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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Dec 10. 2021

{라이팅 클럽} Vol.11

https://brunch.co.kr/@imwooyj/161

라이팅 클럽 Vol.11 에 이어지는 편지입니다.

언니와 아이들의 계절에 새겨질 아름다움, 추억, 행복들이 어떤 색깔로 빛날지 궁금해요. 전 사실 계절에 점점 더 민감해지고 있는 걸 느껴요. 이전보다 더 봄의 기운에 새로 터지는 꽃망울에 감탄하거나 여름에는 그늘 아래에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가을에는 선선해지고 건조해지는 공기가 잠에서 막 깬 저를 기분 좋게 한다고 느끼죠. 겨울에는 입김이 새하얗게 나오는 것이 즐거워 여러 번 호호거리기도 해요. 예전엔 그저 봄은 따뜻함, 여름은 뜨거움, 가을은 시원함, 겨울은 차가움으로 받아들이던 제가 왜 한 해씩 더 늘어날수록 예민해지는 걸까요?


저는 겨울을 정말 좋아해요. 그리고 겨울은 늘 하얀색이거나 투명한 색이길 바랐던 것 같아요. 부산에서 지낼 때는 겨울에 눈을 본 것이 한 번 뿐이었어요. 아파트 복도에 서서 내려다 본 초등학교의 운동장이 새하얗게 덮인 것을 보고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얼른 내려가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온 동네 꼬마들은 물론 어른들도 모두 나와서 눈에 발자국을 내고 눈싸움을 하거나 눈사람을 만들었죠. 그리고 서울로 올라와서는 겨울에 내리는 눈은 때로는 아름다움보다 번거로움으로 다가오겠다는 걸 알았어요. 사실 꽁꽁 언 눈길, 얼음 길에 엉덩방아를 찧기도 여러번이었어요. 그리고 결혼을 하고 김포에서 새로운 날들을 보내는 데 생명이 찾아왔어요. 배가 불러오고 겨울이 되니 눈이 내리더군요. 이제 눈 내리는 것을 보는 것이 낯설지 않은데도 그 때는 너무 아름답더라구요. 친정 엄마도 눈을 자주 보지 못하니, 너무 즐거워하며 배가 부른 저를 집 근처 곳곳에서 눈과 함께 사진에 담아 주며 너무 행복해 하셨어요. 두 모녀가 마치 청춘 시절을 보내는 여고생이 된 것처럼 말이죠. 그 이후부터 겨울은 눈이 내려도 여전히 좋은 계절이 되었어요. 아이를 안고 병원에서 나왔을 때 하얗게 쌓였다가 군데군데 녹은 눈의 흔적을 보았어요. 눈을 맞으며 뛰어놀지는 못했지요, 녹은 눈에 미끄러지지 않으려 조심 조심 나왔던 기억이 나요. 아이가 태어난 계절에 눈을 만날 수 있겠구나 생각했었죠. 아이가 태어나 외출에 용기가 생긴 초보 엄마는 유모차를 끌고, 눈 쌓인 길도 자박 자박 소리를 들으며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하곤 했어요. 유모차가 미끄러질까 손에 힘을 꼭 주고 아이가 행여 감기에 걸릴세라 방한 커버를 씌우고 저는 입김을 내뿜으면서 말이에요. 많은 기억들에서 겨울의 색깔은 늘 하얀색이었어요. 겨울은 눈 만큼이나 하얗고 얼음만큼이나 투명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새하얗고 투명함 위에 나쁜 것들보다는 행복한 순간을 더 그려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일 년이라는 많고 많은 날 중에서 남녀 모두가 닫힌 마음을 활짝 여는 유일한 날이죠.

- 크리스마스 캐럴


그리고 저는 판매를 하면서 크리스마스에는 제가 보내는 것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더 좋은 선물처럼 다가가길 바라며 준비를 해왔어요. 사실은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12월 한 달 내내 그렇게 선물도 함께 보냈어요. 홍보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제가 너무 행복했던 날들이어서 그것이 함께 전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움츠러든 마음들이 조금은 사르르 녹고 열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에요.


39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어요. 제가 기억 못하는 겨울에는 아빠와 엄마가 저의 겨울을 위해 애써 오셨겠죠. 제가 기억하고 잘 보내려 했던 겨울을 기억하려 하면 카드를 고르러 다니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해보기도 했고, 연애를 해보고 싶기도 했던 제가 함께 떠올라요. 차가워지자 따뜻하고 큰 손으로 제 손을 감싸며 손도 마음도 녹여주었던 연애 시절도 떠오르고요. 여전히 저에게는 마음이 몽글몽글해오는 겨울밤들이에요. 하얀 이미지 위로 또 많은 이야기들을 새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좋은 예감도 함께하지요. 여전히 편히 집밖을 나서기 힘든 날들이에요. 그럼에도 크리스마스 캐럴을 틀어두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비록 집 안이어도 나만의 겨울을 환영하는 시간들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언니도 축복과 사랑이 가득한 (이 진부한 표현을, 겨울 내내 만나는 이들마다 전하고 싶어요) 겨울을 보내길 바라며 인사를 전해요.


- 12월 9일 연달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캐럴에 몸도 마음도 흘려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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