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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효진 Mar 20. 2022

여자들의 우정에 대하여

<서른, 아홉>, <사내 맞선>, <스물하나 스물다섯> 속 여자우정

 여자들 사이의 우정은 존재하는가? 예스. 여자들 사이의 우정은 한결같은가? 노.

남자들 사이 우정이나 남여 사이의 우정이 완전 다른 종류라고 볼 수는 없지만 최근 드라마에는 여자들 사이의 우정이 눈에 띈다.

 크게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있겠냐고 물을 수 있다. 워낙 사람들은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굳이 남여 차이 아니라도 동성 간에도 너무 많은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신체적 차이로 남여를 나누고 보자면 남자들 여자들 사이에는 공통의 일생의 궤적이 존재하기 때문에 동질감을 가지거나 공감을 누릴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남자들은 2년 정도의 군대시절이라는 동질감이 있을 수 있고, 여자들이라면 출산이라는 경험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사회문화적, 생체적이고 타의와 자의 등 너무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라 군대와 출산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여자들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중심으로 보자면 여자의 일생은 거칠게 서너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시기,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 아이를 잘키울것인가 낳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시기 정도로 나눌 수 있다. 마지막 단계는 남자들도 겪게 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자들은 그 이전 단계들을 공통적으로 겪게 된다.

 첫번째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시기는 내 경우에는 대학교입학하고 동기들이 군대를 가기 직전인 대학교 1,2학년까지 정도 였다. 그 때까지 우리는 남자 여자 대부분 같은 교육과정을 밟아서 같은 공부를 하고 그 안에서 성적을 겨루고 자라왔다. (교련/가정과목의 일부 구별은 있었지만) 사춘기를 지나면서 이성친구에 관심을 가지고 아이돌에 관심을 쏟는 시절이라도 부모님 보호 아래서 자기들의 지금이 마치 전 우주만큼이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또 반대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널뛰는 시기였다.


 어른들보다 나의 지금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그 시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 혹은 경쟁 상대가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시기다.


 두번째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는 내 경우, 대학교 3학년 휴학부터 서른 초반까지였던 것 같다. 생물학적으로 여자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는 한정적이다. 태어날때 일생동안 내보낼 수 있는 난자의 수를 정해놓고 태어나기때문에 나이가 들면 더이상 내보낼 난자가 없어지기 때문에 임신할 수 있는 시기는 신체적으로 성숙한 이후부터 난자를 내보낼 수 없는 시기로 한정된다.(다른 방식의 수정을 통한다면 다른 문제이기는 하다.)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여자들은 이 시기 아이 출산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가정의 의미와 행복이나 자신의 커리어와 비전에 대해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따지게 된다. 여자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가임기와 경제적이고 사회적으로 한창 일할 수 있는 때가 겹치기 때문에 사회 활동을 막 시작했을 때, 사회 활동에서 역량을 발휘할 때, 사회 활동에서 어느정도 위치에 다다랐을 때 중에서 아이를 갖고 출산하여 최소한의 육아를 할 수 있도록 준비와 계획이 필요하다.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눌 상대가 있고 그 문제를 잘 해결해볼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이 마련된다면 결혼도 가능하고 아이도 낳겠다는 결심도 할 수 있다.


내 일상의 반경은 사회로 커졌다. 사회에서 인정받고 나의 커리어를 쌓고싶다. 그런데 나는 가임기와 결혼이라는 계획에서 자유롭지 않다.


 세번째 아이를 잘키울것인가 낳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시기는 주로 두번째 결혼을 하고 하지 않고를 결정한 이후 단계에 속한다. 내 경우 결혼을 하기로 마음 먹었던 서른 중반쯤이었다. 아이를 잘 키울 것인가는  대부분 결혼 후 출산을 계획한 경우다. 물론 결혼 없이 아이를 낳는 사유리와 같은 여성들도 있다. 다시 아이를 겨우 키우는 것에서 정말 헌신적으로 키우는 것까지 그 스펙트럼이 참으로 다양하다. 그리고 아이를 낳지 않을 것으로 결정하는 것은 결혼을 했을수도 비혼을 결정했을 수도 있다. 이 시기에는 사회활동에 대한 자기의 입장이 명확해진다. 가정을 잘 꾸리고자 하는 욕망과 사회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각자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인정욕구나 자기만족에 더 무게를 두고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이고 결혼을 한다면 적어도 사생활이 자신의 가정으로 조금 더 확장되어 가정과 사회의 두가지 울타리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으리라 마음 먹은 것일테다. 또다시 출산까지 결정이 된다면 가정에 비중을 좀 더 크게 둔 사람이며 가정과 사회의 균형감각을 요구받을 것을 감내하기로 한 것일테다.


 비로소 아이를 낳을 가능성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여자의 일생은 윗세대로부터 많은 말을 듣고 자란다. 사회적으로도 그렇다. 제도적으로 남자들이 군대를 다녀와야 하는 시기부터 여자들은 독립적 사회인으로 무언가를 결정하도록 되어있다. 대략 20대 초반부터 40대 초반의 여성이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결정을 내려야 하는 두번째 시기 이전의 삶을 동경한다. 적어도 고등학생일때만 해도 나는 공부만 잘하면 되었다. 일어나서 잠이 들때 까지 그날의 영어, 수학 학습량을 채우고 나름의 모의고사 점수를 달성하면 그만이었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새 카세트 테잎을 사거나 좋아하는 친구에게 주려고 빈 테잎에 팝송을 숨죽이며 녹음하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간이 흘렀다.

 

 남자들의 우정과 많이 다르지 않은 첫번째 시기의 여자들의 우정은 그래서 남여 함께 불편하지 않게 추억할 수 있다. 그래서 <스물하나 스물다섯>의 총천연색의 장면들과 오글거리는 대사 하나하나에 마음이 설레고 등장인물들이 다 예뻐보인다.


 두번째 시기의 여자들의 우정은 어느시기보다 남여 사랑에 진심이다. 사회적으로 나름의 입지를 찾아가는 사이 결혼으로 결론나지 않을 몇번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가운데 자기의 인생을 다져 나간다. 여자들은 자기들이 맞딱드린 사회 속에서의 고충을 함께 나누게 된다. <사내 맞선>이나 <기상청 사람들> 속에는 각자의 커리어를 씩씩하게 쌓아 나가는 여자들이 등장한다. 그러면서 결혼에 대한 가치관에 대한 갈등이 수면으로 올라온다. 드라마라서 더 드라마틱하게 엮여 있는 상대가 직장의 대표이거나 부하직원이라서 그 고민은 좀 더 부각된다.


 세번째 시기의 여자들의 우정은 잘 그려지지 않는것 같다. 이 글을 써볼까 했던 첫 순간에는 <서른, 아홉>이 이 세번째 시기정도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생각해보니 두번째 시기를 덤덤하게 보내고 있는 게 <서른, 아홉> 속의 인물들이다. 오히려 세번째 시기의 여자들은 드라마에서 억척스럽게 가정을 챙기기 바쁜 엄마들(기상청 사람들의 진과장 엄마)이거나 가정보다 커리어에 집중하는 여자(스물하나 스물다섯의 희도 엄마)였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우정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자기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 처럼.

 세번째 시기의 우정은 엄마이든 악착같이 사회생활을 하든 둘다이든 결정하고 난 여자들은 충분히 시간이 지나고 중년이 지나서야 다시 우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듯하다. 예능<같이 삽시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나름의 전성기를 보낸 연예인들이고 각자 다양한 커리어와 결혼생활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서로 달리 살았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보듬으면서 서로를 부러워 하기도 하고 서로의 아픔을 감싸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당장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내 커리어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준비해야 한다. 그 가운데 매주 재미있게 보고 있는 이들 드라마 속 여자들의 우정에서 지나온, 혹은 앞으로 밟아가야 할 나의 인생과 그 속의 친구들간의 우정을 떠올려 본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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