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진 Apr 30. 2022

오랫동안 기억될 사람, 프라우 웨버만

독일 초등학교 적응기



오랫동안 기억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저는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모습에 더해서 가끔은 그 이상의 일을 아무 대가 없이 하는 사람이 기억에 오래 남아요. 해야만 하는, 주어진 일을 잘하기도 버거울 때가 있으니까요. 프라우 웨버만Frau Oevermann, 큰아이의 3학년 담임선생님이 그랬어요. 웨버만이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거예요. 졸업한 지 4년이 지난 2021년 성탄절에는 선생님께 카드를 쓰며 감사를 전했어요. 김나지움 8학년으로 여전히 좋은 친구들을 사귀어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에 굉장히 기쁘다는 답변을 주셨어요. 


상대방을 높여 부를 때 성Nachname[나흐나메] 앞에 남성은 헤어Herr를, 여성은 프라우Frau를 붙여요. 아이들도 선생님이라는 존칭으로 프라우 웨버만Frau Oevermann이라고 불러요. 선생님은 만날 때마다 구텐 모르겐Guten Morgen이라는 인사로 악수를 청해요. 한국에서 고개를 숙여 안녕하세요,라고 정중하게 인사하는 것처럼요. 큰 눈과 도드라진 광대뼈 그리고 옅은 갈색의 적당히 짧은 곱슬머리와 당당한 걸음걸이에 금방 압도되었어요. 전형적인 독일인이에요. 어떤 모습에서 전형적이라는 말을 떠올렸는지 모르겠지만, 본인도 그리 말씀하셨어요. 1년에 한 번 20분간의 상담 시간엔 영어가 유창한 제자를 대동해요. 자신은 독일식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 좀 더 정확한 소통을 위해 통역을 부탁했노라고요. 선생님을 보면 강하고 빠른 악센트의 독일어가 유독 잘 어울려요.




독일에서 살 집이 정해진 후, 가까운 곳의 초등학교가 배정됐어요. 한국에서 3학년 1학기를 마친 큰아이는 여름에 새 학기가 시작하는 독일 초등학교에서 다시 3학년 펭귄반에 들어갔어요. 독일로 이주가 결정됐을 때 가장 저항이 컸죠. 다섯 살부터 쭉 한 아파트에 살면서 5년간 단짝인 영윤이와 초등학교에서 친해진 준희와 재윤이까지, 오후 세 시면 놀이터에서 만나 해질 때까지 일 년에 360일은 실컷 놀았거든요. 친구가 좋아 죽고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것들이 마냥 즐겁던 아이는 자신은 원하지 않는데 왜 독일로 가는지 모르겠다고,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울었어요. 


한국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며 시끌벅적했던 분위기와 사뭇 다르게 한동안 친구 하나 없이 썰렁하고, 학교와 집 오가는 길마저 외로워요. 모두 다 띄엄띄엄 떨어진 주택에 사니 같은 방향으로 오는 친구도 없고 대부분의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했거든요. 입학하고 두 달이 지나서야 도착한 이삿짐 덕분에 20분이나 걸리는 거리를 걸어 다녔어요. 게다가 말은 통하지 않으니 오죽 답답했을지 감히 그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워요. 일순간에 기가 죽고 의욕이 떨어졌어요. 처음으로 닥친 인생의 어려움이에요. 


친구를 매일 그리워하면서 어떻게든 독일 학교에 정을 붙이려고 애쓰던 날, 조마조마했는데 역시나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좋아했던 학교에 가지 않겠다니! 결국 무단결석을 하고 말았어요.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독일에선 이유 없이 학교에 오지 않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면서요. 아프지 않은 이상 학교 결석은 용납되지 않아요. 성수기를 피하려고 여름 방학 전에 미리 여행을 떠나는 경우를 예상하고 공항에 경찰들이 포진한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원리 원칙 엄격한 독일에서 학교 출석도 예외는 없어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염려해서 한국에서부터 프라우 웨버만과 메일을 몇 번 주고받았는데, 무척 친절했어요. 반 친구들이 단체로 찍은 사진도 보내면서 모두 우리 아이를 기대하며 기다린다는 답변을 주셨죠. 무단결석 이후, 적응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진통은 시간이 걸리는 부분이라는 것과 부모와 선생 그리고 아이가 함께 노력하면 분명 나아질 수 있다는 걸 담담하게 인식시켜 주셨어요. 전혀 흔들림 없는 모습은 신뢰가 갔어요.


선생님은 구체적으로 행동을 취하셨는데 첫째는 독일어 개인 선생님을 소개해 주셔서 하루에 두세 시간은 독일어를 집중적으로 배우게 했어요. 물론 아이가 수업에서 나와 따로 독일어를 배우는 시간을 좋아하지 않았지만요. 두 번째로 영어가 가능하고 따뜻한 아이 킴에게 새로 온 친구를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특별히 부탁하셨다,라는 걸 3학년이 끝날 무렵에 알았어요. 새로운 곳으로 이사 온 지금까지 연락하는 고마운 친구죠.


초등학교 과정 4년 동안 선생님과 친구들이 바뀌지 않았어요. 3학년에 전학을 와서 4학년까지, 2년간 직접 경험한 아이는, 선생님이 화내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고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지만 반 아이들이 말을 잘 듣는다며 놀라워했어요. 그만큼 베테랑이셨어요. 물론 부담임에게는 없는 점수Note를 줄 수 있는 권한이 있어서인지도 모르지만요. 독일은 성적이 시험으로만 결정되는 건 아니에요. 수업 태도와 준비 그리고 참여도가 포함된 점수를 매 수업 시간마다 선생님이 체크해요. 초등학교에서 태도의 비중은 60%로 꽤 높아요.


엄마인 저도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주셨는데 한국에 관심이 많은 제자인 한나를 소개했어요. 한나는 아비투어Abiture(한국의 수능과 비슷한 시험)를 통과했지만 특별히 하고 싶은 공부가 없어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서점에서 일하는 친구예요. 지금은 함부르크의 어느 호텔에서 일해요. 공부보다는 돈을 벌어서 다양한 나라에 여행을 가고 싶은데 그중에 한국도 포함되고요. K-드라마와 엑소를 좋아하고 한국 예능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아는 친구예요. 드라마에서 왜 연인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오빠'라고 부르는지 식당에서 여자 종업원에게 '언니'라는 호칭을 쓰는지 궁금해했고요. 한글도 독학으로 공부 중이었는데 더듬더듬 읽을 정도였죠. 첫 6개월간 일주일에 한 번씩 한나를 만나는 일은 큰 즐거움이었어요.


캥거루 수학 경시 대회 신청서를 받았을 때도 독일어 해석이 귀찮아서 신청하지 못했는데 선생님은 영어로 쓴 쪽지를 따로 보내셨어요. 수학을 유독 좋아하는 아이가 이 대회에 나가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죠. 뒤늦게 신청서를 보냈고 학교에서뿐 아니라 니더작센주 전체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어요. 그 당시 독일어가 서툴렀던 아이를 위해 영어 시험지와 독일어 시험지 두 개와 보조 선생님의 도움으로 시험을 봤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고요.


그뿐 아니라 수학 문제 푸는 시간에 가장 먼저 끝내는 아이를 위해 사비를 들여 교재를 사주신 적도 있어요. 4학년 때는 좀 더 난이도 있는 교재를 구매해 주셔서 비용만 지불했고요. 모든 선생님이 이렇게 친절하고 세심하진 않을 거예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2년을 돌아보니 담임 선생님 이상의 역할을 하셨어요. 겉으로 보기엔 따뜻한 느낌은 없지만 중요한 순간에 저력이 느껴진달까요. 어쩌면 이게 독일인의 중요한 특징일지도 모르겠네요. 


아이가 졸업할 무렵, 독일어 수업이 가능한 곳의 리스트를 아이를 통해 제게 전해 주신 건 감동이었어요. 오누이의 적응에 에너지를 쏟느라 제 독일어는 뒷전이었거든요. 아이의 적응을 돕는 일은 선생님의 일이겠지만 엄마까지 챙기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전혀 사소하지 않은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의 다정한 마음은 흔하지 않아서 더 귀해요. 오랫동안 기억되는 이유예요. 대부분의 행운은 사람을 통해 온다더니 저희 가족이 참 운이 좋았어요. 독일인에 대한 이미지가 핑크빛으로 물들 만큼이요.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에서 셀프 이사는 처음이라서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