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 철학일기>(책세상, 2015)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통상 전기와 후기로 구분된다. 전기 철학은 생전에 유일하게 출간된 <논리-찰학 논고>로, 후기는 <철학적 탐구>로 대표된다. <논리—철학 논고>와 <철학적 탐구>의 개략적인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할 수 있겠다. 그 유사점이란 무엇보다도 ‘철학은 과학과 다르다는 것’이다. 즉 철학은 어떤 이론이 아니라 ‘활동’이며, 철학의 문제들은 언어에 대한 오해에서 연유하기 때문에 활동으로서의 진정한 철학은 ‘언어 비판’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차이점은 특히 상이한 언어관에서 발견된다. 전기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의미’를 단순, 정확하고 확정된 것에서 찾는다. 한마디로 언어를 ‘정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후기 때 ‘언어의 의미’는 애매하고 유연한 그 무엇이다. 다시 말해 언어를 ‘동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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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이 참전을 선택한 이유는 조국을 지키려는 애국심보다는, 오히려 개인적 열망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수년에 걸친 자신의 연구를 전장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비로소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며, 그의 의도는 성취되었다. 1914년부터 1917년까지의 전장기록은 그러한 성취의 핵심적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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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은 철학 연구를 시작하면서 평생 기록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가 남긴 방대한 분량의 손글씨 기록과 타자 기록은 모두 기록 습관의 결과물이다. 손글씨 기록을 수정하면서 그것을 타자 원고로 최종적으로 옮기는 것이 비트겐슈타인의 일반적인 작업 방식이었다. 1951년 그가 암으로 사망했을 때 그가 남겨놓은 기록은 이미 상당한 분량이었는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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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발견된 그의 유고는(물론 그 형태는 저마다 다르지만) 무려 3만여 페이지에 달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유고 기록들은 폰 브릭트에 의해 분류, 작업된 형태로 접할 수 있다. 그는 비트겐슈타인의 유고들을 크게 세 부류로 구분했는데, 손글씨 원고, 타자 원고 그리고 구술기록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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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비트겐슈타인 삶의 철학이다. 일상적인 기록에서는 이미 그가 보는 삶의 의미가 표출되는데, 그것은 학문적으로 윤리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가령 이 책의 마지막, 1917년 1월 10일의 기록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자살에 관한 철학적 해명을 제시한다. 그것은 <논고>에서도 언급된 윤리학과 밀접히 연관된다. 자살에 대한 그의 사색(?)은 사실 지극히 일상적인, 전장에서의 절실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는 비트겐슈타인의 절친 핀센트다. ——비트겐슈타인은 후일 <논고>를 출판하며 자신의 책을 그에게 헌정한다고 밝혔다. 그는 1918년 핀센트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그러한 헌정을 결정하게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은 핀센트에 대한 깊은 우정 또는 사랑을 통해 전장에서 괴로움을 극복하며 철학 연구에 집중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p.22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