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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주 May 16. 2023

동화를 읽고 있습니다. 안부를 묻습니다.

Why Children’s Book Should Be a Little Sad – Kate DiCamillo

왜 동화는 약간 슬퍼야 하는가 - 케이트 디카밀로

2018년 1월 12일 타임지


-

 

친애하는 맷,

 

나는 당신의 책 [사랑]을 읽었어요. 그리고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내가 책장을 넘겨 피아노 밑에 숨은 아이를 보았을 때 – 작고, 걱정하고, 무서워하는 아이를 – 꼭 내 존재가 인정받은 듯한 느낌이 밀려들었다는 사실을. 꼭 누가 나를 봐준 것 같았다는 사실을. 내가 바로 그렇게 실제로 (또한 은유적으로) 피아노 밑에 숨던 아이였죠. 나는 우리 가족의 비밀과 두려움 때문에 고립된 기분을 느끼는 아이였어요. 내가 아이였을 때 그 그림을 보았다면 엄청나게 안도했을 거예요. 내가 혼자가 아니란 걸 알았을 거예요. 덜 창피하게 느끼게 되었을 거예요.

 

당신은 내게 물었죠. 우리 동화 작가들은 우리 독자들에게 얼마나 솔직해야 하느냐고. 우리가 할 일은 아이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주는 것인지.

 

나도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아이들이 가득한 강당에서 “이 가운데 [샬롯의 거미줄]을 알고 좋아하는 친구가 있나요” 하고 물어본 적 있나요? 내 경험으로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손을 들어요. 그다음에 “읽고 울었던 친구가 있나요” 하고 물어보면, 번쩍 들었던 손들이 대부분 여전히 번쩍 들려 있어요.

 

내가 어릴 때 제일 친했던 친구는 [샬롯의 거미줄]을 읽고 또 읽었죠. 마지막 쪽까지 읽자마자 책을 뒤집어 처음부터 다시 읽었어요. 몇 년 전 나는 그 친구에게 그때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았죠.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던 이유가 뭐야?” 나는 물었어요. “다시 읽으면 결말이 다르게 나올 수 있을 거라고, 더 좋은 결말이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샬롯이 죽지 않을 거라고?”

 

“아냐.” 친구는 대답했어요. “그런 게 아니었어. 내가 읽고 또 읽었던 건 결말이 다르게 나오기를 바라서가 아니었고, 결말이 다르게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도 아니었어. 결말이 다르게 나오지 않으리란 걸 똑똑히 알기 때문이었어. 나는 결국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떻게든 괜찮아진다는 것도 알았어.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다시 읽어보면, 모든 것이 너무나 아름다웠어. 그리고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지. 그게 바로 그 책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였어. 그게 바로 내가 들어야 했던 이야기였어. 내가 어떻게든 그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과 나를 비롯하여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신성한 일을 해보려고 애쓰는 모든 작가가 답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에요. 우리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되 그 진실을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낼까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나는 어떻게 내가 작가가 되었는가 하는 사연을 들려줘요. 어릴 때 내가 어떤 아이였는지 말해주고,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아빠가 가족을 떠났다는 것도 말해줘요. 4년 전 사우스다코타에 갔을 때였어요. 거대한 강당을 메운 900명의 아이들 앞에서 여느 때 하는 이야기를 들려줬죠. 내가 어릴 때 만날 아팠다는 이야기, 우리 아빠가 우리를 떠났다는 이야기. 그다음에는 내가 글을 쓰고 싶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어요. 끈기 있게 계속 해보았다는 것도 말해주었어요.

 

질의응답 시간에 한 남자아이가 내게 물었어요. 만약 내가 만날 아픈 아이가 아니었고 아빠가 나를 떠나지 않았더라도 작가가 되었을 것 같으냐고요. 나는 “만약 내가 그런 일들을 겪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일은 없었을 가능성이 꽤 높았을 것 같군요” 하는 식으로 대답했죠. 그러자 한 여자아이가 손을 들고 말했어요. “알고 보니까 선생님은 선생님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했던 거네요.”

 

아이들이 강당을 빠져나갈 때, 나는 문간에 서서 지나가는 아이들과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았어요. 그때 한 남자아이가 – 호리호리한 다리에 금발 머리카락의 아이였어요 – 내 손을 잡으면서 말했어요. “나는 여기 사우스다코타에 있고 우리 아빠는 캘리포니아에 있어요.” 아이는 반대쪽 손을 들어 캘리포니아 방향을 가리켰죠. “아빠는 거기 있고 나는 엄마랑 같이 여기 있어요. 그래서 나는 내가 괜찮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오늘 선생님은 선생님이 괜찮다고 말했잖아요. 그래서 이제 나는 나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뭘 할 수 있었겠어요?

 

울지 않으려고 애썼죠. 아이의 손을 계속 잡고 있었죠.

 

아이와 눈을 마주쳤어요.

 

그리고 말했어요. “너는 괜찮을 거야. 너는 괜찮아. 아까 다른 아이가 말했잖아.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해.”

 

나는 그 아이와 깊이 연결된 기분이었어요.

 

누군가 나를 봐주었구나 하는 기분을, 우리 둘 다 느꼈다고 생각해요.

 

내가 [샬롯의 거미줄]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 읽을 때마다 울게 되는 부분은 끝 쪽에 나와요. 이런 대사죠. “이 가을날들은 점점 더 짧아지고 추워지겠지. 나뭇잎들은 나뭇가지에서 헐거워지다가 땅으로 떨어지겠지. 크리스마스가 올 테고, 그다음엔 눈 덮인 겨울이 올 거야. 너는 살아서 꽁꽁 언 세상의 아름다움을 즐길 거야. 넌 주커만 아저씨에게 중요한 존재이고, 아저씨는 널 결코 해치지 않을 테니까. 겨울도 지나갈 테고, 낮이 길어질 테고, 풀밭에 고인 물이 녹을 거야. 멧종다리가 돌아와서 노래할 테고, 개구리들이 깨어날 테고, 다시 따스한 바람이 불어올 거야. 그 모든 장면과 소리와 냄새를 너는 즐길 거야, 윌버. 이 사랑스러운 세상을, 이 소중한 나날을…”

 

나는 E. B. 화이트가 어떻게 그 일을 해냈는지를, 그러니까 어떻게 진실을 말하면서도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냈는지를, 그 비결을 오랫동안 고민해왔답니다.

 

그리고 내 생각에 당신이라면, 사랑에 대해 그렇게 아름다운 책을 쓴 당신이라면, 결국 내가 생각해낼 수 있었던 해답은 사랑뿐이었다고 말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 같군요. E. B. 화이트는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기에, 세상에 관한 진실을 말했죠. 그 슬픔을, 애통함을, 가슴 미어지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그는 자신의 독자들을 충분히 믿었기에 그들에게 진실을 말했고, 그 진실과 더불어 위안이, 또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왔던 겁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독자들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보는 것, 또한 남들도 우리를 보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담아,

 

케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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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을 읽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읽는 책들 역시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비단 어린이만이 향유해야 하는 문학일 것이라고 여겼던 것들에서 오히려 저는 저의 어린 소녀와 마주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아주 자주 느끼곤 합니다. 왜 그러는 걸까요? 가르치기 위해서, 읽히기 위해서 읽어야하는 것을 넘어서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가는 여정에 서 있습니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 둔 곳에 다시 돌아오며 어린이 문학을 읽고 있노라고 먼저 고백합니다.

읽어왔던 책들, 사랑하는 책들에 대해서 여전히 말하고 싶어서 돌아왔다고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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