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j Jun 27. 2018

2. 우리 집

지도와 도면에 얼굴을 파묻고 지낸 6개월. 그렇게 올해의 절반이 지나갔네요.

아! 저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월세예요. 전세가 없는 프랑스의 시스템상 매매 아니면 월세 둘 중 하나거든요. 지난 수년간 지불한 월세를 생각하면 가슴이...

서울의 6분의 1 크기인 파리의 집값은 어마 무시하게 비싸기 때문에 인접한 근교 도시들을 둘러보고 있어요. 주로 파리 남서쪽을 보고 있는데 이미 파리만큼 비싼 곳들도 있어서 당황하는 중입니다.  


지난 주말에도 미니와 저는 눈뜨자마자 집을 나섰고, 두 개의 신축 아파트 분양 사무소에 들렀습니다. 첫 번째 집은 이미 에이전트와 여러 번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설계 도면도 꼼꼼히 확인했기 때문에 별 이상없다면 반드시 싸인하겠다 하는 맘이었어요. 그런데 결론적으로 그 집은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고요. (자세한 얘긴 언젠가 la bonne heure 에 풀어 보겠습니다)


밥도 못 먹고 잔뜩 실망한 탓에 쭈구리가 된 미니와  두 번째 분양 사무실에 갔지요. 그냥 왔으니까 한 번 들러나 보자 하는 맘이었어요. 차들이 꽤 다니는 길가에 위치해 있긴 했지만 작은 평수 신축으로는 처음 본 남향집에다 꽤 괜찮은 내부 도안을 가지고 있었어요.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냥 무난하네 생각하며 일단 도안을 받아 들고 왔는데, 오후 내내 이것저것 보고 따져볼수록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설레기 시작했어요. 한눈에 반해서 우왁!!! 한 것은 아니었어도 생각할수록 좋은 집. 우리 둘이 살기에 완벽했어요. 동시에 미니의 동료가 한 말을 떠올렸죠. 집 값 비싼 파리에서는 원하는 것들의 리스트를 들고 집을 보면 안 된다.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들의 리스트를 만들 기피 요소가 없는 집을 발견하면 그 즉시 싸인해야 한다. 딱 그런 집이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이 집을 사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소리쳤어요.

"미니! 여기야! 고고!"

미니는 그 즉시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결전의 날이었습죠.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밤새 잠을 설치고 일어나자마자 도면을 찾고
기쁨의 환호성!


드디어 우리 집을 갖다니 꿈만 같아요.  

너무 기쁜 나머지 정신을 못차리는 미니.

.

.

.

.

.

실은 허언증입니다. 미니는 제 정신이 아니예요. 하… 그 집은 저희보다 한 발 빠르게 누군가 싸인을 했대요. 기운이 쭉 빠지고 엄청나게 슬픈 어제 오늘,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나 눈 앞이 캄캄하기도 하구요. 인생은 타이밍, 왜 반나절을 망설였을까, 왜 처음부터 싸인하지 않았을까 하면서 미니는 끝없는 자책 중입니다.


이미 떠난 집 도면을 보고 또 보고...


언제쯤 우리 집이 짠 하고 나타날까요?  

이보다 나은 집이 나타나긴 할까요?

인생 진짜 맘대로 안된다더니… 그래도 힘내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겠죠.

마음대로 되진 않지만 온갖 서프라이즈가 예고 없이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로또를 사러 갑니다. 엥?         

집으로 시작해서 로또로 끝나는 별 거 없는 얘기 끝.

매거진의 이전글 1. 일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