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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위아 HOW WE ARE Oct 09. 2016

10. 그래서 나는 쓴다

책 이야기가 없는 독후감

약 3주 전, 이 책을 빌려오던 길이었다. 일요일이라 아침부터 오후 내내 누워만 있다가 4시 20분쯤, 오늘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의 반납일에다 예약해둔 이 책의 예약 만기일인 것이 기억났다. 도서관 운영 시간은 다섯 시까지였고, 다음날인 월요일은 정기 휴관일이었다. 집에서 도서관까지는 걸어가든, 버스를 타고 가든 2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였기 때문에 도서관 문 닫기 전에 도착하려면 당장 나가야 했다. 잘 때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갈 수는 없어 빨래 건조대에서 보이는 대로 옷가지를 걷어 갈아입었다. 상의는 넉넉한 사이즈의 흰색 반팔티였고, 하의는 발목을 시보리(정확한 용어인지는 모르겠다)로 감는 검은색 트레이닝복이었다. 입고 보니 주로 초배 산책할 때의 차림이었다. 천가방에 반납할 책을 부랴부랴 챙겨 나와 바로 버스를 탔다. 아, 신발은 검은 슬리퍼였다. 흰 줄이 없는 올검이지만 삼선과 매우 흡사한 형태다. 여하튼 그런 상태로 버스를 타고 가는데 문득 '얼굴에 뭘 안 바르고 밖에 나온 것도 오랜만이군.'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도 안 했으니 로션조차 바르지 않은 상태였는데, 평소엔 '메이크업베이스+CC크림+쿠션'이 외출 시 기본값이었다. 적나라한 안면을 부끄러워하기엔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라 미친 듯이 오르막길을 뛰어가 반납과 예약도서 대출 및 생각지도 않던 여타 도서의 대출까지 성공하고 정말 ㅎ, 하얗게 불태웠어… 하는 표정으로 터덜터덜 내려오는 중이었다. 저 멀리서 가족으로 보이는 한 무리가 오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쯤으로 추정되는 아들과 5-6학년으로 추정되는 딸이 앞서 걷고 있었고, 뒤에는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 세상만사 다 포기한 표정으로 마트 이름이 새겨진 봉투를 양손에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내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서로 마주 보며 가까워지는 상황이었는데, 그 가족과 나의 거리가 불과 1-2미터로 좁아졌을 때 초2로 추정되는 아들내미가 내게 손가락질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남자네, 남자!"

나는 정말 내 갈 길을 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서너 걸음 더 걷다가 응? 하면서 돌아봤는데 그 가족을 제외하고 길엔 나뿐이었고, 아들내미가 그 후로 몇 마디를 더 했지만 점점 멀어져서 제대로 듣지 못했다. 남자네, 남자! 라며 손가락질할 때 눈이 마주쳤던 아들내미는 몹시 호탕했다. 내가 만약 노브라였다면 "자네에겐 응당 있어야 할 것이 없군!" 이라며 자신의 사타구니에서 성기를 떼어 주기라도 할 기세였다. 달아도 별 태가 나지 않을 사이즈군, 생각하며 버스를 타러 갔다.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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