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지속되어 온 것을 멈춘다는 것은 어쩌면 오프 스위치를 하나 누르는 것에 불과할 만큼 순식간에 진행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또 온전히 받아들였다. 마케팅적이지 않고 수단이나 셈을 따져보지 않는 사람이어서 나의 바람과 달리 흘러갔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나의 몫이었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이전 기록들, 블로그를 시작하며 내가 해 온 많은 이야기들과 행동들이 아주 자주 'history'라는 이름으로 떠오른다.
내가 예전에 이런 책을 봤었구나.
내가 이렇게 빨리 일어나서 눈을 비비고 앉아 공부를 했었구나.
분명 나는 더 나은 내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구나.
여전히 제자리인 것 같은 내 모습에 기운이 빠지는 것도 잠시, 그래도 이렇게 해 왔으니 나는 자주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게 되었을까 생각한다.
이제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왜 그렇게나 읽고 쓰려고 애쓰는 것일까?
사실 이제는 읽지 않는 나를 상상하기가 힘들어졌다. 여전히 고집스럽게 오로지 문학과 동화만을 함께 읽자고 말하는 나를 바라본다. 요즘 흔히 하는 많은 성격 유형검사 중에서 MBTI보다 나의 시선을 더 끄는 것은 내향형인지 외향형인지 가늠해 보는 것이었다. 나는 철저히 내향형이다. 사람들을 만나서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집에 오면 모든 기력을 다 쏟아부은 사람처럼 쓰러져 버리기 일쑤였다. 여전히 숨고 싶고 조용히 책만 읽고, 홀로 지내고 싶은 순간이 훨씬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왜 또 사람들을 만나려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또 다른 생존 본능과도 같은 것이려니 하게 된다. 내 안에 갇혀서 나오지 못한 말들은 책의 언어로 순화되기도 하고, 토닥임을 받고 싶은 마음도 그 이유에 더해진다. 내 모임에 오는 이들도 그런 감정을 느끼면 좋겠다. 어려운 책들, 성장을 위한 책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조금 더 다독임을 받을 수 있는 시간들로 채워지면 좋겠다. 나는 그들을 마음껏 환대할 것이다.
12월 23일 모임은, 카페에서의 거리 두기 방침에 따라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한순간 몸에 온 기운이 빠져나가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매일 아침 책 속 문장들로 인사를 건네고, 함께하는 이들에게 비록 직접은 아니어도 전해 줄 소소한 선물들을 준비한다. 크리스마스 전에 선물처럼 도착하길 바라면서, 모임의 시간 역시 그들에겐 또 내년을 살아낼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선물이 되길 바라고 있다.
첫 코로나가 시작된 후 오프라인 모임이 중단되었고, 그다음 해에는 오프라인 모임보다 온라인 모임을 사람들이 심적으로 더 편안해하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람들의 삶 속에서 책 역시 (내가 항상 함께 읽자고 말하는 '문학'은 특히 더!) 자리를 점점 더 차지하기 힘들어졌다. 성장하고 돈으로 환원되는 가치를 찾는 독서모임이 더 강하게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나는 소예 책방안에서 독서모임을 지켜나가기로 하였다. 문학을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제 코로나는 3년째를 향해가고 있다. 갑작스레 거리 두기가 시행되어도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생겼고,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전해지게 될 거라는 믿음은 아직 유효하다.
우연히 만난 독서지도사 시절 제자는, 내가 헤어지기 전에 전해주었던 직접 쓴 편지와 책을 여전히 기억하고,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도 자주 꺼내서 보거나 책을 읽는다는 그 아이의 미소에 내 온 마음이 따뜻함으로 채워졌다. 책을 읽기 싫어했던 아이는, 이제 중3이었고 곧 고등학교를 올라가서 걱정이라고 하였다. 나는 분명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너무 잘 커서 숙녀가 다 되었다고 기쁨과 반가움을 마음껏 표현했다. 나조차도 잊고 있었는데, 여전히 나를 기억하는 그 아이에게 나는 올해가 가기 전에 또 큰 선물을 받았다. 진심이 더해지면 누군가는 가슴에 오랫동안 품고 지내는구나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책을 보내면서 진심으로 즐거웠고, 손 편지를 쓸 때도 그 편지들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잊힌 곳에서 툭 튀어나와 소예 책방을 기억하게 될 누군가를 떠올렸다. 후회 없이 하고 싶은 것을 했기에 후회 없이 마지막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제는 책을 읽는 독서가, 독서모임 리더, 필사하는 사람, 쓰는 사람으로 살아낼 나의 날들이 두렵거나 걱정되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기다려지는 날이고, 지금 나는 그렇게 지내고 있다. 아무리 무용해 보일지라도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니, 마음껏 읽고 웃고 울고 쓰려는 이들에게 나는 매번 초대장을 보낼 것이다.
그대도 읽고 있나요? 함께 읽을래요? 아니면, 함께 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