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가 없는 독후감
알 수 없는 열정이 샘솟을 때가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짓에 열과 성을 다하는 것도 모자라 먹고 자는 것도 잊어가며 온몸을 불사르는 때가 있다. 스키니나 검도 바지 같은 유행처럼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이 돌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 와서 그 말을 '열정 총량의 법칙'으로 변형시켜 써보려고 한다. 써보려고 하긴 뭘 써보려고 해, 이미 써놓고선. 유행어처럼 사용하던 그 말을 좀 변형시켜 설명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정도로 쓰는 게 좋겠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살면서 쓸 수 있는 열정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싶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그 열정을 짧은 시기 내에 쏟아붓는 식으로 쓰고, 어떤 사람은 조금씩 끊임없이 쓰는데 두 사람이 쓴 열정의 총량을 비교해보면 큰 차이가 없는, 결국 엇비슷한 양의 열정으로 살다 떠나는 것 아닐까. 매일 아침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루비콘 강이라도 건널 태세로 비장하게 서있는 광화문 사거리의 횡단보도를 종횡무진하며 예수천당불신지옥여러분행복하세요여러분이행복해야나라가삽니다나라가살아야여러분이행복합니다를 외치는 할아버지처럼 확연하게 늘 열정이 샘솟는 사람들도 있는 걸 보면 열정의 총량 따위가 정해져 있다는 가정이 불가능하지만. 오, 아니다. 할아버지가 총각 때부터 그러고 다녔는지, 할아버지가 아니었던 시기의 그가 어떤 식으로 살았는지 모르니까 그의 열정이 단 한순간도 식은 적 없다는 식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이를 테면 그는 앞서 예시로 들었던 두 가지 방식 가운데 전자에 해당하는데 그 시기가 노년인 것이다. 한쪽 어깨에 확성기까지 멘 채 신호등이 바뀌는 순서에 맞춰(사실 신호등 바뀌는 것을 미리 알고 한 발 빠르게 움직이시기 때문에 신호등의 변화를 살피는 것보다 할아버지가 움직이는 방향을 보는 게 더 빠르고 정확하다)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면 사각 횡단보도가 그만을 위한 무대 같다는 생각도 든다. 는 거짓말이고 아, 나도 저렇게 열심히 살던 때가 있었는데 싶은 생각이 든다. 주변 사람들이 오, 뭐야. 하면서 슬금슬금 피할 만큼 과한 열정을 뿜던 시기가 나에게도 있었는데 때는 7년 전, 복학한 지 딱 1년이 되어가는 가을이었다. 어느 날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교환학생 모집 공고문을 보고 나는 갑자기 독일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뒤 독일어 책을 빌렸다. 대출 가능 권수를 꽉 채워 빌리느라 한 권은 원서였는데 그 책만 내용이 좀 달라서 이상하다 싶었고 그게 네덜란드어 교본이었다는 건 5권을 반납할 때에야 알았다. Deutsch와 Dutch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독일어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놓고 갑자기, 정말 갑자기 독일어를 팠다. 혼자 파는 것으론 모자랐는지 독문학과의 독일인 조교에게 안녕하세요, 나는 역사교육과 학생인데 독일어를 공부하고 싶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나를 도와주십시오, 신의를 담아. 따위의 연서까지 보내가며 독일어를 팠다. 구글 번역기가 혀를 끌끌 찰 만큼 엉망진창이었던 내 쪽지를 보고 고맙게도 그녀는 반갑다, 다음 주 무슨 요일 몇 시에 내 연구실에서 만나자는 답장을 보내줬다. 3-40분여 동안 이어진 만남은 쪽지보다 더 엉망진창인, 독일어도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은하계 바깥의 언어로 가득 찼고 내 마음도 벅찼다. 그렁거리는 눈 앞에 금방이라도 독일 땅이 보일 것 같았다.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