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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 Jun 02. 2017

내 사랑, 안달루시아! (1)

La bonne heure

잠이 안오니 발까락만 꼼지락 꼼지락, 설레이는 밤.

저가항공을 예약했더니 새벽이라 그 시간에 공항에 가는 교통편이 없네?! 뚜벅이들을 불쌍히 여기신 시아버지께서 공항에 바래다 주신다고 하셔서 미니가 퇴근하자마자 짐싸서 잽싸게 시댁에 왔다. 시부모님 동네에 새로 생긴 인도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시댁으로 와서 시엄니가 미리 구워두신 케익에 샴페인을 마셨는데 가만 있어 보자... 5년 전만해도 와인 한 모금을 못드시던 시어머니께서 이젠 우리 부부만 보면 와인병을 꺼내신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오늘도 샴페인을 거침없이 들이키시며 맛있다를 연발하셨는데 이건 혹시 내 탓인걸까?하는 생각을 잠시.


작년엔 돈과 시간을 모두 몰빵해서 한달간 한국에 다녀왔기 때문에 꽤나 오랫만에 둘이서만 떠나는 여행이다. 이번엔 미니가 가고 싶은 곳을 가 보기로 했는데 망설임 끝에 정한 곳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그 중에서도 세비야와 그라나다 두 도시에 간다.


혹시나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한 번 그려보자면 이 정도가 될 거 같다. 저 아래 색칠한 부분이 바로 안달루시아 지방인데 바다를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대륙의 모로코, 알제리와 매우 근접해 있다. 이러한 지형적 이유에 역사적인 부분이 더해져서 안달루시아 지방은 아랍과 유럽의 문화적 산물이 공존하는 오묘한 곳이라고 들었다.

비루한 지도

그러나 여전히 내 머릿속 스페인은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처럼 웅장한 도시의 모습이 전부.


음... 여행의 목적은 일단 먹는 거니까...

비록 일주일 여행이지만 한 달분의 음식을 먹고 오는 것이 현재 유일한 목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 먹을 생각을 하니 무척 설레이는 밤이다.





새벽 4시.

간신히 일어나 세수만 했으나 눈이 안떠진다. 못일어날까봐 불안한 마음 반, 설레는 마음 반으로 잠을 설쳤다. 꼭두새벽에 새까만 커피를 한 잔씩 들이킨 후, 시아버지가 운전하시는 차 안에서 시엄마가 싸 주신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면서 샤를 드 골 공항에 도착했다. 그렇게 일찍부터 시작된 여정임에도 이 새벽 공항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하다. 


미니와 나는 둘 다 성격이 급한 편이라 공항에 과하게 일찍 도착했다. 체크인과 보안검사를 마친 후 면세점을 좀 기웃거리고도 시간이 남아돌아 꾸벅꾸벅 졸다보니 탑승을 시작한다. 1시간 30분을 졸고나니 세비야에 도착했으나 우리의 여정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일주일 휴가 중 처음 반은 그라나다에서 나머지 반은 세비야에서 보낼 계획이었으므로 EA버스라 불리는 공항버스를 타고 세비야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서 다시 그라나다로 향햐는 알사버스를 타야만 했다. 물론 그 사이사이가 어김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음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알사버스는 스페인 도시간을 연결해주는 버스인데, 볕이 좋은 스페인 남부는 5월부터 이미 성수기의 시작인지라 인터넷으로 미리 예매해 두었다.)


세비야에서 그라나다까지는 버스로 세 시간 거. 버스가 달리는 동안 보이던 풍경은 아래와 같았는데 저게 다 올리브 나무니 놀랍다.

처음엔 우와! 하던 이 풍경도 세 시간 동안 보고 있자니 너무 지루할 뿐이고.

사람의 마음이란...

같은 풍경을 보고 또 보며 달려서  그라나다에 도착했다. 이제 다시 버스를 타고 호텔이 있는 시내로 가야했는데 벌써 지친건 함정, 둘 다 말수가 줄었다. 게다가 약간 흐리던 세비야와 다르게 이 곳의 햇볕은 쨍쨍이다 못해 활활이다. 왜 첫 날부터 무리하게 이동을 했을까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으니 일단 물어물어 버스를 탔다. 일반 시내버스니만큼 여행객과 현지인들로 가득찬 데다가 날도 더워서 쌀쌀한 파리에서 겨울 옷을 입고 그대로 도착한 미니와 난 쓰러질 지경이었다.

난 누구? 여긴 어디? 와이파이 없이 감으로 호텔을 찾는 중

안내방송 없는 버스에서 무사히 잘 내리긴 했는데 와이파이도 뭐도 다. 미니는 나침반 만으로 호텔을 찾기 시작했고, 돌바닥으로 된 좁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 극적으로 우리가 예약한 호텔을 발견했다. 세상에! 파리에서 세비야는 비행기로 겨우 한시간 반 거리인데, 무리하게 첫 날에 그라나다로 직진을 해 버린 우리는 비행기-버스-버스-버스를 타고 꼬박 열 두 시간만에 호텔방에 도착했다.


배정받은 호실에 들어가보니 예상치 못한 짝퉁 더블베드(싱글침대 두개를 붙여놓은)가 있었지만 방을 바꿔달라고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해야하나? '어쩔 수 없지 뭐...' 라고 아쉬운 척 말했지만 사실은 이 분리된 침대 덕에 매일 밤 더 푹 잘 수 있었으니까. 미니와 나는 둘 다 한 여름에도 큰 이불을 껴안고 굴러다니는 잠버릇의 소유자라 평소에도 이불은 따로 쓴다.

아! 그리고 여행을 할 때 꼭 챙기는 것이 있는데 다름아닌 귀마개. 이거 하나 있으면 잠자기 전에 귀에 딱 넣는 순간 세상과 분리~ 백색소음 들으면서 푹 잘 수 있다. 특히 소음방지가 잘 안되는 유럽호텔의 경우에는 필수.


아무튼...

너무 피곤해서 쉬고 싶었지만 여기까지 왔고 일단 뭔가를 먹어야 했으니 나가 보기로 했다. 가볍게 샤워를 하고 호텔 주변을 걷는데 그냥 햇볕도 너무 뜨겁고 피곤하고... 해서! 그라나다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누에바 광 어느 바에 자리를 잡고 오징어 튀김과 맥주를 주문했다. 하루종일 수분섭취를 마음껏 못해서인지 아~맥주가 정말정말 꿀 맛!! 그런데 이 한 잔의 맥주로 인해 쌓여있던 피로감이 확 상승하고 눈까지 풀리기 시작하면서 만사가 다 귀찮지는 상황이 왔지 뭔가. 결국 다음 날을 위해서 첫 날 저녁은 그냥 쉬기로 했다. 그래도 굶을 수는 없으니까 맛이 나름 괜찮다고 평을 받는 이탈리안 음식을 포장해다가 호텔에 가서 먹고 잔 것으로 이 날의 기억은 끝.

하~ 적고 나니 참 별 볼 일 없는 첫 날의 이야기.

오징어 튀김은 맛있었어요. 너무 피곤했을 뿐.
첫 날 저녁으로 먹은 가지요리와 리코타 치즈로 덮인 고기 요리... 이름은 몰라요 ^^;





기절했다 정말.

간밤에 언제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이게 다 귀마개 덕분이다.

각자의 침대에서 이불 돌돌 말고 푹 잤더니 상쾌한 아침. 에너지도 충전됐고 배도 고픈 우리는 호텔 주변을 돌아보고 아침을 먹기로 했다. 촘촘한 가로수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받으며 골목골목을 찬찬히 걷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제는 절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걷고 있는 이 도시, 그라나다는 이런 곳이었다.

거리며 발코니며 눈을 돌리는 곳곳에 꽃 나무가 있는 곳.


먹어볼까?

가로수가 무려 오렌지나무인데 아무도 그 오렌지에 손을 뻗지 않는 곳.


그라나다의 알바이신 지구

미친듯이 뜨거운 햇볕이 괜찮을만큼 하늘이 높고 파란 아름다운 곳.


삶은 문어, 크로켓 그리고 올리브

먹어 보고 싶은 것이 지천에 널린 타파스의 천국.


한 마디로 완벽한 도시!


정신을 차리고 돌아 본 그라나다는 참으매력적이다. 예쁘다.

지 이번 여행은 성공적일거 같은 느낌.


그라나다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 미니와 나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라나다! 너~어~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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