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 Feb 13. 2022

겨울의 시골개 뿌꾸 일상

 부모님 댁에 살고 있는 뿌꾸를 매일 볼 수 없는 것은 아쉽지만, 나는 뿌꾸와 자주 못 보는 덕에 오히려 더 사이가 좋은 듯하다. 부모님 댁에 내려갈 때마다 처음 만나면 너무 반갑다고, 좋다고, 몸서리치며 폴짝거리는 뿌꾸가 정말 예쁜데, 그다음 날이 돼서 아침에 만나면 반가워해주긴 하지만 첫 날 만큼의 에너지를 쓰며 버둥거리지는 않는걸. 매일매일 만나면 가뜩이나 가족들 사이에서 서열이 가장 낮은 나는, 뿌꾸에게 뜯겨서 옆구리가 터져 나간 사자 인형만도 못한 취급을 받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언니 산책 가자!

 우리 집은 겨울에 행사가 많다. 엄마, 아빠 생신과  생일이 죄다 겨울인 데다, 연말 연초는 본가에서 보내기도 해서 겨울에 부모님 댁에 자주 놀러 간다. 뿌꾸도 더 자주 만날 수 있다!


 겨울의 뿌꾸는 여름의 뿌꾸보다 훨씬 덩치가 큰데,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털이  빽빽하고 둥실둥실 커지기 때문이다. 쓰다듬어 보면 여름의 뿌꾸는 짧은 털이 매끄럽게 넘어가는데 반해, 겨울의 뿌꾸는 한층 길고 풍성한  덕분에 엄청 복슬복슬한 인형을 만지는 느낌이다. 미묘하게 구수한 냄새가 나는 털이지만, 겨울의 뿌꾸를 만지작 거리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멀리 산책 가는 거 너무 좋다고!


겨울이라 뿌꾸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걸까?

 보통은 '털 찐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겨울 털이 자랐다는 인상이지만, 이상하게도 올 겨울의 뿌꾸는 몸도 벌크업을 한 것 같은 인상이다. 원래 위에서 내려다보면 늘씬하니 쭈욱 뻗은 몸매에, 다리가 가늘고 긴 편이라 호리호리한 인상인데, 오랜만에 만나니 흉통이 어마어마하다. 그래서인지 야심 차게 준비한 4xl 사이즈 패딩의 지퍼가 주욱 올라가다가 목부분에서 잠기지가 않았다. 강아지 쇼핑몰에서 레트리버도 입은 사이즈라고 해서 주문했더니만, 애기 레트리버 사이즈였나 보다. 모처럼 새 겨울옷이라고 킁킁대며 호기심을 보이던 뿌꾸도 옷이 작자 약간 머쓱한 눈치였다. 왜 이렇게 작은 옷을 사 와서 애를 골탕먹이는거냐며 타박하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눈물을 머금고 해당 쇼핑몰의 그 상품 가장 큰 사이즈였던 5xl를 다시 시켰다.

언니.. 옷이 좀 작은 것 같아.. 뿌꾸 슬퍼..

 다행히 5xl는 지퍼가 끝까지 잘 잠겼다. 흉통과 목부분은 잘 맞는데 허리는 오히려 넉넉하니 큰 듯했다. 우리 뿌꾸, 사람으로 치면 가슴둘레는 큰데 허리둘레는 얇은걸까나. 다만 전반적으로 작년의 뿌꾸보다는 근육이 더 빵빵해진 듯한 느낌이다. 발톱 깎이려고 마당 데크로 뿌꾸를 안아 올리는데 전에는 "읏샤!" 하고 들 수 있었다면 이번에는 "으어어어어~"하면서 겨우 들었으니까. 내 체력이 약해진 건지 뿌꾸가 약간 살집이 붙은 건지 모르겠지만, 제일 최근에 잰 몸무게는 17.6kg이었는데 요즘은 2~3kg은 더 늘어난 듯하다. 동생이 중국 유학을 하게 되어서 캐리어 짐을 쌌고 그 무게가 21kg 정도였는데, 흡사 그걸 드는 듯한 무게의 임팩트가 있었으니. 뿌꾸는 계속 성장하고 있나보다.

패딩조끼 5xl 사이즈는 다행히 넉넉히 맞았다


뿌꾸씨, 곧 불혹인데 아직 정정하시네요

 우리 뿌꾸는 2016년 9월 생. 이제 6살이 되었는데 인간으로 치면 30대 중후반 정도 되는 나이일 듯하다. 그런데 뭐랄까, 아직도 어릴 때처럼 천방지축이다. 뿌꾸가 어렸을 때는 그렇게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어도 ‘아직 어리니까 그럴 수 있지 허허’ 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순하디 순한 레트리버도 어릴 때는 넘치는 에너지로 사고뭉치로 지내다가, 성견이 되는 2년 정도 되면 의젓해진다고 들었으니까. 근데 뿌꾸는 성견이 된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강아지 같은 천진난만함이 있달까,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곤 한다.

아 빨리 가자고 산책!!!

 특히 산책이 곤혹스러운 경우가 많다. 매일 하는 산책이지만 내가 리드 줄을 꺼내 드는 모습을 보는 순간 흥분해서 두발로 이족보행을 한다. 어찌어찌 리드 줄을 매고 나면 초반에 뛰쳐나가는 에너지가 산타 썰매 끄는 루돌프 못지않다. 어찌나 격하게 콧김을 뿜으며 내달리는지 리드 줄을 쥔 나는 종이인형처럼 팔랑대기 일쑤다. 그래도 좀 걷다 보면 산책의 기운에 적응해서 조금은 얌전해지는데, 그래도 나보다 훨씬 빠른 걸음으로 이리저리 나댄다. 특히 고양이를 마주치면 퍽 난감하다. 우리 동네 고양이들과 무슨 원한관계인지 모르겠으나, 고양이만 봤다 하면 급발진하며 달려들기 일쑤다. 그 덕에 리드 줄을 쥔 내 손에는 불이 난다. 애기 뿌꾸와 산책을 한 번 한 뒤로 나는 산책 시 무조건 손을 보호하는 장갑을 끼기 때문에 다치지는 않지만, 뿌꾸가 순간 확 앞으로 뛰쳐나가면 끌려가지 않기 위해 발끝에서부터 힘을 단단히 줘야 한다. 체력 훈련이 따로 없다.

산책 가는 길, 신난 꼬리

 우리 동네 길고양이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보살핌을 잘 받는 편이어서 사람을 만나도 놀라지 않고 도망가지도 않는다. 동네에 개 산책시키는 주민들도 많기 때문에 고양이들이 개를 봐도 그다지 겁먹지 않는 듯하다. 뿌꾸는 자신을 봐도 그러거나 말거나 열심히 그루밍을 하고 있는 고양이들 때문에 더 열이 받는지, 고양이를 쫓아 이리저리 뛰는데 뿌꾸가 어느 정도 가까이 가야만 고양이들이 자리를 피한다. 그러면 뿌꾸는 본인이 이겼다고 생각하나 보다. "언니 어때? 내가 이 정도로 세다?" 하는 뿌꾸의 우쭐해진 콧김이 느껴진다. 왜 가만 있는 고양이를 그렇게 괴롭히냐며 뿌꾸를 훈육해보지만 내가 말할 때마다 뿌꾸는 시선을 회피하고 귀만 쫑긋쫑긋할 뿐,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는 느낌이라 괜히 열 받는다. 더욱이 동네에 덩치가 꽤나 큰 까만 고양이가 있는데, 공원에서 이 고양이를 만나면 뿌꾸는 못 본 척 시선을 돌린다. 덩치 크고 강한 고양이한테는 쭈굴거리며 한 마디도 못하는 뿌꾸의 모습이 꽤나 웃겼다. 그나저나 언제 좀 점잖게 산책을 할 수 있을는지.

장작 창고에서 고양이 냄새가 나는지 머리를 들이밀고 난리다

 얼른 날이 좀 풀려야 뿌꾸 목욕도 시키고 할 텐데. 풍성한 털을 어루만질 때면 손에 묻어나는 끈적한 느낌에서 곧 목욕해야 할 날이 다가옴을 느낀다. 뿌꾸랑 놀고 손을 씻으면 누런 거품이 생기는데, 우리 누렁이 뿌꾸 색깔이 묻어 나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 천방지축인 우리 뿌꾸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건강하게 산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강아지란 나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