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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ND ACTIVIST Jun 19. 2024

민감해서 창의적이고 고통으로 가득한 사람들

TBQC (Time Based Quality Control)

“눈을 파버리고 싶다.”

울부짖으며 그 말을 했던게 여러번이었다.


내 눈에만 보이는 문제……

나 혼자만 풀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외로움…..

시간이 흘러도 알아채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서 오는 공허함……


내 눈에만 보이는 문제니까 내가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내 모든 시간을 갈아넣어봤고, 그로 인한 효과와 동시에 내 삶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다.


몸이 망가지고 관계가 망가지고 정신이 망가졌다.

14년 전, 디자인프로젝트를 하다가 고객에게 이미 넘어간 자료의 디테일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스스로 뺨을 셀 수 없이 때렸던 날, 아내가 울면서 내게 정신치료를 받아보라고 얘기를 했다.


정신치료를 받으러 갈 것도 없이 인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그런 내가 싫었다.

그런 나로 인해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을 지키지 못하는게 싫었다.

그런 내가 아이들을 해칠 수 있는 존재일 수 있다는게 끔찍했다.


TBQC(Time Based Quality Control)의 정의와 훈련법을 만들게 된 배경이다.


대안을 세우지 않으면 나같이 민감한 사람은 역대급 작품을 만들어봤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주변을 괴롭게 만든다는 생각을 했고, 끊임 없이 더더더 들어가려고 하는 나를 붙잡아두기 위해 시간제한을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혼신을 다해도 되는 영역,

내 민감함과 열정을 모두 쏟아부어도 되는 영역을 설정했다.


세상의 모든 관계, 본질적 정수…..

이것만큼은 내 인생 전부를 바쳐도 된다는 생각을 했고,

본질에서 벗어난 트렌드 만큼은 내 안에서 지우려고 노력했다.


그때 난 디자인/뮤직/패션을 모두 내려놓았고 모든 시간을 갈아넣어서 A급이 되기 보다는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해서 B급이나 C급을 만드는 것을 골로 설정했고, 어렵게 어렵게 어렵게 내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이후, TBQC는 우리 가족의 주요 기준 중 하나가 되었다.

아내와 아들은 센스도 있지만 원래부터 이것이 몸에 장착 되어 있는 것 같은 신기한 존재….. 문제는 딸이었다.


나를 쏙 빼닮아서 무언가에 빠지면 식음을 전폐하고 파고 드는 타입.

가만두면 한 영역을 씹어먹고 레전드가 되겠지만 인생은 처절하게 망가질 기질을 갖고 있었다.


더 많이 끌어안고 사랑해주었다.

그리고 혼신을 다하는 것은 좋지만 꼭 시간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 딸은 사랑과 관계를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게 되었고 TBQC를 받아들여야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하게 되었다.


이제 TBQC는 우리 가족을 넘어서서 주변으로 흘러가고 있다.

QC는 배웠어도 TB를 배운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얘기를 너도나도 이야기 하고 있다.

결국 타인이 정한 시간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스트레스 받아가며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을 내어놓을 뿐, 내 스스로 시간 기준의 역량파악과 정리를 (난 그것을 메뉴판이라고 부른다) 하지 못한 채 살았다는 것을 모두가 수긍하고 있다.


그로 인해 괜한 자존감상실을 겪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보며 그 중에도 유난히 민감한 사람들이 겪을 고통을 떠올리면 이전 생각이 나서 머리와 가슴에 통증이 느껴진다.


지금의 난 너무나 부족한 내 자신을 받아들였다.

내 눈에 뭔가가 보여도 내 시간의 한계와 몸의 한계를 놓고 범위를 정한다.

그 범위 안에서만 신나게 날뛰어보라고 나를 풀어놓는다.


시간이 다 되었다는 알람소리가 들리면,

스스로 몸을 묶고 토닥이기 시작한다.

’됐어. 잘했어. 충분해. 네 눈에 보이는게 네 수준이 아니라.

이 시간에 나온 결과물이 네 수준이야.

알잖아. 받아들였잖아. 맞지?‘ 라고 되묻고 수긍하는 것을 반복한다.


글을 쓰는 내내 아내를 향한 감사한 마음이 가득 차오른다.

허구언날 칼춤을 추는 인간의 곁에 서 있느라고 끌어안고 멈추게 해주느라 아내의 온몸은 상처투성이다.


그런 아내 덕분에 난 지금의 내가 좋아졌다.

지금의 내가 딱 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열배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지난 날의 비정상적인 나는 그립지 않다.

지금은 식사도 제때 할 수 있고, 사랑해야 할 때 사랑하고, 쉬라고 하면 쉴 줄도 안다.

얼마나 감사한지 이루어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무한경쟁사회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보는 이도 있을 것이다.

상관 없다. 마천루 꼭대기 펜트하우스에서 외롭게 사느니 굴다리 밑에서 구걸을 할지언정 가족과 사랑하며 지금을 살아가는 것을 선택할꺼니까.


#TBQC #민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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