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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오 Jan 29. 2023

도깨비

너와 함께 한 모든 시간이 좋았다


너와 함께 한 모든 시간이 좋았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두 좋았다.


드라마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었을 문구일 듯싶다. 2016년 겨울쯤에 tvN을 통해서 방영한 ‘도깨비’라는 드라마 덕분에 그해 겨울은 참으로 설레고 따뜻했던 기억이 있다. 치정과 막장 드라마라는 오명을 이어가던 공중파와는 다른 비주얼 쇼크 수준의 아름다운 배경과 아직까지 귀를 즐겁게 하는 다수의 OST, 그리고 감성을 자극하는 톡톡 튀는 대사들로 울고 웃던 겨울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해 가을쯤이던가, 주인공 김고은이 처음으로 도깨비 공유를 소환해서 만났던 강릉 주문진의 영진해변을 찾았다. 주문진 시장을 지나서 조금 더 내려가면 해파랑길이라는 이름의 해안도로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 촬영지가 있었다. 주말을 맞아 바다나 한번 보러 가자는 와이프의 제안으로 오랜만에 아들 둘을 데리고 도깨비 촬영지로 차를 몰았었다.


가을 날씨였음에도 강한 바람과 부슬비 때문에 많이 추웠던 걸로 기억한다. 파도도 제법 사나워서 방파제 위까지 바닷물이 흥건했다. 방파제 끝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시작지점에서 사진만 몇 장 찍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드라마가 그렇게 성공할 줄 몰랐던지 그때만 해도 해안가를 따라 작은 집들과 음식점 몇 개 정도만 조용히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영화, 드라마 촬영지를 방문하면 ’여기가 그곳이구나‘ 정도의 느낌만 받을 뿐, 드라마틱한 무언가를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날씨 때문이었을까. 쓸쓸하고 찬란한 신, 도깨비와 참 잘 어울리는 곳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그곳을 다시 찾았다. 김은숙 작가의 새로운 드라마 ‘더글로리’ 덕분에 며칠 전에 ’도깨비‘가 재방을 했고, 겨울 바다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겸사겸사 강릉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집안 행사가 없던 토요일이라 와이프와 둘이서만 드라이브를 떠났다. 6년이나 지나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을 거라 생각했는데, 해안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차량과 방파제 위에서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터트리고 있는 많은 관광객들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신 달라진 게 있었다. 도로를 따라 펜션, 카페, 도깨비 시장 등 4,5층 되는 건물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었다. 대부분 통창으로 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안에서 밖의 경치를 보며 커피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침 기온이 영하 11도까지 떨어졌고 낮 기온도 영하에 맴도는, 파도도 꽤 높게 치던 날이었는데 예전의 그 쓸쓸한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활기찬 동네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는 말 그대로 상업지구가 되어서 다른 관광지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나이가 들면 그동안에 쌓아온 추억들이 앞으로의 삶을 이어가는 작은 힘이 되기도 한다. 그때는 참 재밌었는데, 그때는 왜 그랬을까, 그때는 우리 정말 이러지 않았는데. 되짚어보고 다시 생각하고 또 한 번 다짐하는 오늘의 삶이 그날의 기억 덕분이기도 하다. 우리 가족이 몇 년 전에 여기, 바로 이 위치에 서서 카메라를 보고 한껏 웃었는데.. 기억을 더듬을 때 살며시 미소가 지어지면 추억이 된 것이라고. 그런 추억이 오래오래 각인되었으면 싶었다. 세상이 조금은 더디게 바뀌고 더디게 흘러서 다시 그곳을, 그때를 찾았을 때 좋은 추억들이 귓가를 스치는 휘파람이 되어 살며시 보듬어 주었으면 좋겠다.   


너와 함께 한 모든 시간이 좋았다.
모두 좋았다.





- 미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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