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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만히 Nov 28. 2023

01 왜 결혼을 해야 하나요?

비혼주의자가 세상과 타협한 이유

남자 친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지만 나에게 결혼은 별개의 것이다. 결혼을 한다고 사랑이 영원한 것도 아니고(하물며 우리 부모님도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했다), 결혼하지 않아 헤어질 사이면 애초에 그럴만한 마음의 깊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제도에 앞서, 결국 두 사람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이 싫은 것이 아니다. 왜 결혼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를 설득할만한 합당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매일 함께하는 일상이 필요하다면 우리에게는 동거라는 선택지도 있다. 심지어 13년을 만난 우리는 양가에 여자 친구/남자 친구의 존재로 자주 왕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가 정말 사랑한다면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같이 살며 행복할 수 있어. 그런데 왜 꼭 결혼을 해야 하지?”


이랬던 내가 갑작스레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결국 제도적 한계에 있었다. 서른을 넘어가면서 지인 부모님들의 병환이나 부조 소식이 하나둘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어느 날 찾아올 우리 엄마의 부재가 소스라치게 두려워졌다. 남에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솔직한 마음을 쏟아낼 수 있는 사람. 그런 남자 친구가 내가 무너질 듯 힘든 순간을 함께 해주려면 법적 배우자여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여자 친구 어머니 상으로 경조휴가를 내주는 회사는 없을 테니까. 굉장히 어처구니없으면서 현실적인(?) 생각이었다. 나 또한 그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고 싶기도 했고.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아직 결혼 외 남녀의 진지한 관계를 인정해주는 제도적 장치가 충분치 않고, 결국 결혼을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을 맞는다. 그렇기에 결혼을 선택했음에도 진정 나를 위한 선택인가라는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나다운 선택이 아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일단은 애써 긍정적인 의미를 찾아가며 앞으로 나아가 보려고 한다. 그 끝이 어떠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서 드는 생각들을 여기에 쏟아내며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마지막 끝은 나다운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부디 그렇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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