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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효진 Jun 26. 2023

겁이 많은 아이가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진짜 방법

치과에서 발동동 세 번의 기회

치과에 갔다. 지난번 신경치료를 했던 부위를 다시 살피러 간 것이다. 다행히 염증은 재발하지 않아서 발치해야 하는 정도는 아니라서 영구치가 나올 때까지 쓸 수 있게 유치에 은으로 마감을 해주어야 했다. 치아를 다듬어야 해서 부위 마취를 해야하는데 아이는 마취 주사가 두려워서 입을 꾹 닫고는 열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과 의사 선생님은 달래면서 천정에 틀어둔 애니메이션으로 눈을 돌려보려했지만 소용 없었다. 


다른 환자들이 있으므로 의사 선생님은 잠시 시간을 주고 다른 환자에게 가셨고, 간호사 선생님도 조금 후에 다시 올테니 추스르고 있으라 하셨다. 나와 아이만 남은 공간에서 아이에게 지난번 신경치료보다 아프지 않은 거고 다행히 이를 뽑지 않아도 되어서 오늘 정말 다행이라는 말을 해주었다. 살짝 꼬집는 정도의 따끔한 거니까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설명해주고 옆에 놓여있는 은으로 된 치아모양덮개를 보여주며 저걸 치료한 이에 감싸줄거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호기심이 많고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궁금하면서도 무척이나 두려움이 큰 편이다. 지난 번 흔들리는 앞니를 뽑는데도 얼마나 오랜 시간 실갱이를 했는지 모른다. 


이미 크게 흔들거려서 무얼 씹거나 자르지 못하는데, 위쪽에서 영구치가 내려오다가 아직 뽑지 않은 유치때문에서 틀어져서 나고 있을까봐 조바심이 났다. 아이를 달래고 어르고 뇌물을 준다고 회유해봤지만 아이는 다음에 뽑겠다고 하였었다. 며칠을 보내다가 그날은 안되겠다 싶어서 이미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이는 뽑아야 하고 어쨌거나 영구치가 나오게 될 것이므로 기왕 나오는거 가지런하게 자랄 수 있도록 뽑아야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미 아랫니를 네개나 뽑았고 윗니 하나도 뽑은 상황으로 경력직(?)임에도 이뽑는 것은 무척이나 소스라치게 싫어한다. 자기가 볼 수 없는 부위에서 무언가 피를 보는 상황이라는 것이 가중되어 공포를 만들어 내는 것이겠지만, 그걸 어르고 달래며 진땀 빼는 내 입장도 피곤하고 지치기는 마찬가지다. 


피할 수 없다면 그 시간을 최소한으로 하는 게 나은데 아이는 그럴 여유가 없다. 게다가 이번 상황은 집에서 아이와 나만의 대치상황이 아니라는 것에서 난감했다. 아이와의 실랑이가 길어질 수록 치과 진료 시간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마취 주사의 두려움이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고 결국에는 닭똥만큼 큰 눈물이 흘렀다.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얼굴로 울상을 짓고는 치료를 안하면 안되냐고 묻기에 임시로 해둔 치료라서 치아가 망가지거나 하면 또 염증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은근한 압박을 했다. 그렇다면 마취 주사를 놓지 않고 은니를 끼우면 안되냐고 물어서 은니를 끼워 넣으려고 이를 다듬을 건데 그게 훨씬 아파서 아프지 말라고 주사를 살짝 놓는거라고 설명해주었다. 이제는 내일 다시 와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안되냐고 물어서 이 두려움을 하루나 끌어서 좋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오늘이 아니라면 치과에는 안올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모두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옥신각신 시간이 다소 흘러 두번째로 의사 선생님이 다가와 앉았다. 아이는 첫번째 보다 더 크게 저항하였다. 나는 옆에서 아이 손을 꼭 잡고 주사를 두려워 하는 생각을 멈추자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의사선생님 볼 낯이 없어 최대한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지만, 이리저리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치과에서 이렇게 진을 치고 있는 게 민망하기도 하고 아이도 지쳐가는 것 같아서 진땀이 흘렀다. 


속깊은 한숨을 쉬고는 그냥 아이를 데리고 나갈까 하는 자포자기의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아이 치료를 그만 둘것도 아니어서 다음에는 치과까지 데리고 오는 과정부터 힘이 들 것이라는 생각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기회를 붙잡아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아이가 탐을 내던 내 진주 목걸이를 아이 목에 걸어주었다. 태권도를 배우면서 키운 용기를 이번 참에 시험해보자고, 우리딸은 해낼 수 있을거라고 이 목걸이가 힘을 줄 것이라고. 또 지난 번 이를 뽑을 때도 그렇게 시름하던 것에 비해 너무더 싱겁게 이를 뽑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아이의 눈을 힘주어 바라보면서 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꼭 성공해보자고 했다. 


아이는 목걸이 팬던트를 꼭 쥐고 여전히 두려움에 몸이 굳었다. 마지막 기회, 이번이 아니면 다음도 기약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아마 아이도 있었을 듯 하다. 마침내 아이는 조금 진정이 되었고, 간호사 선생님과 눈치로 주고받으며 일사분란 아이를 눕혔다. 간호사 선생님은 아이에게 아프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의사선생님이 다가오자 아이가 눈치 챌 겨를없이 마취주사를 찔러 넣었다. 아이는 순식간에 놀라 몸을 움츠렸고 몸을 일으키려고 하였지만 나는 아이를 보고 큰 성공을 한 것마냥 환하게 웃어주었다. 


연신 찡그리거나 단호한 목소리로 아이를 다그치던 엄마가 자기를 보고 웃으니 아이도 긴장이 풀렸는지 힘을 좀 빼는 것 같았다. 두번째 마취 주사로 잠시 자기를 속인 간호사 선생님과 나를 보면서 원망을 하기는 했지만 이내 천정 모니터에 보이는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돌리면서 다행히 세번의 기회에서 삼진아웃을 면하게 되었다. 


이 두려움의 시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자연분만으로 낳으면서 무통주사가 있는 지도 모른 채 큰 고통을 경험했지만 그 두려움의 시간으로 진을 빼는 것 보다 얼른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고 버틸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모르는 고통은 아는 작은 고통보다 무서운 것이라는 걸. 그래서 아이는 지난 신경치료보다 덜한 따끔함을 못견뎌하며 불안에 떨었다. 


특히 겁이 많은 아이, 우리 아이는 치과에서 민폐 고객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이번 기회로 나는 나의 아이가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걸 알았다. 게다가 아이의 두려움과 공포, 불안에 맞서서 결국에는 넘어서는 경험을 같이 해내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은 아이에게 협박과 으름장과 훗날 있을 더 큰 고통에 대한 예고보다 아이를 응원하고 함께 극복하며 작은 성공에도 돌아오는 환한 웃음이 더 효과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이렇게 또 다시 한발 나아가는 것 같았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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