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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Mar 10. 2022

독일과 궁합이 잘 맞는 은지 님이 궁금하시다면(1)

[인터뷰] 독일 거주 엄마들을 만나다


[지극히 사적인 인터뷰] 기회 의도는 독일 거주 엄마들의 고유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때로는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한 줌의 위안을 얻기도 하니까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라는 문장을 자주 상기했어요. 독일 거주 20년 차 선배의 거침없이 당당한 스토리에 매료되었어요. 설문지 답변과 화상 인터뷰(2022년 3월 3일)로 만나 작성한 글입니다. 인터뷰 글은 1부와 2부로 나누어 발행됩니다. 



김유진 : 은지 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이은지 : 독일인 남편을 만나 2000년에 독일에 왔습니다. 어학을 끝내고 함부르크 대학에서 잠깐 공부(동아시아학과)를 하다가 학생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게 되어 학업을 중퇴하고 그때부터 일을 시작했답니다. 함부르크에서 14년 살다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취업하면서 이사했습니다. 8년간 일한 직장에서 작년(2021년) 가을, 번아웃이 와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퇴사했습니다. 그간 여행도 다니고 독일어도 배우며 쉬다가 얼마 전 회계법인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고 조만간 출근합니다.     


김유진 : 독일 사신 지 20년이 넘으셨군요. 감회 부탁드려요.      


이은지 : 외국인으로서 외국에서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 한국에서 기본적으로 누리는 것조차 노력을 해야 얻을 수 있으니까요.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외국에서 사는 것이 에너지가 두 배 정도 더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독일에서 사는 것이 적성에 맞아요. 사람마다 자기 성향에 맞는 나라가 있는데 독일이 저하고 궁합이 맞는 것 같아요. 독일은 제게 많은 기회를 준 나라입니다. 예를 들면 어학을 배우거나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시스템적으로 지원이 됩니다. 여성이고 외국인이지만 하고자 노력만 하면 늘 기회가 왔기 때문에 한국에서 느꼈던 벽 같은 것은 독일에서 느끼지 못했어요.      


김유진 : 나이 제한이 그나마 덜한 독일이 한국보다 재취업이 가능하다는 꽤 긍정적인 글을 읽고 귀가 솔깃했어요. 취업하신 글을 읽고서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1) 전공과 다른 쪽으로 취업하신 이야기와 2) 과감히(?) 퇴사하신 연유도 궁금합니다.       


이은지 : 전공은 신문방송학과입니다. 독일 잡지사나 방송국에 취직해서 기사나 대본을 쓸 거란 생각 따위는 아예 하지 않았고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잡일, 많이 했습니다. 이번에 퇴사한 이유는 번아웃 때문이었습니다. 애초에 회계는 제 취향에 맞지도 않는 일이었는데 그 길이 아니면 번듯한 곳으로 취직할 수 없을 것 같아서 Weiterbildung(직업 추가 교육)을 회계 쪽으로 했습니다. 독일에서 Weiterbildung을 받으려면 최소 1년의 아르바이트 경험이 필요해요. 호텔에서 아침(Frühstück) 만드는 일을 했는데 일이 너무 힘들어서 6개월 다니다 그만뒀습니다. 그 사정을 노동청(Arbeitsamt) 담당자에게 말했더니 운 좋게 지원금(Gutschein)을 받아서 Weiterbildung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Weiterbildung과정을 6개월간 받고 시험까지 보는 게 쉽지 않았지만 덕분에 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고요. 회사도 좋았고 대우도 괜찮았지만, 솔직히 두 번 다시 이런 회사에 취직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상사와 회사 구성원들이 좋았습니다만 평양 감사도 제가 싫다는데 어쩝니까. 번아웃 때문에 정말 쉬고 싶었어요. 그놈의 인보이스들, 액셀 타벨레(도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어요. 사표 내기를 더 미뤘으면 아마 죽었을 거예요.      





6개월 쉬니까 봄날에 땅에서 싹이 올라오듯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살짝 올라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사람이 헛짓을 좀 하고 살아야 되거든요. 헛짓을 잘하면 그게 예술이 됩니다. 그런데 헛짓을 하려면 사람이 심심해져야 돼요.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해요. 아무것도 안 하고 논지 한 3개월쯤 되면 슬슬 뭔가 헛짓거리가 없나 싶어서 주위를 살피게 돼요. 요즘 헛짓거리를 좀 하고 있어요. 아크릴 물감으로 레몬도 그렸고요. 어학원 친구들과 퀴즈 배틀을 하는데 제가 그 문제 출제자입니다. 문제 출제하고 상장 디자인하는데 종일 걸렸는데 제가 하겠다고 자원했어요. 그거 하면서 하나도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재미있어 죽어요.     


그런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또 그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게 됐네요. 회계법인이면 사실 일반 회사보다 일이 더 많을 수 있는데 어쩔 수 없죠. 잘 노는 사람이라면 한 번 놀아보겠지만 잘 노는 사람이 못돼요. 취미도 없고, 친구도 없어요. 수다 떠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해요. 그럼 뭐 하냐?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을 안 하니 폐인 되겠더라고요. 일을 취미 삼아 살살하는 수밖에 없죠. 이번엔 파트타임으로 살살합니다.     


김유진 : 은지 님 글에 종종 등장하는 방만구 씨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보통은 남편의 실명을 쓰지 않는데, 진짜 이름인지도 궁금했는데... 독일인이셨군요. 딸 미나와 만구 씨도 얘기도 들려주세요.     


이은지 : 방만구 씨는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중국학을 전공했는데요, 대학시절 베이징 대학교에 어학연수하러 갔다가 거기 선생님이 남편에게 방만구라는 중국 이름을 붙여주셨어요. 인물을 보자면 자기 본명보다 더 방만구처럼 생겼습니다. 아시아에 전반적으로 관심이 많고 한국어도 읽기와 쓰기가 가능합니다. 시간이 있으면 소파에 누워서 유튜브나 때리는 저에 비해 방만구 씨는 늘 생산적인 일을 합니다. 이를테면 손가락 만 한 피규어에 색칠하기, 보드게임 디자인하고 딱지들을 만들기, 무료로 보드게임 잡지에 글 기고하기 등입니다. 아쉽게도 모두 돈 되는 일은 아닙니다. 방만구 씨와 20년을 살았지만 이 사람이 하릴없이 소파에 누워 빈둥거리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부지런한데 뚱뚱합니다. 많이 뚱뚱한 건 아니고요, 결혼 후 1년에 1킬로그램씩 쪘습니다. 그래도 100 킬로그램 이하입니다.      


미나는 저와 성격이 복사판입니다. 그래도 12살이었던 저와 현재의 미나를 대놓고 비교를 하자면 제가 여러모로 약간 낫다고 할 수는 있죠. 저는 그 무렵 학교에서 전교회장을 하고 중학교 3학년 내리 반장을 했는데 미나는 학교에서 존재감이 별로 없는 편이거든요. 다만 인물 면에서는 미나가 친탁을 해서 괜찮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외탁을 했다면 얘도 저처럼 평생 이쁘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하고 살았을 뻔했습니다.    

 



김유진 : 아직도 독일어 어학원을 기웃거리신다고 부끄럽게 말씀하셨지만 무려 C1* 과정이라면 진정 존경합니다. 독일어를 포기하기 일보 직전에 은지 님과 인터뷰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B2* 단계에서 포기하지 않는 팁도 부탁드려요^^      


이은지 : 개인적으로 B2 단계가 독일어 배우는 최대의 고비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B1 이하 과정에 있는 사람은 아예 신문기사나 관공서, 학교 등에서 온 편지를 읽을 생각을 안 해서 남한테 물어보고요, C1 이상 끝낸 사람들은 웬만한 신문기사나 편지를 읽는데 그다지 불편함이 없습니다. B2가 딱 어중된 그 중간에 있는 과정인데, 신문을 읽어도 자꾸 막히고, 뉴스를 들어도 귀에 찰싹 들어와 박히지 않고, 말도 꽤 오래 배운 것 같은데 아직 어버버 하는 것 같아 도대체 이놈의 독일어는 언제!!! 이러면서 대개 포기하고 맙니다. 그러나 그 고비만 잘 넘기면 눈과 입이 트여서 태평성대가 열린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1년 만에 C1까지 끝내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언어라는 것은 그 많은 단어와 문법을 짧은 시간 안에 쑤셔 넣는다고 넣을 수 있는 게 아니지요. 단어를 아무리 달달 외워도 입이 그렇게 단 시간에 트이지 않습니다. 시간을 가지고 서서히 그 나라의 문화를 즐기고 음식도 먹으면서 배우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진 님이 독일에서 살아온 6년이라는 시간은 B2를 배우기에 안성맞춤인 시기입니다.     


좋은 성적으로 B2를 끝내고 싶다면 개인적으로 Deutsche Welle 신문을 탐독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 사이트는 독일어를 배우는 외국인에게 맞는 기사를 제공하고 있어서 B2에 맞는 읽는 기사와 듣는 기사를 찾아서 읽고 들을 수 있답니다. Deutsche Welle Deutschlernen 치시면 사이트 뜰 거예요.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팝송을 좋아하고 영어를 좋아했는데 그런 경험들이 독일어를 배우는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봐요.      



*독일어는 A1, A2, B1, B2, C1, C2 레벨이 있으며 A1에서 C2로 갈수록 어려운 단계다.


[거침없이 당당한 은지님의 인터뷰는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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