쩜 매번 그렇게 신이 나는지. 매일 가는 공원인데도 매일 다른 냄새가 나나보다. 코를 땅에 박고 다니는데 어디 부딪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 그렇게 꼬리를 살랑살랑 거리며 신이 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뿌꾸를 보고 있으면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엉뚱한 방향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녀석을 어르고 달래다 힘으로 끌고 가는 건 힘들지만. 고양이라도 지나가면 그 고양이 잡겠다고 후다닥 뛰어가는데 나도 순식간에 훅 날아가는 기분이다. 고양이를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걸까. 그런 주제에 덩치 큰 고양이를 길 가운데에서 딱 마주치면 못 본 척 눈 내리깔고 지나간다. 덩치 큰 고양이는 무서운가 보다. 작은 고양이는 만만한 걸까. 이 비겁한 녀석.
우리 집 마당은 잔디 마당이라 신기한 생물체들이 많다. 개구리, 작은 도마뱀, 방아깨비.. 처음 봤을 때는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이제는 적응되어 놀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뿌꾸가 마당의 작은 친구들을 보면 너무 신나 해서 문제다. 작고 날랜 도마뱀이 화분 사이를 지나가면 그 화분들을 부술 듯이 달려든다. 도마뱀을 잡고 싶은 건가. 작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만 보면 앞발을, 주둥이를 들이대고 보니 이러다 입에 넣어보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작은 애들 괴롭히지마, 이 바보 강아지야!’ 해도 들은 척도 안 하고 호기심에 귀만 쫑긋쫑긋. 이제 7살인데 언제 철드실래요, 뿌꾸씨.
실내 생활 권유를 거절당하다
우리 집 마당에는 나무도 있고 잔디가 깔려 있어서 다른 곳보다는 덜 덥겠으나 그래도 한낮의 땡볕은 너무 공기가 뜨겁기 때문에 뿌꾸를 집 안으로 들인다. 최근 실내에 들어오면 뿌꾸입장에서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기 때문에(목욕이라든지, 물티슈로 박박 닦인다든지), 현관을 벗어나 들어오려고 하지를 않았다. 뭐 현관도 대리석 바닥이고 시원하니 괜찮겠지 싶어서 우유를 가져다 주니 찹찹찹 하며 호쾌하게 금세 한 그릇 비운다. 뿌꾸야 들어와~ 하고 엉덩이를 슬쩍 밀어봐도 요지부동이다. ‘그래, 뭐 들어와서 스트레스받을 바에야 거기 드러누우세요’ 하고 신발을 정리하고 수건을 깔아주었다.
그래도 얼마 전 목욕도 했겠다, 뿌꾸를 옆에 앉혀두고 쓰담쓰담하며 재택근무하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저 강아지는 목욕당한 앙금이 마음에 아직 남아있는지 간식의 유혹도 외면하고 현관에서 배 깔고 잠만 잔다. 그래서 나는 현관이 정면으로 보이는 부엌의 식탁에 앉아서 일했다.
처음에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기만 해도 번쩍 일어나 꼬리를 흔들더니, 며칠 지나니 내가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든 물을 마시는 무신경하게 고개도 들지 않았다. 그러다 그냥 낮잠을 자버린다. 적응되었다 이건가, 이 녀석. ‘제발 거실로 와봐, 언니랑 놀자’ 하고 몇 번을 부르고 간식으로 유혹해도 요지부동이다. 다만 ‘밖에 나가고 싶다, 산책하고 싶다’는 눈빛으로 계속 나를 쳐다보는데, ‘미안하다 뿌꾸야 언니는 돈 벌어야 해. 저녁 산책까지 좀 기다려줘’ 하고 애써 외면하며 일하기를 4일째. 뿌꾸가 심심했는지 드디어 앞발을 현관 너머로 슬그머니 내디뎠다. ‘드디어 들어오는구나!’ 하면서 앞발을 물티슈로 닦아 주는데 물티슈가 닿자마자 후다닥 뒷걸음질 치더니 다시 현관에 자리를 잡는다. 왼쪽 앞발을 잡고 닦아주려던 내 손만 뻘쭘하게 허공에 남았다. 우리 뿌꾸, 깨끗한 걸 정말 싫어하는구나.
뿌꾸는 마당을 거닐다 산책 갈 때 가장 빛나고 행복해 보인다. 거실에 나란히 앉아 tv 보는 로망 따위, 언니가 접을게. 꼭 그렇게 껴안고 있어야만 주인과 개가 행복한 건 아니니까. 그냥 이렇게 갈지자로 사방팔방 정신없이 산책하고, 북북 박박 쓰다듬고 오래된 털 뽑아주면서 잔디밭에 앉아서 행복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