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효진 Jun 20. 2023

놀이터, 아이가 자라는 곳

외동딸은 놀이터에서 사회를 알아간다.

어린이집 보낼때만 해도 아이는 잘 입히고 먹이고 씻기고 재우면 되었다. 노는것도 블럭쌓기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다. 다른 아이가 와서 자기를 방해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던 아이가 좀 컸다고 또래 아이들만 보면 성큼 가서 '같이 놀자'라고 거리낌없이 제안을 건낸다.


학교를 오가면서 안면이 있는 아이들과 조금씩 인사 하더니 이제는 놀이터에 나가면 5-6학년은 되어 보이는 언니들과도 같이 놀게 되었다. 남자아이 또래 여자아이, 고학년 언니들은 눈감고 술래잡기를 하면서 규칙을 알려주고 다치지 않게 완급 조절까지 해가면서 아이들과 신나는 시간을 만들어나갔다.


그래도 아직 어린 초등 신입생 1학기인지라 따라 나와 멀찍이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본다. 아마 저 아이들의 부모님은 베란다, 주방 창으로 드문드문 내다보거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전화를 걸겠지.


술래가 오랜시간 외롭지 않게 적당히 봐줘가면서 놀이하는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아이는 또래 남자아이와 언쟁을 벌이더니 욕은 아닌데 기분 나쁜 '어쩔티비'가 오가더니 뾰루퉁해서 급기야 아이는 무리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아이는 나에게 다른 놀이터로 가서 놀자고 하면서 성큼성큼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고, 다른 아이들은 영문을 모른다는 얼굴로 아이 뒷모습을 보거나 함께 싸운 남자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묻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무슨 일이니?' 아이는 '저 남자아이가 자기에게 나쁜말을 하고 기분이 나빴고 자기 어깨를 쳐서 기분이 나빴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인지 이야기를 해서 사과를 받거나 너도 잘못한 건 없는지 오해를 풀어야 좋지 않을까? 다시는 저 아이들과 놀지 않을 참이야?' 라고 물었다.

'그건 아니지만...' 나는 '이렇게 너 기분에 따라 씩씩거리면서 자리를 피해버리면 싸운 아이 외에 다른 아이들은 황당하기도 하고 너에게 좋은 감정을 갖기도 어려울 수 있어. 자리를 피하는 건 좋지 않아. 놀다보면 잘 맞는 친구도 있고 아닌 친구도 있는 거라서 이런 상황들이 오면 다음에는 서로 조심할 수 있으면 되는거라고 생각하고 화해하면 되는거야.'


아이가 커가면서 아이가 마주하는 상황에 조언이나 지혜를 주고싶지만 그건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는 내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다.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편이고 잘못을 잘 수긍하는 편이다. 아이는 내말을 납득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이렇게 잘 놀던 분위기가 망친것에 속이 상해있고, 다시 되돌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 때, 함께 놀던 고학년 여자 아이 하나가 다가왔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어떤 일 때문에 골이 났는지 물었다. 금새 다른 아이들도 함께 왔고, 그 문제의 상대 남자 아이도 같이 왔다. 나는 잠시 뒤로 빠졌고, 그 큰 아이들이 두 아이 사이에서 중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남자아이는 엄마인 내가 있어도 거침없이 자기가 잘못이 없고 억울한 부분을 똑소리나게 말했다. 자기가 먼저 그런 것이 아니고 쌍방적인 것이므로 우리 딸이 피해자가 아니고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될까봐 함께 놀기 힘들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러자 고학년 언니들은 이 말이 맞는지 확인하더니 아이는 더듬더듬 그렇지만 자기는 기분이 좋지 않았고 자꾸 말대답을 하는 남자아이가 불편했다고 했다.


알고보니 그 남자아이는 딸아이보다 한학년 위인 오빠였고, 말도 똑부러지게 잘하니 아이는 상대가 안되었던 것이다. 남자아이는 자기보다 어린 녀석이 대드는 것 같고 하니 본떼를 보여준것도 같다. 딸도 잘못했고 남자아이도 물러서지 않은 부분에서 좀 아쉬움이 있는데 중재하던 고학년 언니들도 그런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앞으로는 조심하자고 하면서 서로 화해하고 다시 놀자고 제안하였다. 아이는 쭈뼛거리더니 남자아이에게 다가가서 먼저 손을 내밀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다행히 남자아이는 사과를 받아주고 자기도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이 상황이 일단락 되었다.


아이는 이 일로 자기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추는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순간의 감정을 추스르고 잘못한 상황을 스스로 감당해 보는 시간을 맞았다. 아이들 스스로 자기 감정과 상황을 설명하고 중재하고 화해로 이르는 과정이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괜히 아이의 성장에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몇 살 터울이 나지 않는 저 아이들과 아이는 작은 사회를 경험하게 된다. 이 부분은 엄마 아빠가 줄 수 있는 경험이 못된다. 게다가 놀이동산에 가서 만나는 또래 아이들과 노는 일회적인 만남이 아니라 이렇게 지속적으로 만나게 될 동네 아이들과의 관계형성은 아이에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다양한 감정과 시간을 제공해줄 것이다. 그 시간을 버텨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경험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낀 시간이었다.


놀이는 생산적이지 않으나 가치있는 것이다. 놀이터는 반복적으로 대면해야 하는 지역 아이들과의 놀이의 공간이다. 단지 안 놀이터는 한정적이지만 그 속에서 아이는 오늘만해도 한뼘 성장한것 같았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매거진의 이전글 조각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